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85 스톡홀름 세계문화유산의 날(묘지와 궁전)

나쁜카카오 2018. 11. 24. 22:04

아침에 일어나니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데 이슬이 내리지 않았다. 

오늘 아침은 생선구이와 오겹살 볶음. 조림을 하려던 생선을 구워버렸으니 조림은 감자국이 되었다. 그래도 맛있다.

아침에 철수하는 캠핑카들이 많아 전기코드를 확보할 수 있겠다 싶어 리셉션에 가서 전기로 바꾼다고 하니 예약이 꽉 찼다네. 이렇게 큰 캠핑장의 예약이 꽉 차다니 놀라운 일이다. 다행히 하나 여유가 있어 전기를 확보한다. 여직원 짜식이 Your are lucky라네. lucky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기분이 좀 나쁘기만 하다. 이 지집애야. 전선이 1m쯤 부족해서 텐트를 옮기면 편하겠지만 텐트 이사도 작은  일이 아니라 그냥 불편한 대로 쓰기로 한다.

오늘 코스는 마눌님이 열심히 찾아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궁전과 국립묘지. 묘지를 찾아가는 건 내 관광 목록에 들어있지 않은데 이게 세계문화유산이라니 어쩔 수 없지. 그전에 쇠데르말름 지역에 있는 크리스틴 전망대부터 해결하기로 한다.

지하철을 타고 Slussen 역에 내려 전망대를 찾아 잠시 헤맨 이유는 지하철역 출구를 헷갈린 탓이다. 엘리베리터를 타고 12층 높이의 전망대에 서니 사방은 아니고 시청사와 놀이공원이 보이는 쪽의 전망이 시원하다. 왕궁도 보일 텐데 공사 중인 시설들이 가로 막는다. 도시 전체에서 타워크레인들이 열심히 일을 해서 경치를 망치는구나. 시원하게 전망을 즐겼으니 여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시청사 탑의 전망은 생략하기로 한다.





Drottningholm 궁전으로 가는 길은 가능하면 버스 등의 지상 교통수단을 이용하기로 하고 우선 버스를 탄다. 시내를 천천히 빙빙 도는 버스를 타면 시내관광이 절로 되지. 도심에서 버스가 빨리 갈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는 사람들이 교통신호를 거의 무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신호는 대개 지키는 편인데, 스톡홀름 도심에서는 무시하는 경우가 많아 그러지 않아도 구시가 꼬불길에서 차들이 빨리 다닐 수가 없다.

바사스탄 지역의 오덴에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다리를 몇 개나 지나 솔나 지역의 브롬마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탄다. 다리를 몇 개나 지나는지 알 수가 없다. 배는 고파지는데 맥도날드 외에는 먹을 만한 곳이 없어 일단 궁전까지 가보기로 한다. 버스에서 내리니 궁전이 바로 앞이다. 단체 관광객이 많네. 베르사이유를 본딴, 거의 전형적인 유럽 궁전이니 기하학적인 정원이 잘 꾸며지기는 했지만 좀 삭막한 느낌이다. 코펜하겐의 프레데릭스보르에는 좀 많이 못 미친다.

햇빛이 따가운 궁전 정원에서 잠시 놀다가 국립묘지에 가기로 한다. 고픈 배는 정거장 앞 조그만 가게에서 핫도그 하나로 때운다.

스톡홀름 시내에서 여기까지 오는 유람선도 있는데 가격이 만만찮아 기꺼이 포기했지. 이 유람선이 출발하면서 약간의 사고도 있어 선장이 혼이 난다. 배를 타고 스톡홀름을 둘러보는 것도 좋은 관광수단이기는 한데, 우리는 유람선을 워낙 좋아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버스, 지하철, 트램,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타는 대장정이다. 72시간권을 사니 교통비 부담이 없어 매우 편하네. 브롬마에서 지하철을 타고 알빅에서 트램을 탄다. 이 동네에서는 차내 안내방송이 매우 인색해 딱 한번만 방송하기 때문에 마음놓고 편하게 잠을 잘 수가 없다. 젠장이다. 몹시 피곤하고 잠이 쏟아지는데 정거장을 지나칠까봐 제대로 눈을 붙일 수가 없어 억울하다. 

Gullmarsplan역에서 버스를 갈아타는데 많이 복잡하네. 10여 분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묘지 앞 정거장에 내리니 바로 세계문화유산 표지가 붙은 국립묘지다. 묘지가 뭐 별 게 있나 하는 생각은 문에 들어서는 순간 감탄으로 바뀐다. 쭉쭉 뻗은 소나무 숲이 끝이 없는데 그 아래 묘지들이 있네. 묘지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경치. 나무가 많으니 공기가 더욱 맑아서 묘지라도 그냥 놀러오기에 더없이 좋은데 묘지이니 아무래도 께름직하긴 하다. 

뭐든 가리지 않는 편인 마눌님도 묘지에서는 좀 기분이 좋지 않은지 빨리 나가자면서도 볼 건 또 다 본다. 이 동네 사람들은 무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자전거를 잘도 타고 다닌다. 묘지가 어떻게 문화유산이 되나 했더니 그러고도 남을 정도라는 생각이 들 정도지만, 아무리 경관이 뛰어나도 묘지는 묘지이니 빨리 통과하기로 한다. 10만이 넘는 무덤이 있는 공동묘지이니 왕릉 등과는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지.


비지터 센터와 교회, 그리고 화장장 등을 통과해서 지하철 역에 간다. 그런데 이상하게 3정거장 앞인 굴마르플란 역까지만 가는 차가 온다. 일단 타고 가서 다음 차를 기다리기로 하고 굴마르플란 역에 도착하니 이 차는 여기가 종점이고 그 자리에서 방향을 바꿔 온 길로 도로 가는구나. 우리는 13번 노선을 Slussen에서 타야 하는데, 안내판에서 헤매고 있으니 어떤 동양인이 건너편으로 가란다. 역사 안에서 다시 교통카드를 찍고 이번에는 3정거장 슬루센 역까지만 가는 차를 탄다. 여기서도 다시 카드를 찍어야 하나 했는데, 바로 옆으로 차가 바로 들어온다. 서둘러 노선을 확인하고 차에 올라타서 캠핑장이 있는 브레이댕(Bredang)까지 온다. 오늘 교통카드를 찍은 횟수는 모두 10번이나 된다. 이동거리가 길긴 하지만 이렇게 많이 찍게 만드는 건 아니다 싶다. 역사 내부에서조차 환승이 되지 않는 건, 시민들의 지갑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게 아닌가 싶어 불쾌하기조차 하다.

마트에 들러 시원한 캔맥주를 사자 했는데 이놈들이 병맥주만 냉장고에 넣어뒀네. 치사한 놈들. 얼음도 아주 조그만 냉동고에 2kg씩만 파니 저녁에 숙소로 돌아오는 우리까지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다. 내일 아침에 먹을 소뼈 고기를 사서 서너 시간 푹 고와본다. 마트에서 사온 피자와 생선까스로 저녁을 먹고 관광으로 지친 몸을 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