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카카오 2018. 11. 24. 21:39

눈을 뜨니 5시 반. 햇빛이 좋고 바람도 살랑살랑 잘 불어서 아침에 설치한 빨랫줄의 빨래들이 잘 마르겠다.

밥을 하고 거의 국 수준인 생선조림에, 냉장고가 없어 상할 우려가 있는 오겹살 등을 볶아 아침을 때운다. 국물이 있으면 밥 먹는 게 참 편한데 먹는 일이 가장 큰 일이다.


스톡홀름 시내 관광을 해야지. 시내에서 많이 떨어진 외곽 동네라 지하철(MTR, 또는 tunnelbann?)이 좋다. 72시간 교통권을 끊어 편하게 타고다니기로 한다. 캠핑장에서 지하철 역까지는 700m. 걸어가는데 벌써 졸음이 온다. 큰일이다. 72시간권은 250크로나에 access card 20 더해서 270. 

인구(2012년 기준 85만)에 비해 지하철 망은 촘촘하게 연결이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여기 지하철 또는 전철은 전원을 철로 옆을 따라 설치된 전원선에서 받기 때문에 위에는 전선이 없다. 그런데 장거리 기차는 또 전원을 위에서 받는 방식이네. 어떤 게 더 좋은 방식일까 궁금하기만 하다.

시내 중앙역까지는 20분 정도. 중앙역 시청사 방면 출입구로 나오니 시청사가 코앞이다. 바닷가에 자리잡은 시청사 건물이 그 자체가 이미 관광상품이다. 유럽 도시들에서 시청사가 관광상품이 되는 건 거의 일반적인 듯 하다.

스톡홀름 시청사 역시, 건물 자체도 멋지고 바다와 어울린 주변 경관도 멋지다. 시청사 내부 투어와  탑 전망대에 오르는 건 왕궁에 다녀와서 하기로 하고 구시가 감라스탄에 있는 왕궁으로 걸어간다. 


14개 섬을 연결해서 도시를 만들었다니 다리는 당연히 많지? 곳곳에 바다이니 경치는 당연히 좋다. 게다가 어디에나 널려 있는 조각들. 그게 사람이든 추상적인 무엇이든 다 어울리는데 스톡홀름에는 사람이 많다.


왕궁은 역시 웅장하다. 현재 왕이 사는데도 보초는 각 문에 하나씩만 있을 정도로 소박하네. 내외부를 둘러보며 위병과 사진도 찍으며 구경하면서 1시 15분에 있다는 보초교대식을 기다린다. 저멀리서 군악대 소리가 들리더니 말탄 위병을 선두로 위병들은 보이지 않고 군악대만 나타나네. 알고보니 교대식은 왕궁 뒤뜰에서 치뤄지는데 아는 사람들은 이미 그곳에 진을 치고 있구나. 뒤늦게 구경 인파에 합류해봐야 제대로 볼 수는 당연히 없지. 


궁전 뒤뜰에서 교대식을 위해 대기하던 위병들이 군악대가 도착하자 행사를 시작한다. 다행히 마눌님은 앞쪽에 자리를 잡아 어느 정도 사진을 남길 수 있었지. 약 45분간 위병 교대 행사와 이후의 군악대 공연 등이 펼쳐져서 관광객들을 즐겁게 한다. 제대로 서비스하는 거네. 내 작은 키로 키큰 서양인들 어깨 너머로 사진을 찍느라고 고생을 많이 했다.

행사가 다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진 뒤뜰 의자에서 감자샐러드 점심을 해치운다.


왕궁에서 나와 노르말름의 바사가탄 방향으로 가는데 아마도 라마교일 종교행사가 마치 축제처럼 길거리를 지난다. 춤추고 노래하며 구경하는 사람들도 같이 춤추자고 권하는데 매우 흥겹다. 마눌님이 이번에는 넘치는 흥을 참을 수 없는지 같이 춤추을 추네. 굳이 신자가 되라고 강요하지도 않고 그냥 그 분위기만 즐기라는 포교방식이 괜찮아 보인다.


위용이 대단한 국회 건물을 지나 관광객들이 몰려 있는 바사가탄 거리를 지나는데 소변은 마렵지, 날은 덥지, 사람은 많지 해서 매우 피곤하다. 버스를 타고 좀 자면 좋겠다 싶어서 버스투어를 해보기로 하고 아무 버스나 탄다. 

Blockhusudden으로 가는 69번 버스를 타고 비몽사몽 종점에 도착하니 현숙이 알아낸 조그만 등대가 있고 예쁜 카페도 하나 있는 동네가 나온다. 아주 시골일 것이라고 생각한 내가 좀 멍청한 거지? 그래도 스톡홀름인데... 숲속에 들어가 소변을 해결하고 나와, 예쁘게 꾸민 집들도 보고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는 척도 해본다. 이런 곳에서 커피를 한잔하며 여행을 즐기는 것도 괜찮긴 한데, 그게 잘 되질 않는구나. 


다시 버스를 타고 중앙역 동네로 나와 Serg 탑 광장에 잠시 앉았다가 피로가 풀리지 않아 그냥 귀가하기로 한다. 멍청하게 생긴 탑은 아마도 밤이 되면 조명으로 한몫할 텐데 기다리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고 내 피로는 풀리지 않네.

여름에 이 동네를 오니 야경을 볼 수 없어서 좀 불편하다.


일단 들어갔다가 저녁먹고 다시 나와 야경을 보자는 생각만 한다. 저녁 먹고나면 10시일 텐데 나와지겠어? 지하철 역 앞 마트에 잠시 들러 채소를 사서 들어온다. 저녁은 잡채를 해보기로 한다. 채소를 많이 넣고 물에 불려서 삶은 당면을 한번 더 볶으니 훌륭한 음식이 된다. 


오늘은 술이 없다. 냉장고가 없으니 쟁여둔 맥주도 마시질 못 한다. 물은 그냥 수돗물을 마시면 되는데 물통이 없어 물통 겸으로 1.5리터 한 병을 산다. 5크로나, 약 700원이니 적당하네. 그런데 탄산수인데 이제는 마실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