D+12 아친스크 - 노보시비르스크 635km
어쩌면 이렇게 매일 풍경이 똑같을 수 있나? 이르쿠츠크 이후 약 2,500km. 참으로 엄청난 거리인데 산은 없이 끝없는 벌판, 끝없는 자작나무, 끝없는 트럭 행렬... 처음으로 하루종일 비나 눈이 없는 날이다.
9시 50분에 호텔을 나와 열심히 달린다. 달리는 것 외에 정말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는 시베리아 구간. 나중에 무엇으로 이 시베리아를 기억할까? 중간에 적절하게 볼거리가 있는 구간이라면 이렇게 죽으라고 달리는 게 몹시 억울하겠지? 바이칼 호수를 빼고는 볼거리가 없는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길가 카페에서 점심을 먹고 노보시비르스크 50km 남기고는 숙소를 예약한다. 몇 달전이 아니라 이렇게 당일에 예약해도 숙소가 많은데 나는 왜 그동안 몇 달전부터 예약하느라 난리를 피우고, 그 날짜에 맞추느라 고생을 하고 다닐까? 예약해보고 싶은 것이었겠지?
차가버섯이 러시아의 유명한 항암치료제라 해서 한때 국내에서도 북새통을 이룬 적이 있는데, 그 차가버섯의 주산지가 여기 노보시비르스크란 말을 마눌님이 어디선가 들었나 보다. 암으로 고생하는 친구에게 선물해서 좋아진다면 어디서라도 한번 살 수도 있는데, 어디서 파는지, 어떻게 파는지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살 수 있을까? 우선 생각만 해본다.
이 동네에도 길가에 물건들을 내놓고 파는 노점이 많다. 매우 다양한 물건들을 파는데 궁금하기는 하지만 물어본다고 알 수도 없고 해서 그냥 지나치기만 한다. 노보시비르스크가 가까워지면서는 실물 크기의 곰 박제가 많이 보인다. 이건 정말 가격이 궁금하고 적정한 가격이라면 사보고 싶기도 한데 가지고 갈 일이 만만찮아서 포기했다. 아깝다.
도시 입구에 있는 시장(껍데기는 근사한데 내부는 재래시장이네)에서 오겹살과 채소 등을 산다. 여기서도 고기는 잘라진 대로만 팔지, 손님이 원하는 대로 양을 주지는 않는다. 1kg에 3,500원 정도. 소고기는 찾아보기가 정말 힘들다. 숙소에 들어와서도 모자란 것 사려고 바로 앞 마트에 갔는데 상추 등의 채소는 아예 없다. 참 신통한 동네다. 부탄가스도 눈에 띄지 않아 우수리스크에서 사오길 잘 했다고 생각하려는 중이다.
시내 중심가 25층 아파트의 12층에 있는 숙소는 매우 좋다. 원룸 형식. 이런 방을 1,620루블에 구할 수 있으니 러시아 물가가 싸긴 싸다. 고기가 정말 맛있다고 마눌님이 감탄하니 좋네. 11시에나 식사가 끝났다.
635km면 시속 100km, 때로는 120이상을 밟을 때도 많으니 7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아도 실상 걸리는 시간은 오늘의 경우 11시간이다. 중간에 쉬는 시간, 차가 막히는 시간, 장보는 시간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 일정을 짜는 게 필요하다. 내일은 옴스크까지 약 650km를 가야 하네. 그러면 또 숙소에는 8시에 들어가서 밥먹고 나면 11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