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71 프로이케스톨렌
아침 일찍 7시 정도에 캠핑장을 떠나 산으로 올라가는 차들이 많다. 오늘이 노르웨이의 마지막 캠핑이네. 뭐든 이벤트가 필요하겠지만 내가 능력이 없지...ㅎㅎㅎ
바람이 많이 불고 날이 차다. 샤워가 좀 불편하긴 하지만 4분 5분의 시간에 쫒기는 것보다는 낫지. 아침 일찍 올라갈 예정이라 샤워도 일찍 해본다. 그런데 날이 추운데도 물이 뜨겁지 않아 션찮은 놈은 감기에 걸리기 딱 좋다. 머리만 감고는 몸은 그냥 물로만 씻는다. 텐트로 돌아왔는데 바람이 너무 세게 불고 추워서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바람이 너무 불어 텐트가 혹시 날아가지나 않을까 싶을 정도다. 물론 그럴 일은 없다.
감자를 잘게 썰어넣고 수프를 끓여 리셉션에서 사온 빵과 함께 아침을 때운다. 물가가 더 비싼 덴마크로 가야 하니 오늘이나 내일 장을 잘 봐서 3명이 6일동안 먹을 양식을 챙겨야 하는데 합류하는 친구가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니 그것도 걱정거리일세.일찍 올라가기를 포기하고 도로 자리에 누워 따뜻한 잠을 즐긴다.
10시 40분 캠핑장을 나서서 차로 조금 올라가니 주차장. 200크로네를 내고 주차, 프로이케스톨렌을 시작한다. 주차장은 상하부로 나뉘어 등산로에서 200m 정도 가까운 하부주차장이 다 차면 상부에 주차시키는구나. 시작하는 길은 편하다. 조금 오르니 하부 주차장 사람들이 합류하여 좁은 등산로가 꽉 찬다. 크루즈유람선에서 여기까지 패키지로 운영하는 모양인지 노인네들이 무지 많다.
중간중간 약간의 오르막이 있지만 대부분 노르웨이의 트레킹은 길이 험하지 않다. 4km. 그런데 이제 우리가 많이 지쳤나? 좀 힘들긴 하다. 조금 올라가니 저멀리 뤼세피요르드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역시 비슷한 풍광이다. 피요르드의 경치는 길든 짧든 대체로 비슷하네. 단지 중간에 폭포가 있다거나 프로이케스톨렌처럼 기묘한 바위가 있다거나 하는 차이.
마지막 구비를 돌아서니 길은 이제 천길 낭떠러지 위 좁은 길로 이어지면서 프로이케스톨렌이 보이기 시작한다. 계속 흐릿하던 하늘은 여전히 개지 않는데 오히려 사진찍기는 더 나은 것 같기는 하다.
여기서도 사람들은 절벽 끝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선다. 마눌님이 그 줄끝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건너편 약간 높은 곳에서 기다리기로 한다. 아무리 봐도 무섭다. 인간들이 그 끝에서 뛰기도 하는데, 저러다가 몇 달전 한국 여자아이 하나가 떨어져 죽었다지. 그 사고가 프로이케스톨렌 유일한 사고라 그런지, 그런 사고가 났어도 난간 등의 안전시설에 대해서는 노르웨이는 여전히 관심이 없다. 기본적으로 본인의 안전은 자신의 책임이니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일 테고, 만일 그곳에 안전시설을 해서 경관을 망친다면 사람들이 더욱 반대할 것은 틀림없다.
절벽 끄트머리에 앉아 다리를 대롱거리는 마눌님 사진을 다 찍고 나도 그 너럭바위에 올라서보니 그리 많이 무섭지는 않지만, 604m 절벽 위라는 생각과 오면서 내려다 본 절벽들이 주는 공포감 때문에 여전히 오금이 저린다. 끝에 누워서 아래를 내려다볼까 싶기도 했는데 참는다. 내가 여기 왔다는 게 더 중요하다는 억지를 부리기로 한다.
절벽 위에서 빵으로 간단 요기를 한 다음, 절벽에서 내려와 건너 편 조망이 괜찮은 곳에 가서보니 604m 직벽의 위용이 잘 드러나는데 멀어서인지 그리 무섭지는 않다. 프로이켄스톨렌 주변은 모두 그런 절벽이라 어떻게 이런 지형이 가능한가 하는 탄성만 나올 뿐이다.
내려오는 길도 이제는 힘들다. 이래가지고 세계일주는 어떻게 하나? 집에 가서 체력을 단련하는 게 맞는지, 내 나이를 생각해서 이제부터는 적당한 거리만 산책하듯 하는 게 맞는지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한다.
주차장에 내려온 시간이 3시 45분, 4시간 40분 정도 걸렸네. 매우 피곤하다.
프로이켄스톨렌이 먹여살리는 외르펠란 동네 마트에 가서 앞으로 먹을 반찬거리를 준비해보는데 역시 먹잘 건 없다. 닭날개, 오겹살 양념무침, 채소 등을 사서 돌아와 우선 맥주로 허기를 면한다. 마눌님이 어제 모자를 잃어버렸을 거라고 생각되는 장소를 둘러봐도 모자는 없네. 그 모자가 아직 그 어딘가 떨어뜨린 장소에 있을 리가 없지?
닭날개만 구워서 맥주로 저녁을 때우는 셈이 됐다. 양념오겹살은 고추장 양념을 더해서 일단 보관한다. 이것만으로는 배가 차질 않네. 나중에 결국 라면을 하나 끓여서 둘이 나눠먹고 샤워를 다시 한다. 물이 여전히 뜨겁지 않아 개운치 않다. 시설이 좋은 만큼 서비스도 좋으면 좋겠다.
프로이케스톨렌 경치가 경이롭긴 하지만 그다지 감동적이지는 않다. 그간 우리가 좋은 곳을 너무 많이 본 탓인가? 노르웨이에 워낙 기막힌 경치가 많은데 그런 곳을 다 둘러본 우리 눈에는 그냥 노르웨이의 흔한 경치 중에서 약간 신기한 정도? 만일 순서를 바꿨으면 정신이 없을 정도일 수도 있었겠지? 트롤퉁가나 쉐락볼튼에 비해 접근이 쉬운 편이라 CNN이 선정한 대자연의 신비 1위에 뽑혔나 싶기도 하자. 하지만 대자연의 신비라 하기엔 많이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