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29 헬싱키 수오멘리나 섬 등등

나쁜카카오 2018. 11. 7. 13:30

아침은 수프. 11시에 오겠다는 놈이 10시에 문자를 보내서는 일 때문에 저녁에나 오겠단다. 저녁 몇 시에 올거냐고 문자를 보내놓고선 답 기다리기가 싫어서 전화하니 3시에 일이 끝난다네. 우리는 관광 때문에 밤늦게나 돌아온다고 11시에 만나자니 10시나 11시에 와본단다. 이 주인 놈은 정말 믿을 수가 없다. 핀란드 사람들은 약속을 잘 지킨다는데, 이 놈이 그런 핀란드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만일 가스를 맡아줄 수 없다면 가스를 싣고 배를 타고선 최악의 경우 뺏기는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캠핑 취사대책이 매우 막연해져서 골치아픈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하루종일 지하철 등 시내교통 수단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9유로 짜리 데이티켓을 끊는다. 이런 티켓이 있다는 건 참으로 신통한 거다. 버스나 지하철은 1회에 2.9유로인데 돈이 상당히 절약된다.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나가 다시 암석교회부터. 둘을 들여보내고 주변을 빙빙 돌며 기념품 가게도 들러보고 하며 시간을 죽이는데 좀체 나오질 않는다. 교회에 볼 게 뭐가 있다고 이렇게 시간이 걸리나 했는데 밖으로 나온 마눌님이 교회 안에 예수상이나 그런 게 전혀 없어 교회냄새가 나지 않는다네. 밖에서 보기에도 교회표지랄 수 있는 십자가는 조그맣게 문 위에 있는 것 하나뿐인, 매우 겸손한 교회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 같으면 지붕 위에 엄청난 크기의 십자가를 세우고 밤에는 조명도 빨갛게 했을 것이다.


기어이 카모메 식당에 간다. 왜놈 식당에는 가지 않으려 했는데 일본을 싫어한다는 인간이 영화를 보고선 우겨서 할 수 없다. 한 30분 느긋하게 걸어가 식당 앞에 가니 오후 5시부터 문을 연다. 잘 됐다 했는데 바로 옆에 간단하게 분위기가 나는 아틀리에라고 식당이 있다. 들어가서 커피와 시나몬빵, 나는 버섯 수프와 빵. 맛도 없고 양도 적은 이 왜놈 식당에서 요런 정도의 음식에 21.1유로를 쓴다. 입만 버렸다.


트램을 타고 시내의 교회같지 않은 교회를 찾아간다. 또 교회다. 지도를 봐도 방향이 잘 잡히지 않아 좀 헤맨다. 매우 간단한 방향인데 왜 그 방향을 못 잡을까? 침묵의 교회라는 이 교회는 더욱 교회답지 않다. 들어가서도 자기가 믿는 아무 신이나에게 기도를 해도 된다니 이런 개방적인 교회가 있다는 게 참 놀랍다. 핀란드의 주요 종교는 루터교라는데 루터가 종교개혁의 시조이니 그 이름을 딴 교회의 집회방식 등등이 어떤지 모르겠으나 이렇게 겸손한 교회가 많은 걸 보면 한국 개신교와는 전혀 다른가 보다. 하긴 한국 개신교야 이미 종교가 아닌 미신의 영역에 빠졌으니...


슬슬 걸어서 카페가 있는 서점으로 가본다. 이 역시 그 왜놈 영화에 나온 곳이라 불쾌한데, 서점 내부는 경탄스럽다. 편안히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는 의자가 여럿 있고 천장에 뚫린 환한 창으로 햇빛도 들어오는 것 같다. 

카페도 같이 있어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신다. 이 동네는 워낙 술에 관대한 동네이니 그렇다 치자.


헬싱키 대성당에 가보니 온통 흰색의 성당이 눈부시긴 하다. 내부는 별 볼일 없다고 들어가지 않네. 어디건 햇빛만 좋으면 이 동네 사람들은 무조건 앉거나 눕는다. 성당 앞 상당히 넓고 높은 계단도 마찬가지네.


