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49 파우스케 - 산네스쇠엔 - 모조엔 378km

나쁜카카오 2018. 11. 13. 08:49

어제 소주 덕분에 잠을 잘 잤다. 새벽엔 구름이 가득하지만 비올 구름이 아니더니 금방 다 걷히고 해가 나와서 텐트걷는 게 매우 편해졌다. 다행이다. 노르웨이 날씨는 정말 변화무쌍해서 예측이 안 된다.


스프와 토마토 등으로 아침을 때운다. 그래서 오늘은 점심 배가 좀 일찍 고팠다.

물이 5분만 나오는 건 아니라고 말은 들었지만 여전히 불안해서 머리만 감고 몸은 비누없이 물로만 샤워했는데 끝내고 나서도 한참동안 물이 끊어지질 않아 매우 아까웠다. 이럴 거면 5분만 나온다는 안내는 없애야 하는 게 아닌가? 

10시 출발, 잠을 잘 잤다 하고 일어났는데 텐트걷으며 힘이 빠진 탓인지 졸음이 일찍 온다. 8.7km 터널을 지나면서는 졸려서 고생을 좀 했다. 뢰크란드 싼 주유소(리터에 13.79. 기름값의 변화가 참 신통하다)에서 기름을 가득 채우고 핸들을 넘긴다. 내가 잠을 자면 둘이서 사진을 찍느라 진행속도가 많이 느려진다. 마눌님이 사진을 좋아하니 뭐라 그러기도 어렵다.

다시 핸들을 넘겨받으니 금방 북극선 휴게소다. 오늘은 지난 번보다 관광객이 훨씬 많고 하늘이 맑아 지난 8일에 넘을 때와는 경치가 전혀 다르다. 이제 북극권을 완전히 떠나는 셈이지? 지난 번에 이곳을 다시 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열흘도 지나지 않아 다시 오게 되다니, 사람 일이란 정말 모르는 거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오랫동안 오게 되지는 않겠지. 오늘은 티셔츠와 모자 2+1 행사를 하네. 아깝다. 물타기 참느라고 혼났다.


그동안 공사가 많이 진척되어 길이 좀 편해졌다. Skonseng이란 동네 교회 옆 쉼터에서 점심 샌드위치를 먹으며 좀 쉰다. 무슨 행사가 있는 날인지 노르웨이 전통의상을 입은 여자 아이도 두엇 보인다. 이곳에 와서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을 처음으로 보는 셈이지? 같이 사진을 찍자는 말을 하지 못 한다.


산네스쇠엔에 가는 길은 돈이 너무 많이 든다. 물론 터널도 있고 멋지게 생긴 다리도 있지만, 그런다고 불과 40여km 거리에 150크로네(우리 돈으로 약 2만원)나 달라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치다. 이렇게 비싼 통행료를 내고 다녀야 할 노르웨이 사람들이 불쌍하다. 노르웨이를 다시 오겠다는 생각이 이 비싼 통행료와 비싼 기름값 때문에 달라질 수도 있겠다.

아침에 8.7km터널을 지나면서 졸음 때문에 고생을 했는데 이번에는 10.9km나 된다. 터널은 정말 싫다. 터널이 긴 탓인지 터널 안에 거리표시를 한 건 처음 본다. 졸릴 때나 밤에 터널을 지나면 터널에 빨려드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불안하다. 

다리는 참 멋지다. 사진을 찍으려고 차를 세우고 밖에 나가니 바람이 엄청나서 내 몸이 날리는 느낌이다. 이곳에는 왠일로 사진찍기 편하게 주차장도 있다. 

사장교 자체가 멋진 다리이긴 하지만, 양쪽 끝의 높이가 다르고 아랫부분은 섬에서 뻗어나온 땅으로 연결되어 90도로 휘어지게 만든 모양이 매우 독특하다. 그 땅에 곧장 일직선으로 연결해도 될 텐데, 굳이 휘어지게 만들어 모양을 내는 건 노르웨이의 미적 감각인가? 계곡에서도 거의 필요치 않아 보이는 보를 만들어 물을 가두는 것도 어쩌면 보기 좋으라고 그런 게 아닌가 싶었는데...


산네스쇠엔 동네 자체는 작은 만큼 더 예쁜데 우리 목표는 7자매봉인지 하는 걸 보는 것이라 일단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그러나 결국 7자매봉인지 뭔지는 찾지 못 하고 기름만 낭비한 셈이 됐다. De Syv Soestre 트레일 헤드는 보이는데 산은 찾을 수가 없다. 노르웨이는 매우 불친절한 나라라는 생각을 더욱 굳힌다.


다시 다리를 건너서 핸들을 넘기고 잠을 깨니 또 비가 부슬거린다. 우리 이동거리가 좀 길긴 하지만, 아침의 맑은 날씨가 저녁까지 유지된 날은 한번도 없었던 듯 하다.

모조엔 숙소는 구글이 또 헷갈려 헤매게 하더니 집을 찾고 나서는 주인놈이 없어서 한동안 기다리게 만든다. 전화를 하면 전화하지 말라고 할 게 아니라 키박스 암호만 알려주면 되는 거잖아. 집은 깔끔해서 좋은데 드라이어, 세탁기 기타 등등 없는 게 많아 불편하다. 

노르웨이. 혼이 나가도록 빼어난 경치와 수많은 캠핑장, 그리고 캠핑카가 편하게 주차할 수 있는 곳곳의 쉼터 등으로 캠핑카를 빌려서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지만, 이런 것 빼고는 참으로 호감이 가지 않는 나라다.

또 있다. 경치가 좋아 차를 세우고 구경하고 싶어도 마땅히 세울 곳이 없어 지나쳐야 하는 경우가 많다. P로 표시된 간이 주차장이 많기는 하지만 전망과는 관계없는 위치인 경우가 많아 참 아쉽고 한심하다.

닭다리와 대구조림으로 저녁을 먹으며 소주 한잔. 혹덩어리를 6월 28일에 오슬로까지 데려다 주기로 한다. 그만만해도 정말 다행이다.

마눌님은 여행체질이 되었는지 별로 힘들지 않고 집생각도 별로 나지 않는단다. 신통하다. 집이라는 게 익숙하고 편안한소파, 부엌, TV 같은 것보다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맥주를 추가로 채우니 잠자기 적당할 정도로 술이 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