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24 상뜨 뻬떼르부르그 2일차

나쁜카카오 2018. 11. 6. 21:50

이제 이 북유럽 사람이 다 되었는지 오늘은 9시에 일어났다. 어제 여름궁전에서 오래 걷고 늦은 저녁 후에 예르미따시 광장에 나가 야간관광으로 매우 피곤했던 탓일까?

11시에 역시 소시지와 김치, 그리고 어제 저녁에 남긴 목살 등을 넣어 김치국인지 찌개인지를 끓여 아침을 잘 먹었다. 마눌님은 모처럼 욕조에서 시원하게 목욕도 한다. 며칠 동안 한 도시에서 머문다는 것이 이렇게 편한데, 앞으로의 일정에서 이런 여유를 가지게 될까? 예정대로라면 헬싱키 3일, 베르겐 3일, 오슬로 3일, 코펜하겐 4일, 스톡홀름 4일. 가능은 하겠지.

3시가 다 되어서야 예르미타시(국립국어원 표준표기란다) 관광을 나선다. 미술관은 금방인데 표사는 곳을 몰라 엄청난 규모의 건물을 완전히 한 바퀴 돌아서 겨우 표사는 줄에 합류한다. 그래서 표는 3시 14분에 겨우 샀는데 검색대를 통과하느라 또 시간을 잡아먹네. 시간이야 넉넉하니 시간이 모자라서가 아니고, 이렇게 관람객들의 시간을 무작정 잡아먹어도 당연하다는 듯한 이 무식한 러시아에 짜증이 난다.


인터넷으로 사면 24달러, 현장 구매는 700루블. 무려 약 2배의 가격차이로 사람을 이렇게 취급하는 건가?

어쨌든 약 1시간 만에 겨우 들어간 셈이지? 여전히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로비부터 화려한 실내가 사람을 압도하는 듯한 느낌을 주네. 불쾌하군. 계단을 올라 2층 전시실 관람을 시작하는데 순서를 몰라 거꾸로 돌면서 러시아 황실궁전의 실내장식 따위가 전시된 방들을 돌다보니 막상 현숙이 보고 싶어하는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어디에 전시되어 있는지도 모른 채 지쳐버린다. 램브란트의 그림은 많은데 그의 그림은 대체로 어두워서 우리 취향이 아니지. 황실 가구나 각종 유물이 엄청나게 많은데 당초 이런 건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었지. 인상파전을 찾다가 일단 숨을 고르기로 하고 내부의 카페에서 샌드위치 등으로 좀 쉰다. 인간들이 입장할 때 검색대에서 물병을 다 버리게 하더니 카페에서는 물 기타 등등 별걸 다 파네. 더욱더 싫어지는 러시아 도시의 인간들.

예르미따시 미술관의 자랑은 이 소장품들을 다 돈을 주고 샀다는 것. 대영박물관이나 루부르박물관 등은 약탈해온 작품들이 대부분인데 이곳은 예카테리나 여제가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 등의 작품을 사서 모았다는 것인데, 어쨌거나 돈이 많기는 했던 모양이다.

기운을 차리고 다시 관람에 나서지만 인상파전은 도대체 찾을 수가 없고 힘만 든다. 박물관이 엄청나게 큰데 관람객이 쉽게 목표하는 곳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안내판이 극히 드문, 국민은 서비스를 해야 할 대상이 아니고 행정처리의 대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 하는, 이 관료주의가 만연한 예르미따시 박물관.

숨이 막힐 것 같아 나는 포기하고 밖으로 나온다. 숨통이 틔는 것 같다. 7시 반 그 시간에 버스킹은 벌써 한창이다. 1시간 정도 지나서야 마눌님이 지치고 화난 표정으로 광장에 나오네.

혹시나 하고 맞은 편 General Office Building에 들어가니 바로 여기가 인상파전이 전시되는 곳이네. 시작부터 초기 피카소가 전시되더니 드가, 르노아르, 마네, 모네, 고갱, 세잔느, 로트렉, 그리고 고호까지 약 20개의 방을 가득 메운 그림들에 정신이 없다. 유리로 그림 전면을 막아 그림을 보호하는 건 좋은데 빛이 반사되어 그림 색깔을 제대로 볼 수 없고, 사진으로도 제 색깔이 나오도록 찍을 수가 없어서 몹시 안타깝다.


9시가 다 되니 경비들이 빨리 나가라고 성화다. 수, 금에만 9시까지 연장 전시를 하긴 하지만 그 연장되는 시간이 저들을 몹시 피곤하게 할 것이긴 하겠지. 

어쨌든 큰 숙제를 해결했으니 다행이다. 출구 부근의 가게에서 파는 기념품들은 비싼 편인데 욕심이 좀 난다. 아깝다.

밖에 나오니 어제 노래부르던 그 친구가 또 장을 벌였는데 어제보다는 감흥이 덜 하다. 동영상을 찍다가 폰의 외장메모리 용량이 가득차서 끝낸다. 잘 됐다 싶다.

숙소에 와서 닭백숙을 만들어 늦은 저녁을 해치운다. 김치만 있으면 한끼는 왠만큼 해결되니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