수오멘리나 섬으로 가는 페리 부두는 바로 앞이다. 헬싱키가 좁기는 좁네. 그 앞의 노점시장에서 딸에게 줄 조그만 무민을 하나 산다. 암석교회 앞 기념품점보다 더 비싼 것 같다. 11유로.

섬에 건너가는 시간은 불과 15분. 그 시간에 나는 아침에 산 교통카드를 잃어버린다. 섬은 전체가 요새다. 그래서 벽의 두께가 엄청나네. 왠만한 포탄에는 끄덕없을 정도인데 1850년 크림전쟁 이후에 지어진 것이라니 놀랍다. 이제는 헬싱키 시민의 휴식처가 되어 섬을 왕복하는 페리의 횟수도 많고 배를 타는 사람도 매우 많다. 

햇빛을 즐기는 사람들이 섬 곳곳에 박혀 있고 옛날 위용을 자랑하던 대포들은 이제 갈매기들 화장실이 되었구나.

오늘은 좀 적게 걷자 했는데 이렇게 돌아다니면 2만 보는 걷겠다. 징그럽다. 션찮은 점심 때문에 일찍 배도 고프고 힘들어서 저녁을 일찍 사먹기로 한다. 좋은 식당에 간다 했는데 마눌님이 피자집에 꽂혀버렸다. 피자(여기서는 한 판이 1인분이지) 2판에 맥주. 45유로나 된다. 북유럽이 비싸긴 하다. 맛은 좋은데 피자가 맛없기는 좀 어렵지?

피자먹으며 좀 쉬고나니 힘이 또 생겨서 섬 마지막 부분을 걸어본다. 갈매기 한 마리가 꼼짝도 않고 앉아 있어 억지로 날게 해보니 역시 알을 품고 있다. 녀석이 날아다니며 나를 막 공격하는데, 이 놈들이 떼를 지어 공격하면 정말 무섭겠다는 걸 실감한다. 히치콕의 새가 새삼스럽다.

잠수함 박물관도 있는데 5시에 마감이라 공짜라는데 아깝네. 선착장에 오니 배 한 대가 막 떠나고 그러고는 30분을 기다려야 한다. 벤치에 앉으니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지만 무슨 냄새인지 몹시 역겨운 냄새가 나서 자리를 몇 번이나 옮겨야 했다. 결국 2.9유로를 주고 1회권을 산다.







8시에 배를 타고 15분 걸려 다시 육지에 도착, 마지막으로 우스펜스키 성당은 피곤한 탓에 껍데기만 본다. 

어차피 배에서는 표를 점검하지 않으니 배는 그냥 타고 1회권은 버스나 지하철용이다. 지하철이나 배에서 표를 보자는 사람도, 지하철 입구에 표를 넣어야 문이 열리는 시설도 없이 그냥 통과다. 그러다가 걸리면 벌금을 무섭게 매기는데, 아무리 벌금을 많이 매긴다 공짜로 타는 사람은 없을 수 없고, 그 정도는 사회적 비용으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헬싱키 또는 핀란드의 재정이 풍부하다는 거지?


이 동네 사람들은 어디든 햇빛만 좋으면 마치 벌레처럼 햇빛에 나와 있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하철은 중앙역 부근 헬싱키 대학역이다. 900m를 걸어가라는 구글의 지시에 충실히 따르니 하얀 대성당이 다시 나오네. 지하철로 숙소는 약 17분. 숙소에 오니 역시 수건도 갈아놓지 않았다. 괘씸한 주인 놈. 무슨 민박 서비스가 이 따위냐? 세탁기에 쳐박힌 세탁물에서 썩는 냄새가 나서 마눌님이 질색을 하는데 방법이 없다. 

뻗어 있다가 11시 다 되어 폰을 보니 이 놈이 바빠서 올 수가 없다네. 대신 가스는 맡아줄 테니 내일 아침에 나가면서 두고 가란다. 정말 괘씸한 놈이다. 

피자로는 속이 헛헛해서 맥주와 남은 소시지 등으로 배를 채우고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