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8 트롬쇠 - 로포텐 제도 모스케네스 캠핑장 555km
아침에 또 비가 온다. 트롬쇠 사흘 내내 비와 진눈깨비와 우박에 추위 등 다양한 날씨를 겪는다. 로포텐 제도는 비가 오지 않는다니 기대가 되는데, 하늘 일을 우리가 어찌 알겠어?
좀 서둘러서 스프로 아침을 때우고나니 8시다. 짐을 챙겨 9시에 출발한다. 이틀 내내 비에 시달리다 출발하는 시간까지 비가 내리니 트롬쇠가 많이 서운하다.
트롬쇠를 벗어나면서도 눈덮인 산과 피요르드의 절경은 끊이지 않아 수시로 차를 세워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경치가 좋아도 카메라는 사람 눈을 따르지 못 하니 사진을 아무리 찍어도 아쉬움은 남는 법. 올 때는 눈에 띄지 않던 통행료 카메라가 자주 보인다. 공사 중인 도로에서도 통행료는 꼬박꼬박 챙겨서 우리가 노르웨이 도로공사에 돈을 많이 보태주는구나 싶다.
맛있어 보이는 핫도그를 파는 쉘이나 K 주유소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열심히 찾는데 주유소가 도통 보이지 않는다. 세계 어디서나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말이 딱 맞다. 그 말이 맞는 건 좋은데 배는 점점 고파진다. 도로에 휴게소가 거의 없으니 식당도 보이지 않고, 주유소가 휴게소를 대신해서 식당이나 화장실도 주유소에서 해결해야 하니 많이 불편하네. 오후 3시가 넘어서야 겨우 나타난 주유소는 우리가 찾던 주유소가 아니지만 배가 고파서 아무거나 먹자 하고, 식당에서 소시지 하나만 달랑 넣은 핫도그로 점심을 때운다. 너무 작아서 먹어도 배가 차지 않는 이런 핫도그도 3개에 150크로네다. 식당 음식이 입맛에 맞기만 하면 비싸게라도 먹을 텐데 맞는 음식도 없으니 참 큰일이다.
비는 끊임없이 오락가락하며 우리를 심란케 한다. 그 와중에도 경치는 끝없이 우리의 감탄을 멈추지 않게 하니, 이 노르웨이를 어떻게 하면 좋으냐...
드디어 로포텐 제도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넌다. 적당한 사진 포인트가 없어서 매우 아쉽다.
무지무지 많은 터널을 지나고 다리를 건너고 구비를 돌 때마다 나타나는 경치 때문에 정신이 없다. 해변에서 바로 솟아오른 최소 5-600m 높이의 눈덮인 산들과 피요르드의 바닷물이 만드는 경치. 게다가 마을이 있는 곳이면 빨간 집들이 그 경치에 가세해서 혼을 뺀다. 트롬쇠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눈산이 없을 거라 예상했는데, 도처에 눈산이다. 아직은 위도가 높다.
어떻게 이런 지형이 가능한지 그야말로 필설로는 표현이 부족한데, 카메라가 그 경치를 다 담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아이슬란드에 가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비는 그치지 않고, 갈길은 멀다. 아침에 넣은 기름이 좀 달랑거려서 마침 나타난 싼 주유소에서 기름도 가득 채운다. 가득 채운 건 처음이다. 오는 곳곳에 캠핑장이 매우 많다. 노르웨이에는 캠핑장이 많다는데 역시 곳곳 경관 좋은 곳에 캠핑장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왜 구글에서는 로포텐의 캠핑장으로는 이곳 모스케네스 캠핑장만 보여주는 거냐?
중간 어디쯤에서 숙소를 잡았으면 했는데 마눌님이 모스케네스 캠핑장까지 가보자네. 8시 20분쯤 예정했던 캠핑장에 도착하니 빈 자리가 많다. 관리인 놈이 매우 무뚝뚝해서 좀 불쾌하다. 캐빈 또는 휘떼는 1,600크로네를 달라니 포기한다.
로포텐은 비가 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일기예보 중의 하나라는 노르웨이의 일기예보도 믿을 수가 없네. 오는 내내 내리던 비가 마침 그쳐줘서 적당한 곳에 텐트 2개를 치고 아침 마트에서 사온 돼지고기 등을 구워서 저녁을 먹는다. 오늘은 맥주를 아주 조금만 마셨다. 캠핑장의 취사장에는 인덕션 렌지가 있는데 이 놈도 냄비를 가려서, 처음으로 버너를 쓴다.
모스케네스 캠핑장은 로포텐 제도의 끝자락에 있는데 북해와 연결된 노르웨이해가 이렇게 호수처럼 잔잔할 줄은 몰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