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4 옴스크에서 예카트린부르그 968km
새벽부터 눈이 펑펑 쏟아진다. 쌓이지는 않으니 걱정을 할 이유는 없는데, 오늘 갈길이 매우 멀어서 어쩌나 싶다. 5월 중순 시베리아에서는 눈이 일상일 수도 있겠다. 호텔의 참으로 시원찮은 아침을 먹고, 일찍 나온다고 했는데 9시 2분에 출발이다. 펑펑 쏟아지던 눈은 어느새 비로 변했다.
이 동네 도로도 차선은 없어졌고 차들은 그 없어진 차선을 잘도 찾아 사고도 없이 잘도 다닌다.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인 옴스크. 가장 유명하다는 배관공 동상을 보지 못해 좀 아쉽긴 하다. 그래서 오늘 늦게 예카테린부르그에 도착하면 내일은 오전에 시내 관광을 좀 해보기로 한다. 그러면 내일은 카잔까지 못 가고 중간 어디에 숙소를 정해야 하는데, 이 길이 두 갈래라 어디로 가서 정해야 할지 좀 애매하다.
고속도로에 올라서니 고도는 많이 낮아져 100m 아래로 떨어졌는데 풍경은 여전히 똑 같다. 이제 감탄하거나 신통해하기도 지쳤다. 비가 그치고 해가 나서 운전은 편하다. 서쪽으로 오니 호수가 많아지고 수로에서 낚시하는 사람들도 본다.
길가 카페에서 보르슈 등으로 점심을 먹는데 계산이 이상하다. 가서 따져봐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또 따지지 않고는 못 견디지. 계산 틀린 것 2루블만 겨우 받아낸다. 러시아 사람들이 누구를 속이거나 일부러 사기를 치거나 하지는 않는, 순박한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많이 받긴 하지만, 어쨌든...
튜먼 주로 들어오니 시간이 또 1시간 늦어진다. 25시간을 사는 건 정말 피곤하지만, 오늘처럼 먼 길을 갈 때는 매우 도움이 되기도 하지. 구글이 알려주는 대로 튜먼으로 가지 않고 중간 길로 접어드는데 경찰이 부르더니 그냥 '드바르브이체'라고 인사만 하고는 가란다. 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들었는데 마눌님은 '안녕하세요'라는 말이라고 잘도 알아듣네. 그동안 열심히 러시아말을 공부한 덕을 보는 건가? 그나마 다행이지 뭐.
시골동네를 연결하는 러시아 국도라 도로상태는 정말 엉망인데 트럭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 성가시지 않아서 좋다. 바닥이 편한 길과 트럭이 드문 길 중에서 어떤 걸 골라야 할까? 길 상태가 엉망이라 주유소 걱정을 했는데 주유소도 많아 다행이다.
시골길로 들어서니 그나마 풍경이 좀 달라지긴 하지만, 워낙 넓은 대평원이라 크게 변하는 건 없다. 지형도를 보니 동쪽 싱안링 부근과 우랄산맥 주위만 산이 있고 한반도의 175배에 달하는 러시아 국토의 나머지 부분은 전부 평원이다. 끔찍하다. 1시간 반 동안 70km를 털털거리고 오니 차도 힘들고 사람도 힘들다. 잘 닦인 354번 국도를 타고서야 속도도, 차도, 몸도 모두 편해진다.
예카테린부르그 역앞에 위치한 호텔에는 9시 2분에 도착, 꼬박 12시간 걸렸다. 그래도 그리 많이 피곤하지 않은 건 무슨 까닭인지 모른다. 껍데기와 프론트가 멀쩡해서 마눌님이 매우 좋아했는데 방에 들어와보니 이건 참으로 한심한 수준이다. 지난 밤, 옴스크의 그 허름한 미니호텔보다 훨씬 못 하네. 어쩌겠어...
역 앞으로 가니 수퍼도 있고 케밥도 있어서 케밥, 수퍼의 통닭구이, 맥주 등으로 늦은 저녁. 저녁 먹고나면 늘 11시다. 내일은 여유가 있는 날이니 좀 나아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