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08 지토미르 -폴란드 비와이스톡 745km
역시 3시 반에 눈을 뜨고 비몽사몽하다가 4시 반에 침대를 벗어난다. 이러다가 아예 3시 반으로 고정되는 건 아닌지? 호텔 방은 층고가 높다. 우리 아파트의 한 배반 정도는 되는 듯. 유럽에 오니 층고가 다 높은 걸 이제서야 새삼 느낀다.
생각해보니 혼자서 러시아를 관통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싶다. 그래서 친구가 싫다면 바르샤바든 모스크바든에서 먼저 보내고 혼자 차를 운전하며 세월아 네월아 하며 가기로 일단 혼자 결정했다가 러시아를 같이 통과하는 걸로 다시 결정한다. 내 마음이 너무 오락가락하네.
100흐르비나 조식(소시지 얹은 달걀후라이 2개, 빵 4조각, 팬케익 2장 등등에 커피)이 좀 션찮은데 아마 이 정도 수준일 것이다. 우크라이나 첫날 이즈마일 호텔의 100짜리 아침도 이런 정도였지. 8시 출발해서 가까운 주유소에 가니 기름이 비싸고 다음 주유소는 또 카드를 받지 않는다. 다은 주유소에서 기름 50리터를 넣고 열심히 달린다.
서북쪽으로 오니 농촌이 윤택해 보인다. 집들도 깔끔하게 단장되고 집 앞에는 꽃들도 많다. 노면도 아래쪽보다는 훨씬 낫다. 여기는 좀 도로답다. 저멀리 비구름이 보이더니 오랜만에 비가 오기는 하는데 겨우 적시는 정도다. 샤모니 몽블랑에서 8월 1일과 4일 저녁에 비를 보고는 오늘 어쨌든 비를 보는 거니 참 반갑다. 너무 적어서 아쉽다.
국경 앞 60km 정도에서 버거로 점심을 먹는데 정말 맛이 없다. 내 입맛이 없는 건가? 반을 버렸는데 나중에 배가 너무 고파서 그 반을 버리지 말고 가져올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젠장, 배가 늘 고프다. 우크라이나 기름값이 훨씬 싸니 기름도 가득 채운다. 기름을 넣어준 늙은 직원이 앞유리를 잘 닦아줘서 어제 친구가 10흐르비나에 아이스크림 사고 남은 마지막 2흐르비나를 줬다. 너무 적어서 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고맙게 받는다.
1시 25분 출경 세관 도착해서 20분만에 통과한다. 들어올 때는 그렇게 애를 먹이더니 나갈 때는 속시원하네. 5분 거리 폴란드 입경 세관의 대기가 길다. 우크라이나 세관나올 때 면세점 기다리는 차를 모르고 뒤에 붙었다가 시간을 약 3분 손해봤다. 이 인간들은 왜 들어올 때 쪽지를 주고 나갈 때 회수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해서 무엇을 확인하겠다는 건지? 세관검사 따로, 여권 검사 따로. 보는 건 똑같으면서 도대체 왜 구분을 할까? 인력과 행정력 낭비의 끝을 보는 것 같다. 그래도 나갈 때 짐검사는 하지 않네. 우크라이나 돈을 얼마나 가졌는지 묻는다. 그 돈을 많이 가지고 나갈 외국인이 있을까?
폴란드 세관에서도 세월아 네월아다. 1시 58분에 도착, 3시 13분에 여권에 도장은 찍는데 아직도 끝이 아니다. 국경 세관에 있는 화장실도 샤워실을 핑계로 2즐로티 돈을 받는 폴란드. 공항은 괜찮던데 육로 입국은 매우 까다롭고 인색하네. 한참을 기다리니 여직원이 여권을 걷으면서 짐검사를 한다. 술이 있다고 신고하니 1리터 이상은 안 된다면서도, 내가 이건 각 나라별 기념품이라니 봐준다. 고맙네. 고기 종류를 확인하는데 냉장고 안에 소시지에 곰팡이가 퍼렇게 쓸었다. 당연하지 언제 산 건데... 맛없는 오겹살 햄과 함께 시원하게 버린다. 드디어 4시 16분, 약 2시간 40분만에 입국. 세관 2개 거치는 데 3시간 10분이 걸렸다.
라트비아 입국 때 담배나 술 검사가 까다롭다는데, 저 많은 술이 무사할까 걱정이네. 벌써 걱정해봐야 소용없지?
폴란드가 슬로베니아 이후의 나라들보다 부유하다는 느낌이다. 옛 유고슬라비아 나라들은 오랜 내전으로 피폐해졌고, 루마니아나 우크라이나는 워낙 낙후된 지역들이기도 했다. 시골의 집들도 훨씬 깔끔하고 동네도 예쁘다 사람들도 여유있다. 무엇보다도 길이 좋다.
점심 휴게소에서 비아위스톡을 목표로 정했는데 이후 인터넷이 되지 않으니 숙소를 잡을 수가 없다. 폴란드에 오니 시간은 한 시간 늘어나서 좋은데 숙소 예약이 안 되니 일단 무조건 달릴 밖에.
루블린에는 맥도날드가 많은데 가는 길에는 보이지 않는다. 날은 저물고 시간이 늘어나긴 했지만 8시가 다 되니 해는 넘어가고, 배는 고프고 목적지는 빨리 나타나지도 않고.
비와이스톡에 8시 좀 넘어 도착하니 거의 밤이다. 인터넷이 연결되는 식당을 찾아 헤매다가 겨우 술집을 발견한다. 피자는 따로 배달시켜야 하는 집이지만 인터넷만 되면 관계없다. 맥주 3잔과 피자로 저녁을 먹으며 도시 중심에서 20분 거리의 리조트를 114즐로티에 예약한다. 술이 좀 취한 탓인지 야간 음주운전이 좀 과하다. 숙소는 리조트란 이름답게 아주 시골구석인데 방은 깔끔하고 전체적인 시설도 좋아보인다. 내일 아침에 봐야 알겠지. 이만 닦고 바로 뻗는다.
친구를 먼저 보내면 마눌님이 러시아 어디론가 다시 올 태세다. 그러면 좋지 뭐. 27일쯤이면 내가 어디에 있을까?
우크라이나 유심없이 4박 5일을 잘 버텼다.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2박 3일도 잘 버티겠지?
우크라이나에서 4박을 하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 했다. 하룻만에 빠져나갈 줄 알았지. 북쪽 국경에서 통과에 10시간 이상 걸려서, 남쪽에는 나을 거라고, 오데사 포템킨 계단을 보고 러시아로 넘어가는 중간 기착지로만 생각했던 우크라이나. 그래서 두어 시간이면 우크라이나를 벗어나 러시아로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얼마나 물정을 몰랐던 것이냐. 하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긴장상태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국경까지 폐쇄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런데 막상 러시아는 조용한 것 같다. 우크라이나만 국경을 막고 난리치는 통에 집만 멀어졌네. 어디서나 졸병들은 위에서 하라는 대로만 한다. 그래서 두 나라가 전쟁 중이라는 말을 전혀 의심없이 해댔다. 해바라기와 거친 도로 외에는 기억될 게 없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물가는 당연히 싸야지. 대우차가 많이 보이는 건 예전에 대우차 공장이 여기 어딘가에 있었기 때문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