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19 야로슬라블 - 모스크바 270km. 예정대로 모스크바 입성, 10,005km

나쁜카카오 2018. 11. 5. 22:46

호텔 위치는 음산해 보였던 건 밤이라서 그랬다. 방이나 여타 공간이 시원시원하게 넓어서 좋은데 식당은 좀 작네. 4성급치고는 조식은 좀 부실한 편이라는 생각. 예카테린부르그 마린스파크 호텔의 조식만한 게 없지?

10시에 체크아웃하고 시내관광을 나선다. 슬슬 걸어 도시 구경을 하면서 크렘린까지. 크렘린 입장은 무료인데 꼭 올라봐야 하는 종탑은 200루블. 종탑에 올라가니 전망이 기막히고 시내 전역에서 번쩍거리는 정교 교회의 양파지붕들이 찬란하다. 사방 어디에나 교회가 있네. 이 많은 교회들을 먹여살리려고 백성들은 얼마나 고생했을까 하는 생각보다는 경치가 기막히다는 생각을 먼저 한다. 볼가강 지류도 바로 눈앞이라 좀 있다 내려가서 발을 담궈야지.



탑에서 한참을 놀다가 내려와 구내를 슬슬 걸어다니며 구경을 한다. 패키지 팀이 많다. 덕분에 악기종(원래 그런 용도는 아니었을 텐데) 연주도 덤으로 보탠다. 모종의 공연을 준비하나 본데 여자아이들이 정말 예쁘다. 마눌님 사진도 몇 장 건져서 좋다.


크렘린을 나와 성벽을 따라 빙 돌아서 강변으로 간다. 홀라당 벗고 일광욕을 즐기는 남녀노소 불문의 주민들 덕분에 눈이 즐겁다. 강물은 그리 맑지 않으나 발을 담글 만은 하다. 낚시꾼 하나가 우리에게 자기 낚싯대를 앵기더니 사진을 찍어준다. 재밌고 고맙네. 뭔가 사례를 하고 싶은데, 이럴 때는 무엇으로 사례하나? 그냥 고맙다는 인사가 가장 좋은 거지 뭐. Spasibo.


여기에도 자물쇠로 사랑을 다짐하는 장소가 있는데 마침 결혼식을 앞둔 예비 신랑신부가 자물쇠를 걸기에 사진도 한장 남긴다.


다시 매표소 부근으로 오니 식당들이 몰려 있다. 현숙은 피자를 먹고 싶어서 어느 식당에 들어갔는데, 분명히 옆 테이블에서 피자를 먹고 있는데도 피자는 없다는 종업원. 목이 말라 우선 맥주를 1잔 주문하고, 리조또와 스파게티를 주문한다. 그런데 잘못 알아들었다면서 맥주를 2잔이나 갖다주네. 모스크바까지 갈 길이 먼데 이 2잔을 어떻게 다 마시고 운전을 하나 걱정이 되네. 미안하다며 서비스로 준 차는 맛이 없다. 러시아 사람들은 차를 정말 많이 마신다. 차를 이렇게나 많이 마시는데도 젊을 때는 그리고 예쁘고 날씬한 아이들이 나이들어서는 왜 그리도 뚱뚱해지냐? 리조또는 짜고 스파게티는 느끼하다. 길 건너 뷔페나 스트로바야가 차라리 나았겠다 싶다.

내일이 토요일이라 자동차 점검에 문제가 있겠다 싶은 생각에 마음이 바빠진다. 그래도 사진찍을 건 찍어야지. 돌아오면서 길 순서를 잊어버려 한참을 헤맸다. 이제 내 네비게이션 기능이 정말 약해졌나? 큰일이네...

이 놈의 유심은 정말 이해불가다. 통화가 560분이나 남았다면서 전화가 안 되네. 호텔 여직원과 한참을 실랑이하다가 모스크바 대사관에 겨우 연락이 되었는데 무심한 외교관 놈은 코트라에 알아보라네. 코트라 한국 직원과는 연결이 안 된다. 

유심을 갈아끼우기로 하고, 출발하면서 보이는 MTC에 들러 유심을 새로 사느라고 또 시간을 죽인다. 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진 하바로프스크나 카잔에서의 통화가 잔여 데이터, 통화시간 등을 다 잡아먹었다는 말인가 본데, 그렇다면 MTC 앱에서도 잔여량이 없다고 나와야지. 이럴 때는 러시아가 정말 싫다. 한없이 느려터진 직원 놈에게서 겨우 유심 하나를 300에 사고 모스크바로 출발. 좀 복잡한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에 올라서니 길이 좋다. 모스크바가 가까워져서 그런가 본다 하는데 그 가깝다고 느끼는 거리가 270km. 저멀리 번개가 치길래 내 차도 비를 좀 맞으면 좋겠다 했는데 두어 차례 비를 시원하게 맞아서 바퀴세차는 잘 했다. 뒷문의 흙먼지 등등은 씻기지 않아 여전히 더러운데, 만km를 달린 차가 그 정도는 더러워야 기념이 되지.

드디어 모스크바에 입성. 고속도로인데다 비도 오고 여기는 모스크바라는 간판 따위마저 볼 수가 없어 내 감개무량(그런데 내가 감개무량할 이유가 있나? 성공적인 러시아 횡단이라서?)을 기념할 수가 없는 건 매우  아쉬운 일이었다.

모스크바 시내로 들어오는데 고속도로부터 시내까지 이어진 차량의 정체 행렬이 끔찍하다. 금요일 저녁 퇴근시간 무렵이라 정체는 더욱 끔찍한 수준인가 보다. 모스크바의 정체가 악명이 높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을 못 했다. 나라 땅덩이가 크니 정체도 그런 땅덩이 크기에 맞추는 건가? 


호텔 위치만 확인하고 기아서비스를 찾아갔는데 말이 통하지 않아 시간만 죽이고 내일 예약을 해둔다. 10시 반. 통역을 붙이겠다는데 그 비용는 누가 대나?

알파, 베타, 감마, 델타 4개의 건물이 있는 이즈마일로보 호텔은 규모가 입을 벌리게 한다. 층마다 40여 개의 방이 있는 28층 호텔 건물 4개. 로비마다 인간들이 바글바글하니 대단하다는 말밖엔 할 수가 없네.

알파 호텔은 입구가 개떡이라 찾는데 한참을 헤매게 만든다. 입구에서 멈춘 구글 때문에 맵스미가 아니었으면 찾아 들어오지도 못 했을 뻔 했다. 구글이 좋긴 한데 가끔 그 부근에만 데려다주고는 끝이라는 통에 정확한 도착지점을 찾아 헤매게 만들기도 해서 불편한 점도 있다. 맵스미를 찾아 깔고 잘 활용하는 마눌님의 공이 매우 커서 정말 좋다. 

높은 층 방을 달래니 선뜻 내준 꼭대기 28층 방에 들어오니 전망이 정말 시원하다.

앞으로 사흘 동안, 매일 방 구하는 수고 없이 편하게 지내자는 마눌님에게 몹시 고맙고 미안하다. 와이파이도 매우 편하게 잘 연결돼서 좋다. 그런데 이 넓은 부지를 점령한 놈들이 주차비를 하루에 500루블씩이나 받네. 매우 불쾌하다. 예약하면서 왜 이걸 확인하지 못 했을까? 확인했으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했을까? 다시 보니 확인하고는 내가 까먹었네.

15일 동안 10,005km. 대단한 여정이긴 하다. 호텔 앞 식당에서 맥주로 간단히 축하한다. 본격적인 축하와 감개무량해 하기는 횡단이 완료되는 상트 페테르부르그에서 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