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04 부쿠레쉬티 - 몰도바 - 우크라이나 이즈마일 333km
7시에 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 난 베지테리언이 아니라고 했는데 식단이 똑 같아서 불만이다. 게다가 아침부터 배탈이 나서 제대로 먹지를 못 한다. 샐러드와 함께 먹는 빵이 맛있었는데 어쩔 수 없지.
식사를 마치고 마리오와 친구 녀석과 작별 후 8시 10분이 되기 전에 출발한다. 기록이 자꾸 당겨진다.
인민궁전을 본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 관광객도 없고, 들어갈 시간, 들어가서 구경할 생각도 없는 내부 투어도 아직 시작하기 전이다. 크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단일 건물.
부쿠레쉬티 시내를 빠져나가는 길이 매우 막힌다. 급기야는 기차 건널목에서 지나가는 기차 2대를 기다리느라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가네.
고속도로 같은 도로를 가는데 1.5차선이라 속도를 좀 올릴 수 있다. 2시간 반 정도 운전하고 핸들을 넘긴 다음, 잠을 좀 자려했는데 잠이 잘 오지를 않아 그냥 풍경을 감상한다.
도무지 산이라고는 없는 풍경. 해바라기와 옥수수 밭만 널린 지평선. 끝이 보이지 않는 해바라기 밭도 지나본다. 만개한 때라면 정말 장관이겠지. 아깝다.
시골길을 가다보니 길가에 채소장이 섰다. 수박, 멜론, 옥수수 등 종류가 다양하고 피망과 가지가 매우 크다. 순박하게 생긴 농민들이 채소를 팔아서 꼭 한국의 시골풍경이다. 수박을 사봤으면 싶기는 하지만 너무 크지? 말 달구지가 많네.
국경 마을 Galati(꼬리달린 t)는 도나우강이 바다로 합류하면서 거대한 삼각주를 만드는 곳인데 강상운송이 매우 발달한 곳 같다. 여기서 해상운송도 이루어지는지는 모르겠다.
주로 드라큘라와 독재자 차우세스쿠 등으로만 기억하는 루마니아. 옛소련에서 독립한 나라 중에서도 불가리아 등과 함께 아직 가난한 나라지만 차우세스쿠 이후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네. 이번에는 러시아로 가기 위한 통과국이라 그냥 지나치지만, 다음에 한번 더 와서 이 나라의 매력에 빠져볼 참이다.
루마니아 국경을 통과하는 데 시간이 무지 걸린다. 우리뿐만 아니고 다른 차들도 잡아놓고 시간이 이기나 어쩌나 하고 있다가 35분만에 통과. 이번에는 몰도바 입경이 시간을 먹는다. 보험을 들어야 하는데 몰도바 현금만 받는다는 세관원의 말을 듣고 세관 통과와 보험드는 데 또 40분. 보험사에서는 유로도 받는데 세관원 녀석의 엉터리 정보에 속아 환전하느라 시간을 소비한 것도 포함된다. 2주일 치에 15유로. 10유로는 환전한 몰도바 돈, 5유로는 가지고 있던 동전 6유로로 때운다. 1유로 잔돈이 없다고 거슬러 주지 않는다. 배가 많이 고프다.
3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의 출경 세관에 2시 27분에 도착했는데 차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땡볕이라 차에 에어컨을 틀고 있어도 무지 덥다. 30분만에 4대가 빠지더니 20분 지나서 또 3대. 그런데 알고보니 몰도바 출경은 지났고 여기는 우크라이나 입경 세관이네. 몰도바는 출경 스탬프도 찍지 않고 내보낸다 했는데 다시 물어보니 몰도바라네. 욕먹을 짓을 하는 몰도바다. 세관 건물에 우크라이나라고 쓰여 있어서 그런 줄 알았지. 3시 27분 현재 1시간 경과. 건빵으로 깔딱요기를 한다. 나중에 하는 짓을 보니 우크라이나 세관이다. 어찌됐든 우크라이나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지.
3시 35분 5대가 나가고 이제 3번이다. 드디어 우리가 첫째가 되었는데 여권을 걷지 않는다. 창구에 가지고 가서 이야기하니 그제서야 차문도 열어보고 하며 검사를 하더니 여권과 차량서류를 가지고 간다. 한국 번호판이라고 시비를 걸지는 않네. 20여분을 기다리니 여권을 주며 옆 창구에 가져가란다. 옆 여자 세관원은 마약이나 총기가 있느냐고 묻고는 다시 건너 편 건물로 가져가란다. 도대체 무슨 이따위 복잡한 절차를 거치는지.
