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68 퇸스베리 -뤼세보튼 358km
호텔의 아침식사는 매우 간단하다. 빵, 치즈와 햄 약간, 요거트, 오이와 토마토 등 채소. 그러니 먹을 게 없다. 오늘 역시 점심은 챙기지 않기로 한다.
10시에 출발하면서 호텔 뒤 요새에 올라본다. 그닥 볼 것이 없는 조그만 동네 퇸스베리. 바다만 있다. 저기 아래, 지난 번에 와서 내가 빠졌던 그 바다도 보인다.
덴마크에서 합류할 친구와 쉐락볼튼을 같이 가나 어쩌나 한참을 고심하다가 뷔스비를 포기하지 않으면 시간이 없고, 포기하면 우리 부담이 너무 많아져서 결국 당초 일정 대로 여행하기로 하고 쉐락볼튼을 향해 출발한다.
또 도로 입구를 잘못 들어서 동네를 완전히 한 바퀴 빙 돌고 E18 유로도로로 들어선다. 일반 도로도 있는데 쉐락볼튼 캠핑장에 혹시나 자리가 없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여유를 빼앗는다.
고속도로를 벗어나면서부터는 길이 계속 꼬불길이다. 어떤 동네에서는 도로공사 중인 곳에서도 통행료를 받으니, 도대체 이 놈의 나라에서 통행료 징수기준이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기름값이 싼 주유소에서 기름을 가득 채우는데 영수증이 나오질 않으니 좀 답답하다.
점심 먹을 시간은 지났는데 식당은 보이지 않고, 어쩌다 보이는 식당에서는 먹을 게 없고. 대형마트가 있는 제법 큰 마을에서 겨우 마트의 피자와 그라탕을 사서는 길가 휴게소에서 점심을 때운 시간이 2시가 넘었다.
길은 지겹도록 꼬불길이라 운전이 힘들다. 오늘은 겨우 400km도 되지 않는 거리인데 왜 이리 운전이 힘든 것이냐. 경치도 별로 볼 게 없고, 길은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해서 귀찮고... 어느 산골마을?이라기보다 일종의 휴양시설 같은데 전통방식의 집들만 산 속에 까만 벽채로 점점이 박혀 있는 풍경이 이채롭다.
뤼세보튼 이정표가 나타나서 매우 반가운데 길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산을 올라간다. 쉐락볼튼이 해발 1100정도, 주차장은 700정도이니 거기까지 가는 길이 해발 1200을 올린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지. 거의 바위산인데 곳곳에 호수가 박힌 황량한 경치가 참 기막히다. 가보지 않고 그림으로만 본 아이슬란드 길이 이렇게 생겼을 거다며 둘이서 이야기할 정도로 신기한 지형이다.
고원 형상인데 바위 사이로 풀과 호수만 있고 그 사이로 양 또는 염소들이 열심히 풀을 뜯으며 도로를 가로막기도 한다. 길은 거의 왕복 1차선이고 가끔 양보차선이 나와서 맞은 편에서 어떤 차가 오는지 신경도 써야 한다.
쉐락볼튼 주차장을 지나 드디어 뤼세보튼 캠핑장으로 내려가는 꼬불길에 접어든다. 예상보다는 운전할 만한 길인데 마지막에는 산허릴 자르는 게 도저히 어려웠던지 길고 경사지게 터널을 파서 길을 연결했구나. 참 대단한 노르웨이다. 이런 곳에 쉐락볼튼 등의 풍광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으며, 그곳에 가려면 어디서부터 어떤 식으로 길을 만들어야 하는지 아는 게 참 기막히게도 신통하다.
캠핑장은 예상대로 전기사이트가 다 마감되었는데 누군가 전기를 나눠주면 가능하다 해서 한 바퀴 돌며 전기나눌 캠핑카를 찾는다. 캠핑장 규모가 예상 외로 크지 않아 자체에서 제공하는 전원은 많지 않다. 다행히 전기를 나눠주겠다는 캠핑카 하나를 찾아 그 옆에 텐트를 친다.
이제는 텐트치는 게 좀 익숙해졌는데 여기는 바람이 몹시 분다. 텐트바닥을 먼저 고정시키면 일이 많이 쉬워지는데 이제서야 그걸 깨닫다니...
뤼세보튼은 동네가 작아서 마트가 없다. 점심을 산 그 마트에서 저녁거리를 준비할까 하다가 뭔가가 있겠지 하고 왔는데 가게라고는 없네. 캠핑장 리셉션에서 음식을 파는데 우리는 그런 음식을 그 돈에 절대로 사먹지 않지.
바람막이를 텐트 옆에 치니 많이 아늑해졌다. 가스불에 밥하고, 햄과 캔김치를 볶아서 밥과 맥주로 저녁을 때우고는 일찍 잔다. 할 일이 없네. 인터넷은 연결이 잘 되는 편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떨지는 모른다.
캠핑장 시설은 너무 열악해서, 트롤퉁가 오다 캠핑장을 혹평한 것이 미안할 정도다. 샤워실은 좁고 취사장도 형편없다. 유명 관광지에 올수록 캠핑장 시설이 나빠지는 건 배짱 장삿속인 것 같아 매우 불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