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62 오슬로 - 비겔란 공원 - 드람멘 54km
두 번째는 뭐든지 감동이 덜 하기 마련이어서 아침식사가 어제보다는 다소 먹을 게 없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푸짐하게 먹고 점심까지 챙겨본다. 사실, 점심을 챙기는 건 좀 창피한 일이긴 하겠는데 그래도 쪽은 짧고 money는 길지?
오슬로는 덥다. 늘어지게 퍼져 있다가 12시 넘어서 관광을 나서본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니 540이 결제되는데 48시간이라 하더라도 한번 빼면 그 남은 시간이 무효가 되는 기막힌 시스템. 정말 그런가 하고 확인하러 다시 들어간 건 실수다. 30분에 38크로네를 내야 하는 게 아까워서 그냥 두고 아케르후스 요새와 시청사를 보러 간다. 좀 많이 걷기는 하겠는데 결과적으로는 퍼레이드 행렬을 헤치며 올 수 있어서 다행이기는 하다. 인생만사 새옹지마냐?
요새는 뭐 늘 그렇다. 트론헤임의 요새가 높은 곳에 있어서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그 여파가 요새만 있으면 일단 가봐야 하는 것으로 나타나 베르겐에서도 효과를 보긴 했지. 더워서 걷기에 힘들다. 더운 건 점점 참기 힘들어진다. 이 요새는 그저그렇다. 성벽에 올라서니 부두에 바로 접안한 크루즈 유람선이 부럽다. 우리도 언젠가는 저런 유람선을 타겠지? 시간도 시간이고 해서 대충 훑어보고 시청사로 간다. 오슬로는 작은 도시라 볼 것들이 금방금방이다.
시청사에 들어서니 넓은 홀을 둘러싼 벽에 그림이 가득이다. 노르웨이가 부러운 것 중의 하나는 그림이든 동상이든 기독교 관련 이거나 성인이 아닌, 노동자, 어부 등의 보통사람들이 모델이라는 점이다. 입구나 여기 그림들이 다 그렇고 시내의 거의 모든 동상 등이 다 그렇다. 한국인 한 팀이 와서 시끄럽게 구경하더니 물러나고 중국인 한 팀도 시끄럽다. 현숙은 2층에 올라가 혹시 뭉크가 전시되었나 보러가기도 한 모양이다. 여기서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열린다지?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이 여기 왔다지?
시청사를 나와 왕궁 앞 도로에 가니 퍼레이드를 기다리는 인산인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퍼레이드가 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참 재밌어 보인다. 주차장 방면에서 퍼레이드가 오는 코스라 역으로 거슬러 가면서 사람들을 보는데 성당 가까이 가니 퍼레이드가 모습을 보인다. 특별히 꾸미거나 하는 게 없이 그냥 음악을 크게 튼 트럭이나 국기를 흔드는 보통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신나게 몸을 흔들며 끝없는 행렬을 만들고, 도열한 관중들은 그 행렬을 보며 열광할 뿐인데, 보는 나는 그냥 즐겁고 부럽다. 우리도 이런 날을 맞을 때가 있겠지? 진심으로 내 나라를 사랑하는 방법을 국기나 나라를 나타내는 다른 상징들로 기꺼이 드러내는 날.
2시간 주차에 152크로네를 내고 주차장에서 빠져나와 혹시 왕궁 정원에 들어가 점심이나 막을 수 있나 주차장을 찾아보는데, 없다. 결국 비겔란 공원까지 가야 하네. 2시간 주차를 끊고 안으로 들어가 우선 아침에 마련한 샌드위치로 점심. 맛이 없네. 갈수록 이 나라 음식이 맛없어져서 큰일이다.
비겔란 조각공원. 각양의 모습을 한 수 백명의 보통 사람들을 모델로 조각한 석상들이 다리 위에도, 높은 단 위에도, 그리고 아라베스크처럼 높은 석탑에도 널렸다. 정원도 좋아서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 한잠 푹 자고나니 개운하다.
4시 46분 주차시간을 다 채우고 드람멘으로 향한다. 40km밖에 되지 않으니 금방 도착한다. 드람멘은 안내책자에도 나오지 않는 한적한 시골 동네. 그 중에서도 Scandic Park Hotel. 이름은 근사한데 오래 된 호텔이라 엘리베이터는 여닫이 문이 달렸다. 건너편에 주차하면 돈을 내야 하는데 호텔 앞 길가는 월요일까지 무료라 해서 주차비는 별도로 들지 않으니 좋네. 방은 덥다. 에어컨은 작동하지 않는 것 같고 냉장고는 나중에 한참을 살펴봐서 전원을 연결했다.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마트에 가도 먹을 게 없다. 술이나 한잔하며 어제 남은 닭날개나 해치울까 했는데 8시 마감 시간이 지나서 살 수가 없네. 이래저래 금주에는 보탬이 되지만 내 기분에는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다. 혼자서 다시 음식점을 찾아다니다, 나름 이 동네 번화가인 곳의 세븐일레븐에서 파스타와 깔조네를 사서 저녁을 때운다. 음식이 시원찮아서 정말 큰일이다. 바르샤바에 가면 좀 나을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