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07 드네프르 - 지토미르 665km
새벽 3시 반에 잠이 깬다. 어쩌란 말이냐... 이 동네에도 아파트가 많은데 거의 전부 에어컨을 달고 있다. 여기도 여름엔 많이 더운 곳인가 보다. 이즈마일 호텔에도 에어컨이 있었나?
아침식사라고 25흐리브나 짜리는 빵 한 조각에 각각 달걀후라이를 얹은 것 2개. 커피는 5흐리브나를 따로 내야 한다. 참참참이네. 어제 아침식사가 최악이라 했는데 끝은 어디서나 알 수가 없다. 큰 돈이 아닌데도 이렇게 불평을 한다.
한국 대사관에 국경 통과여부를 물어봐야 하니 9시가 지나야 한다. 9시에 전화를 해서 물어보니 국경이 다 막혔단다. 벨라루스는 비자 때문에 갈 수가 없어 러시아에 가려면 폴란드,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를 거쳐야 하는데 호랑이가 이건 싫다네. 잘 됐다 하고 독일로 가기로 정하고 나니 홀가분하다. 그런데 물어본 게 잘못한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한국 대사관들의 자국민 홀대는 워낙 유명하다.
오늘 밤 숙소는 가다가 정하기로 하고 9시 20분 호텔을 나선다. 드네프르 시가는 출근시간이라 좀 복잡하네. 우크라이나에서는 여기저기 길가에 각종 전투기, 탱크, 장갑차 등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어 이 나라의 정체성을 알게 해주는데, 여기는 로케트까지 모형으로 설치했네. 부근에 우주머시기 박물관이 있다 했는데 혹시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도심을 빠져나오니 길이 시원하다. 고속도로 같은 길가에서 핸들을 넘기고 새벽부터 설쳐서 부족한 잠을 채운다. 잠에서 깨니 어딜 가나 똑같은 해바라기, 옥수수 밭 등으로 가득한 평원을 계속 되는데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매우 활기차 보이는 시골마을도 지난다. 유심도 없이 잘도 다닌다.
배는 고프고 적당한 마을도 보이지 않고 해서 어제 남긴, 이상한 풀이 들어가 냄새가 좀 나는 찰빵 같은 거 하나로 우선 고픈 배를 달랜다. 식당을 찾으려고 이정표에 표시되어 제법 커보이는 마을 루비니에 들어갔는데 아무 것도 없다. 시베리아 시마노프스크 생각이 난다. 길은 이제 제대로 된 고속도로처럼 생기고 노면도 좋아 속도를 올리다가 호텔 레스토랑 Velyca Krucha가 보여서 들어가 본다. 호텔도 깨끗하니 크고 정원도 예쁘고 시설도 괜찮은데 손님이 거의 없네. 이러고도 장사가 되나 싶다. 연어와 pike 요리를 주문하니 달랑 그것만 나오네. 샐러드를 같이 주문하지 않았더라면 정말 희한한 점심을 먹을 뻔 했다. 양도 적어서 주린 배를 채우기에는 턱도 없지만, 그냥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한다. 와이파이가 잘 터져서 마눌님과 카톡하며 근황도 전하고, Eukor에 메일도 보내둔다.
다시 잘 뚫린 길을 시원하게 달리다가 핸들을 넘기고 한잠 자는데 길이 또 개판이다. 수도인 키예프 부근이라 이렇게 고속도로를 잘 깔았구나 했는데 그것도 아니다. 러시아와 매우 닮았다. 하긴 옛 소련이니 아예 똑같은 거지.
자불자불하다보니 어느새 키예프 시내로 들어왔네. 외곽인데도 도시가 매우 크다 싶다. 알아보니 인구가 3백만 정도인데 보기에는 그보다 훨씬 많다는 느낌이다. 자동차도 참 많다.
마침 퇴근시간인지 복잡해진 도로의 시내를 빠져나오니 길은 다시 시원하다. 고속도로 같지만 휴게소는 주유소가 대신 한다. 와이파이가 표시된 휴게소 하나를 인간이 지나쳐버려서 서운한 마음으로 다음 주유소에 들리니 여기는 표시되지 않으면서도 와이파이가 터진다. Eukor에서는 복잡하게 규정을 설명하면서 31일 배에 선적할 수 있단다. 도착은 10월 16일. 차가 거의 2달이나 없게 되는구나. 비용을 다시 물어보고 휴게소를 떠나 호텔로 향한다. 자토미르 외곽 E40도로변에 건물 하나만 달랑 있는 호텔 Sadky. 물론 영어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래도 방도 정하고 돈도 받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좀 오래 걸릴 뿐이다.
어디서 저녁을 먹어야 하나 걱정되었는데 손님이 아무리 없어도 식당은 문을 닫지 않네. 오늘은 점심 저녁을 호텔 레스토랑에서 먹는 호사를 누리는군. 물가가 싼 우크라이나라 가능한 이야기지. 다른 곳 호텔은 무엇보다 술값이 비싸서 들어갈 엄두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동네는 술값이 싸니 부담이 덜 하다. 역시 영어가 안 되는 식당 처녀 와 번역기, 그림 등을 동원해 소고기 버섯요리를 주문하고 맥주도 주문한다. 밥이 있다기에 주문해서 모처럼 밥도 먹으니 맛있다. 10일 아침 베오그라드를 떠난 이후 밥은 처음이니 닷새 정도인데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다. 맥주 2병이 알딸딸해서 일찍 잔다. 내일 또 새벽에 잠이 깨겠지.
배로 보내는 게 갑자기 매우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어서 혹시 러시아로 가게 되면 가겠냐니 인간이 이제는 싫단다. 할수없지. 배로 보내고 비행기를 타야지. 독일에서 캠핑하며 차를 정리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