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56 플롬 - 베르겐 171km

나쁜카카오 2018. 11. 14. 10:31

좀 일찍 눈을 뜬다. 5시 반. 다행히 구름만 낀 하늘이라 텐트걷기에 어려움은 없겠다. 캠핑장을 한 바퀴 둘러보며 캠핑카들을 살펴보니 재밌다. 내 차를 어떻게 개조를 해야 잘 하나 싶은데, 카니발은 차가 예쁜 만큼 높이가 낮아서 잘 만들기가 쉽지는 않겠다.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철수 준비를 한다. 마눌님도 일찍 7시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네. 마침 하늘이 개는 듯 해서 철수가 편하다. 그래도 며칠하지 않은 캠핑에서 걷을 때 비가 오지 않아 참 다행이다. 맛없는 스파게티를 아침으로 때우고 10시 출발. 철수가 순조로운 덕분이다.

터널 2개를 지나고나니 비가 내린다. 거기에 졸음이 오는데 다들 피곤해해서 핸들을 넘기지 않고 중간중간에 열심히 쉰다. 


계곡이 매우 좋은 Voss라는 동네 초입의 쉼터에서 한참을 쉬는데 비가 오는 와중에도 자전거 대회가 있는지 젊은이들이 바글거린다. 대개의 경우 비가 하루종일 쏟아지지는 않는 것 같으니 이렇게 비를 아랑곳하지 않고 야외활동을 열심히하며 재밌게 사는구나.

Voss에 들어와 약간 규모가 있는(그래봐야 빵집 하나 달랑 있을 뿐이지만) 휴게소에서 핸들을 넘긴다.

잠에서 깨니 베르겐이 20여 km 남았는데 비는 그치질 않는다. 도시는 피요르드를 따라 길게 형성되어 있어 도심으로 가는 길에 터널이 매우 많다. 노르웨이, 페리의 나라이기도 하지만 터널의 나라가 더 적당하다.

가는 길에 이케아가 보여서 혹시 했더니 역시 쉰다. 이케아처럼 큰 매장도 일요일에는 쉰다. 기름이 싸서 탱크를 가득 채운다.

비가 오니 달리 갈 곳도 없고 해서 시내 미술관에 맵스미의 도움을 받아 잘 갔는데 지하 주차장 높이를 전혀 생각지도 않고 무작정 들어갔다가 차가 꼼짝도 못 하게 갇혀버렸다. 캐리어 짐을 빼내고 내려서 따로 들고 올라가게 하고 차를 밖으로 빼내 위기를 모면했다. 별 짓을 다 해본다.

김이 새서 어시장의 생선이나 사서 숙소에 가자 했는데 주차가 마땅찮다. 겨우 한 곳을 찾아 주차하는데 일요일에는 주차료를 받지 않는단다. 노르웨이 20여 일만에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인데, 그간 주로 산속을 헤매다 보니 도시에만 오면 좀 어리둥절해지는 경향이 생겼나 보다. 고등어 2마리만 겨우 사서 어시장 입구에서 기다리는 마눌님을 만나 바로 숙소로 향한다. 집에서는 노르웨이 냉동 고등어만 사먹다가 노르웨이에 와서 생물을 사네. 맛은 어떨까?


베르겐은 노르웨이 제2의 도시답게 매우 크다. 부둣가에는 옛 한자동맹 시절의 전형적인 건물이 즐비해서 그림만 본 코펜하겐의 니하운을 연상케 하고 역시 초대형 크루즈 유람선과 관광객으로 북적거린다. 어시장은 해물이 매우 다양하기는 한데 정말 비싸서, 생선 등 해물을 직접 요리도 해주는 가게에서 먹을 엄두를 내지 못 한다. 굳이 이렇게 궁상을 떨 일도 아닌데 싶기는 하다. 아기 머리통만한 성게를 먹어보고 싶기는 했고, 내 머리만한 생선대가리를 사서 구워보고도 싶었다. 분홍색 생선인데 이름은 당연히 모른다.


숙소까지는 또 터널을 지나서 약 15분, 집은 잘 찾았는데 방찾기가 미로 수준이다. 바로 앞에 바다가 툭 틔어서 전망만 좋은 집이다.하지만 비가 오니 전망이고 뭐고가 없네. 집이 서늘한데 난방기구가 보이지 않아 춥고 세탁기와 건조기는 쓰는 중간에 전원이 나가버리네. 주인 놈에게 연락하니 소식이 없다. 고등어조림으로 저녁은 맛있게 먹는다. 생물 고등어가 역시 맛은 있지만 큰 차이는 느끼지 못 한다. 금주 2일째.

메시지를 보낸 지 세 시간이 지나서야 집주인 놈의 답장이 겨우 와서 휴즈를 올리고 건조를 계속한다. 얌통머리 계집이 미운 짓만 골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