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02 베오그라드
6시에 일어나 밖에 나가보니 온통 끝없는 지평선만 보이는 벌판이다. 오는 중에도 벌판만 보이니 이 지역도 산이 없는 곳인가 보다. 산은 좀더 남쪽으로 내려가야 있겠지.
메일을 확인하니 DBS페리와 통관 대행 양쪽에서 답이 왔다. 통관은 또 대행을 해야 한다네. 게다가 세차도 해야 한단다. 날짜도 승선 이틀 전인 8월 27일 아침 9시 30분까지 세관에 입고해야 한다니 26일 저녁까지는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해야 한다. 시간이 좀 촉박해져서 내일 부쿠레시티는 1박만 하고 그냥 통과할까 보다. 볼 것도 없는 블라디보스톡에서 2박 3일을 뭐 하고 보내나 걱정이다.
이 놈의 러시아는 지네 나라에서 나가는 사람들을 왜 이렇게 귀찮게 하는 거냐? 역시 오랜 공산 독재국가의 잔재라는 생각이 든다. 여권 등 필요서류를 두 곳에 메일로 보냈으니 내일 아침에나 답이 오겠지.
미역국을 끓였는데 좀 짜다. 물을 더 붓고 다시다를 좀 넣을 걸 그랬나? 집에서는 조미료 없이 잘도 맛있게 끓였는데 아깝다. 남은 건 저녁에 먹기로 한다.
날이 뜨거워서 차를 가지고 시내 구경을 나선다. 큰길에 나가니 마트가 바로 있네. 들어오면서 들리기로 하고 길을 가는데 버스가 보이네. 버스를 타고 나올 걸 그랬다며 계속 가다보니 벼룩시장과 함께 제법 규모가 큰 시장이 보인다. 차를 세우고 시장구경을 한다. 세르비아는 아직 마트가 그리 많아 이런 재래시장이 성업 중이네. 각종 채소와 과일, 그리고 정육점 기타 조그만 가게들이 빼곡이 들어선 시장. 물가는 정말 싸다. 시장의 과일이나 빵들이 먹음직스러워 보이는데 사게 되지도 않고 카드는 더더욱 통하지 않는다. 정육점에서는 소갈비도 파는데 3시에 문을 닫는다네. 빵집은 2시에 문을 닫는다. 지금 나갔다가 그전에 들어오게 될까 싶다. 그 시간을 맞춘다 해도 현금이 없으니 살 수는 없겠지? 정육점에서는 카드를 받는 것 같으나 갈비를 사서 언제 해먹겠어? 시장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어보는데, 시장 아줌마들이 손을 들어 반가워해주니 좋다.
공화국 광장을 찍고 시내 중심부로 들어가는데 하필이면 들어가는 입구 길이 공사 중이라 막혀서 들어가지 못 한다. 구글은 자꾸 그 길로 가라 하니 시내를 몇 번이나 빙빙 돌면서도 길을 찾지 못 한다. 아무 곳이나 주차하고 그냥 구경이나 하려는데 주차할 곳이 참 마땅찮다. 마침 시원한 그늘에 차를 세울 수 있었는데 현금이 없으니 주차권을 끊을 수가 없네. 뜨거운 길을 헤매다 보니 마침 주차권 사무소가 나타난다. 2시간권을 끊고 시내구경에 나선다.
공화국 광장은 그 부근일 텐데 보이지 않지만 아마도 정부 청사일 듯한 건물들이 모인 곳을 찾는다. 웅장한 건물 하나 앞에는 코소보 전쟁과 관련해 미국과 EU, 그리고 무슬림이 자기네 백성을 학살했다는 선전 플래카드가 길게 붙어 있다. 자국의 입장에서야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세르비아가 코소보 등지에서 무슬림을 학살한 건 깡그리 무시하는 듯한 선전이 역겹다.
이 동네가 관광코스의 하나인 듯, 관광버스가 줄지어 나타난다. 이 뜨거운 날, 관광객이거나 시민들이 편하게 물을 마시라고 물차가 하나 서있네. 이런 건 참 신통하다. 곳곳에 있는 조그만 마트에서 500cc 맥주 캔 2개를 사서 길거리에서 마시며 갈증을 푼다. 125.98디나르, 1400원이 안 되는 가격이다. 술이 이렇게 싸다니... 담배는 한 곽에 250에서 360까지. 구석에 있는 식당처럼 보이는 가게에 갔더니 거기서는 술만 판다네. 술만 파는 술집에 대낮 손님이 많다.
주차 시간이 거의 1시간, 식사에 적당하게 남았다. 포모도르라는 왠지 익숙한 듯한 식당에 가니 이탈리아 음식 전문점이네. 물가 싼 동네라 식당 가격도 당연히 싸다. 술값은 더욱 싸서 세르비아가 갑자기 좋아졌다. 송어가 들어간 스파게티와 소고기 샐러드에 맥주 2병. 베오그라드에서 세르비아 음식이 아닌 이탈리아 음식을 먹게 된 것이 좀 서운하긴 하다. 음식은 맛있고, 특히 샐러드에는 채소가 매우 많아서 정말 마음에 든다. 마치 내가 베지테리언이 된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바로 숙소로 돌아온다. 2시간 연장을 할 수도 있지만 더워서 다니기가 싫다. 그 션찮은 숙소에 간다고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샤워는 할 수 있겠지.
마트에 들러 식재료들을 사는데 오겹살은 없어서 서운하다. 유럽에선 볼 수 없었던 페트병 맥주가 이 동네는 2리터인데 가격은 170디나르. 집에 가져갈 캔맥주도 챙긴다. 물은 상대적으로 비싸서 2리터 한 병이 50디나르다. 쌀도 1kg사고 집에 가져갈 보드카 1리터 병도 하나씩 산다.
숙소에 돌아오니 3시가 안 됐다. 여전히 덥지만 가볍게 샤워하고 낮잠이나 잔다. 자다가 깨서 생각하니 러시아 만km가 좀 갑갑하다. 그래서 부쿠레슈티는 1박만 하고 가능한 한 빨리 러시아에 들어가기로 한다. 베오그라드와 부쿠레슈티 체류일정을 바꿔야 했다는 생각을 뒤늦게서야 한다. 돌아갈 길이 바쁘니 이 동네 관광은 다음에 제대로 공부를 한 후에 다시 오기로 한다. 어차피 불가리아 등도 빼먹었으니 다음에 그리스 등과 묶어서 다시 와야지. 몰도바를 피할 수 있나 했더니 그런 길이 없네. 키시나우는 들리지 않기로 하는데, 아주 짧게라도 몰도바를 통과해야 해서 또 보험이 걱정된다. 몰도바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보험을 다 들 수 있으면 좋겠다.
6시에 일찍 맥주 페트병을 비우기 시작한다. 2리터인데 금방 없어지네. 마트에서 산 정어리 통조림이 마눌님이 좋아하던 생선절임인 줄 알았는데 그냥 통조림이다. 맛있다. 그래서 내일 가면서 한 두어 개 사갈까 하는 생각을 한다. 국을 데우니 이제서야 제 맛이 나는구나. 아침 남은 밥에 국을 말아 보드카 안주로 삼는다. 9시에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