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13 노보시비르스크 - 옴스크 640km

나쁜카카오 2018. 8. 18. 18:09

아침 5시에 눈을 떴는데 도시의 일출이 멋지다. 신축 아파트 12층이 마침 동향이라 일출을 잘 잡을 수 있네.

9시에 집주인을 오라고 했으니 아침이 좀 바쁘다.

방에는 에어컨이 없고 방충망도 없다. 그만큼 이 도시가 살기에는 쾌적한 편이라는 말이겠지. 아파트의 수압도 정말 부럽고 더운 물도 기다리지 않게 한다. 좋다.

9시에 나간다고 했더니 9시도 되기 전에 아마도 청소부 아주마가 와서는 재촉하는 느낌이네. 서둘러 나오느라고 냉장고 잘 얼려둔 물과 남은 햄, 요거트 등을 두고오는 참사가 발생했다. 아깝다.

하늘이 맑아서 대기가 매우 깨끗하니 기분이 좋다. 구글이 고속도로로 바로 안내하는 중에 잠시 거쳐보는 노보시비르스크의 시내 풍경을 본다. 차선이 거의 사라져서 보이지 않아도 차들은 제 길을 잘도 찾아간다. 차선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건 이르쿠츠크도 마찬가지였고, 좌회전 신호는 아예 없어 적당히 좌회전을 해야 한다. 그래도 사고가 나지는 않아 보인다. 


보행자에게 차가 양보하는 건 철저하다. 이건 블라디보스톡에서 이미 겪은 것인데 새삼스럽다. 자동차 문화는 대한민국보다 훨씬 위라는 느낌. 가끔 you tube에서 난폭운전이 횡행하는 러시아 도로를 보여주기도 하는 건, 어쩌면 폄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동네에서 차가버섯을 구해보기로 한 생각은 고속도로에 올라서서야 다시 생각나니 어쩔 수 없네. 핑계를 잘도 만든다. 여전히 꿋꿋하게 변함없는 풍경인데 하늘이 맑아 지금까지와는 조금은 달라보인다. 하늘은 맑아도 땅은 트럭들이 만들며 가는 먼지로 금새 뿌옇다. 슬프다. 

기름을 넣으며 오늘에서야 편하게 넣은 법을 깨우친다. 먼저 주유 노즐을 주유구에 집어넣은 다음, 계산대에 가서 적당한 금액을 지불하면 차로 오는 사이에 주유가 시작된다. 매우 편하네. 가득 채우려고 하면 복잡해지니 그러지 말고 천 루블이나 2천 루블씩으로 금액을 정하면 더욱 편하지.

일찍 일어나 좀 서둘렀더니 졸음이 일찍 시작된다. 

옴스크 주로 넘어오니 다시 시간이 한 시간 늘어난다. 24시간에 익숙한 몸이 25시간을 쓰게 되면 더 피곤해질 것이라는 마눌님의 지적이 일리있다. 역시 시간변경탑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기름을 두 번째로 넣은 주유소에서 점심을 차에서 해결하고 열심히 달리는데 오늘 아무래도 카메라에 여러 번 찍힌 것 같아 좀 께름직하다. 어쩔 수 없지.

옴스크 호텔을 예약하고 구글을 따라 옴스크  시내로 들어오는데 매우 스산하다. 구글이 빠른 길로 안내하려고 초입을 스산한 곳으로 안내했나 보다.

호텔에 당도하니 이건 정말 호텔이 있을 곳이 아니다. 차를 돌려나와 일단 정교회 성당부터 구경하고, 비를 맞으며 도스토예프스키가 유배되었다는 곳을 찾아갔더니 전신상만 서있다. 총살형을 당하기 위해 사형대에 세워졌다가 사면되어 죽음 직전의 경험을 겪은 후에 이곳 옴스크로 유배된 도스토예프스키. 그 사면은 자신에게 반기를 든 괘씸한 젊은 것들에게 독한 맛을 보여주려고 니콜라이 1세가 미리 계획했다는 설이 있는데, 그런 사정을 모르고 총구 앞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경험은 참으로 많은 걸 느끼게 했겠지. 그 경험과 4년의 유형생활에서 더욱 깊어진 내면으로 많은 작품을 써서 우리의 젊은 날에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워낙 오래 전에 읽은 소설들이라 우리는 그냥 그의 슬픈 전신상만 비맞으며 보고 온다.



차를 돌려나오면서 다른 호텔을 예약하는데 지겨운 놈의 데이터가 우물거리는 사이에 욕실이 딸린 방을 놓쳐버렸다. 할수없이 다른 방을 예약하고 찾아가니 침대만 달랑 있는 방이다. 300루블 정도 아낀 댓가는 매우 불편함이다.

호텔 옆, 제법 고급스러워 보이는 식당에서 스테이크 370g과 맥주 800cc에 쇠고기(를 주문하고 그런 줄 알았는데 돼지고기네) 샤슬릭으로 저녁. 

늘도 11시나 되어야 저녁식사를 끝내나 했더니 다행히 10시 반이 되기 전에 자리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