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3 외스테르순드 - 소르셀레 391km
새벽 4시에 잠이 깨서는 잇지를 못 한다. 오늘 또 가면서 얼마나 졸려고 이러나?
아침 바람이 강하고 찬데, 하늘은 맑다.
외스테르순드 시내를 벗어나자 길은 고속도로만큼이나 괜찮고 제한 속도도 100이라 좋은데 가면 갈수록 단조롭다. 고도 2-400을 오르내리며 길가에 가득한 나무만 보며 운전하는 게 몹시 지루해서 러시아 생각이 날 정도다.
스웨덴 도로의 휴게소는 매우 인색하다. 주차할 공간만 있고 화장실은 없다. 러시아에서는 그래도 더럽지만 자주 쪼그려쏴 변소라도 있었고, 휴게소가 매우 자주 나타나는 핀란드도 도시 지역을 벗어나면 좌식이라고 생겼지만 실제로는 쪼그려쏴 방식인 화장실이 곳곳에 있었다. 노르웨이는 핀란드보다 훨씬 깨끗하고 휴지도 풍성한, 제대로 된 수세식 화장실이 구비된 쉼터가 많았다. 그런데 세계 3위의 부국이라는 이 스웨덴은 화장실이 구비된 쉼터가 보이지 않는다. 어제 3-400km 정도만에 겨우 하나 나타난, 화장실이 있는 쉼터에서는 그래도 깨끗한 좌식 변기와 휴지가 있는 화장실을 볼 수 있어 반가웠다. 휴게소는 아예 없고, 주유소가 그냥 휴게소다.
지난 밤에 못잔 잠을 핸들을 넘기고서 잘 채우고 나니 빌헬미나 부근이다. 길가에서 갑자기 순록 2마리가 나타나서 반가웠다. 여기도 순록 주의보는 곳곳에 있기는 하다.
스웨덴 내륙을 개발하겠다고 건설한 종단열차선인 인란드바난(Inlandsbanan)은 한때 폐쇄위기를 맞았으나 주민과 당국이 힘을 합쳐 현재 하루 1회 왕복의 열차선으로 운행할 수 있게 됐단다. 그런데 이렇게 특별히 볼 관광거리도 없이 숲과 호수만으로 이어진 약 1,000km로 얼마나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을까 싶다. 다녀보니 역시 관광객이 기차로 올 만한 곳은 없다. 그냥 이런 열차를 타봤다는 자랑거리 정도? 하루에 한 번 기차가 서는 역이니 대단히 한산한 게 당연하다.
인란드바난 열차가 점심시간을 준다며 50분 정차한다는 빌헬미나. 평점 4점이라는 스트레 콘디토리 식당에서 비싼 점심을 먹어본다. 버거, 피시앤칩스, 그리고 새우와 달걀을 얹은 오픈 샌드위치에 6만원 정도. 비싸면 맛이 좀 나으려나 했는데 값만 비싸고 맛은 참 없다. 이런 음식을 이런 돈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스웨덴 사람들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북유럽에서도 버거를 많이 먹는 것 같은데 원래 이 동네 음식이 아니었지?
소르셀레에 들어와 마트 2곳을 방문하며 물가조사를 해본다. COOP에 들러서 채소 등을 좀 사고나서, 바로 옆에 붙은 ICA도 들러보니 여기는 농산물이 좀 싼 듯해서 토마토를 물타기한다.
호텔은 호수 안 섬의 마을에 있다. 이 호텔에 한국인은 처음이란다. 그래서 방명록에 기록을 남긴다. 마을은 여전히 편안하고 조용한 시골마을. 한 바퀴 빙돌아 산책을 하면서 매우 심심한 마을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릴 때 그네를 타보지 못 해 그네만 보면 어릴 때 생각이 난다는 마눌님은 학교 앞에 매인 그네를 타며 회포를 푼다.
호텔인데도 주방 기구가 넘칠 만큼 많은 1층의 주방에서 어제 사온 오겹살 햄에 한국보다 싼 버섯 등을 넣고 볶아서 소주 한잔하고 일찍 뻗는다. 운전을 많이 해서 그런지 허리가 편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