여권과 차량서류를 가져가고는 한 놈이 나와서 차를 앞으로 빼라네. 그러더니 짐검사를 시작한다. 이것저것 꼼꼼하게 따지고 묻고, 차에 있는 짐을 모두 내리라 하고 의자 밑, 글로브박스 기타 숨어 있는 모든 공간에 후래쉬를 비추면서 살핀다. 그 와중에 보험을 묻더니 몰도바 보험은 보지도 않고 우크라이나 보험 장수를 데리고 온다.
우크라이나 보험 15일치는 25유로. 40유로를 줬더니 우크라이나 돈으로 150을 거슬러주면서 갑자기 35유로라고 우긴다. 언성을 좀 높였더니 25로 인정하고 300을 더 내놓아 450흐리브냐가 생겼다. 1유로에 31원 꼴이라 11흐리브나는 그냥 챙기게 했다. 나쁜 놈.
보험을 들고 나오니 아직도 짐검사가 진행 중이다. 루프 캐리어까지 열어보라고 하면서 대충 보고는 끝낸다. 그러고는 남은 캐리어 3개를 보지 않을 수도 있다네. 돈을 달라는 눈치인데 정작 말은 하지 않는 것이 내가 먼저 돈을 줄까고 말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 짜증이 나서 그냥 다 보라고 하니 캐리어를 결국 다 보고는 끝낸다. 처음부터 돈을 요구했으면 주고 빨리 끝낼 수도 있었겠지만, 30분 동안 차를 완전히 뒤집어 놓고 나서 하는 짓거리라니... 뒤지면서는 술과 돌이 많다고 지랄을 했다네. 지놈들끼리 뭔가 이야기하더니 한놈이 나와서 황급히 여권을 주며 다 끝났으니 이제 가도 된다네. 4시 40분이다. 그냥 끝나는 게 아니고 5m 앞의 차단봉 하나를 더 지나야 한다. 한놈이 와서는 여권과 함께 준 종이쪽지를 확인하고는 보내준다. 우크라이나 입국이 이렇게 번거로울 줄이야. 세관원 놈들은 아직까지도 돈을 요구하는 것 같네. 그럴 수도 있기는 하지.
가능하면 오늘 오데사까지 갈 예정이었는데 입국하느라 진을 빼기도 하고 날도 어둑해지는 것 같아서 가까운 이즈마일에서 자기로 한다. 우크라이나로 들어오니 시간이 한 시간 당겨져서 서울과는 6시간 차이. 기름을 넣는다. 기름값은 26흐르비나, 1000원 정도다. 그래도 러시아보다는 비싸지. 엉망인 길을 지나다보니 바다같은 호수가 나온다. 차를 세우고 그리 깨끗해보이지 않는 호수에서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과 호수 구경을 하다가 고픈 배를 달래기 위해 길가에서 버너를 피워 컵라면을 하나 끓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8시 전까지는 밥먹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건빵으로는 고픈 배가 채워지지 않는다.
도로 양쪽으로 끝없는 해바라기 밭이 나타난다. 루마니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넓이. 땅이 크니 밭도 커지나 보다. 소피아 로렌의 해바라기, 그 현장을 지나는 듯 하다. 하지만 만개 시기가 아니라 꽃으로 눈부시지는 않아 아쉽다.
이즈마일 가는 길의 시골마을은 매우 낙후된 느낌이다. 6시가 지났는데 결혼식이 진행 중인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어떤 건물로 들어간다. 가서 보고 싶기도 했는데 피곤해서 그냥 지나친다. 기름이 나서 좀 잘 살게 되었나 했는데 여기서도 어떤 놈이 독재하면서 개판을 쳤다는 기사를 언젠가 읽은 적이 있다. 이즈마일은 제법 큰 도시다. 시내 한복판을 공원으로 만들고 그 양옆으로 차를 다니게 한다. 조그만 공연장 앞에서는 사람들도 많이 몰려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SK 로밍이 먹히질 않아 갑자기 인터넷 먹통이 되어버렸다. 유심가게를 찾느라 시내 도로를 두어번 돌았는데 없다. 토요일 저녁 시간에 문을 연 유심가게가 없다. 맵스미를 잘 활용해서 이즈마일 동네 호텔을 찾는데 첫 번째는 실패. 두 번째 시내 외곽의 GreenHall 호텔에 오니 방고 좋고 가격도 940으로 싼데 카드도 안 되고 유로도 받지 않는단다. 사정을 하니 유로는 된다네. 내일 아침 포함 1140을 유로 50지폐로 결제하니 400흐르비나를 거슬러 준다. 정말 힘든 하루가 마무리된다.
호텔 식당에 가니 영어 메뉴가 있다. 생선요리 2개를 주문해두고 옆 주유소 가게에서 맥주(1.5리터 39.90. 약 1600원) 를 사와 시원하게 한잔한다. 살 것 같다. 생선요리는 맛이 별로고, 올리브 열매는 너무 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