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3(6월 1일) 투르쿠 - 오울루 669km
오늘부터 이틀간 캠핑이 시작된다. 어떤 모습이 될지 매우 궁금하다.
소시지 김치국을 끓여 아침. 양배추는 삶아서 점심에 먹기로 한다.
투르쿠를 떠나기 전에 성을 둘러보기로 하고 성에 갔는데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다. 무료주차장이 있는 것 같은데 다른 차들은 대시보드 위에 시간표 같은 걸 뒀네. 나중에 마트에서 보니 그런 걸 따로 판다. 이렇게 사서 내 차가 몇 시에 왔는지 표시를 하는구나. 주행속도를 지키는 것 등등 볼수록 준법정신이 투철하다는 느낌인데, 아마 벌금이 어마어마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성은 박물관에 들어갈 때만 입장료를 받고 내부는 그냥 개방하는 곳이다. 주차 문제도 있고 앞으로 650km를 달려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간에 쫓기는 느낌이 들어 재촉하다시피 둘러만 보고 출발하는데, 나중에 마눌님은 성을 좀더 찬찬히 보면서 느긋하게 즐기지 못 해 아쉽다네. 성은 매우 소박하고 내부도 단순한데 뭔가 묘하게 사람을 끄는 구석이 있다고 마눌님이 좋아한다.
러시아야 어쩔 수 없다 치지만, 북유럽에 와서도 이렇게 달리기만 하는 것이 우리 여행의 목적이 아닌 건 분명하니 생각을 좀 해야겠다. 노르드캅도 그렇다. 우리가 유럽 대륙의 동서남북 끝을 다 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다. 여기까지 와서 노르드캅을 포기하는 게 매우 아쉽기는 하지만, 1,000km를 더 달려서 자랑거리 하나 더 만드는 건 바보짓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래서 노르드캅을 포기하고 오울루에서 2박을 하기로 하니 마음이 좀 편해진다.
탐페레를 지나 휴게소 뒤 공간에서 점심을 먹는다. 내 밥이 모자라 보여서 핫도그 하나와 커피로 점심을 때웠는데 나중에 배가 많이 고팠다.
지도에서 보는 대로 호수가 매우 많은 핀란드 내륙을 느긋하게 달리는 핀란드 차뒤에서 졸졸 따라간다. 도대체 인간들이 앞에서 트럭이 빌빌거려도 왠만해서는 추월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따라간다. 핀란드를 잘 모르는 게 당연하지?
바다같은 호숫가에 잠시 주차하고 쉰다. 호숫물이 맑지 않은 건 바닥 탓인지, 물 자체의 성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맑지 않은 물을 보는 건 그리 기분좋은 일이 아니다. 그저께 에스토니아 비루라바 습지의 호숫물도 이렇게 시커먼 색깔이었지.
기름을 넣는 방법을 몰라 헤매고 있는데 젊은 아기엄마 하나가 기꺼이 도와줘서 잘 채웠다. 먼저 카드를 넣어 주유량을 결정해야 하는데, 영어로 설명이 나와도 그걸 따라하지 못 하는 건 왤까?
오울루에 진입해서 저녁거리를 준비하러 마트에 간다. 내 라이터 기름은 결국 구하지 못 한다. 돼지갈비와 상추 등등.
배의 면세점에서 비싸게 샀다고 기분이 나빠진 마눌님이 핀란드 화장품을 결국 1개 물타기한다. 면세점은 늘 비싸다.
오울루 날리칼리 캠핑장에 도착하니 8시 50분. 아직 해는 중천이다. 성수기가 아니라서 자리는 많다. 전기를 써야 한다니 카라반 사이트를 배정하는데 텐트 전용보다 가격이 어떤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3명이 35유로인데 인원수 확인을 하지 않으니 다음 캠핑장에서는 그냥 2명이라고 해도 되겠다 싶다.
캠핑장 규모는 매우 크다. 각종의 다양한 캠핑카가 주된 손님이고 텐트는 그리 많지 않다. 새로 지어진 히떼(우리 식으로는 방갈로)는 신식이라 마치 호텔의 별관같아 보이기도 한다. 화장실, 취사장 등이 가까운 자리를 받아 사이트에 오니 모기가 대환영이다. 모기가 있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여자들에게 저녁을 준비하라 그러고 혼자서 모기들에게 뜯겨가며 텐트 2개를 다 친 시간이 10시. 어쨌든 모기 때문에 캠핑이 참 난감하네.
캠핑장 시설은 좋은데 사이트에서는 불을 피울 수 없다네. 캠프 파이어도 6월 4일 16시까지는 핀란드 정부에서 허용하지 않는단다. 그래서 요리는 전기곤로, 싱크대와 식탁이 구비된 별도 취사장에서 해야 한다. 그렇게 마음고생해가며 지켜온 가스는 쓸 일이 없어졌다. 어쩌면 다른 캠핑장도 마찬가지일 수도 있으니 잘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완전히 백야 지역에 들어온 것이라 정말로 해는 지지 않고 버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