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6 쿵스레덴 맛보기
지난 밤 2시가 훨씬 지난 시간에 피곤에 절어 잠이 들었는데 8시에 일어나서 스프와 어제 주워온 왜놈 라면으로 느긋하게 아침을 끝낸 시간이 11시.
몸이 다 풀리지는 않았지만 쿵스레덴 맛은 봐야지. 12시에 숙소를 나섰는데 메모리카드를 컴에 꽂아두고 나와서 다시 왔다갔다 하느라 20여 분을 까먹는다.
길은 매우 편하다. 약 6km를 가는 동안 고도는 겨우 60m(마지막에 깔딱? 5m를 포함해서)를 올리니 이건 그냥 평지다.
참 심심한 길이다. 엉덩이를 붙일 만한 바위도 별로 없고, 인공적인 편의시설은 난로가 있는 5인용 정도의 오두막과 화장실 3개만 있는 쉼터 정도다. 자연훼손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보인다는 느낌.
어디까지 가야 좀 힘든 구간이 나오나 확인하러 가기로 했는데 산보다 우리가 더 지쳐서 점심 샌드위치만 먹고는 하산하기로 한다.
쿵스레덴. 한번 와보고 싶은 길이어서 이 길을 걸어보게 된 것 역시 이번 여행의 행운이긴 한데 길이 너무 심심하다고 생각하는 건 전체 440km 중에서 겨우 6km 남짓 걸은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
쿵스레덴(Kungsleden, King's Road). 북쪽 아비스코에서 남쪽 헤마반까지 약 440km의 트레일. 1900년대 초, 스웨덴 북부 산들에 쉽게 접근하는 방법으로 고안되어 아비스코 부근에 산장을 설치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이름이 없었으나, 1920년 대에 특별한 이유나 명명식없이 쿵스레덴이란 이름이 등장했고 1975년 헤마반까지 연결됨으로써 완성되었다. 현재도 남쪽으로 계속 연장되고 있는데 남부 쿵스레덴으로 불리기도 한다. 일부 구간은 겨울용과 여름용으로 나뉘어 있고 매년 스웨덴의 유명 등산장비 제조업체인 피옐라벤에서 걷기행사를 주최한다.
많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어린 여학생, 아마도 대학생? 둘이 비박 장비를 매고 한없이 느긋하게 길을 가고 있고, 가족 단위로 널널하게 걷는 일행도 본다. 거의 뛰다시피 걷는 청년, 아예 마라톤을 하는 듯한 여자 등 다양하게 이 길을 즐기는구나.
눈산에서 내려오는 눈녹은 물은 수량이 정말 풍부하고 맑다. 보통 빙하가 녹은 물은 빙하의 성분 때문에 부옇게 된다는데 이 산들의 눈은 빙하가 아니라 이렇게 맑고 깨끗한 것이겠지? 발을 담궈보니 너무 차서 1초도 버티지 못 할 정도다.
죽은 자작나무에 버섯이 많이 달려서 혹시 차가버섯이 아닌가 하고 따고는 나중에 알아보니 말굽버섯이라네. 하긴 말굽처럼 생기긴 했다. 이 놈도 일부 암에 대한 약효가 있다니 나중에 이 버섯을 채취하는 사업을 해볼까 생각만 해본다. 살아 있는 자작나무는 수피에 이끼가 많이 붙으면 그 부분을 떼어내려고 수피를 스스로 벗겨내는 것 같다. 신통한 놈이다.
오늘 왕복 12km. 트롤퉁가는 왕복 22km에 경사도 쿵스레덴보다 좀 심해서 마눌님이나 나나 걱정이 되기는 한다. 이제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걸 인정해야 하나?
마트에 가서 저녁거리를 사고, 앞으로 먹을 오겹살 햄도 채운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뜨겁지 않은 사우나를 한다. 일본인이냐고 묻는 스웨덴인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아직 이 동네 사람들은 한국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남은 오겹살햄을 버섯과 볶아서 소주 한잔. 완전히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