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109 비와이스톡 - 리투아니아 - 라트비아 레제크네 576km

나쁜카카오 2018. 12. 1. 08:57

자동차 계기판의 주행거리와 산길샘의 거리가 많이 차이난다. 어디서 잘못됐을까? 동해 세관을 통과할 때를 대비해 독일 맥주와 세르비아 보드카 맥주 등의 영수증을 챙겨둔다. 세금을 매긴다면 꼭 필요한 서류지.

숙소 아침은 모처럼 제대로 된 모닝뷔페다. 그래봐야 먹을 건 뻔하지. 빵, 치즈, 햄, 살라미, 소시지 등등. 신통하게도 생배추를 썰어두었네. 소스(아마도 머스타드 종류)를 얹으니 먹을 만 하다.

아침먹고 바로 출발한다. 가면서 비아위스톡 동네 구경을 좀 하나 했는데 구글은 외곽으로 바로 빼버려서 그냥 간다. 아깝다. 길은 좋아 속도가 잘도 올라간다. 여기도 고속도로는 130인데 그 속도를 다 채우는 차는 별로 없다. 폴란드를 이렇게 다시 와서 지나치는 일도 생기네.


국경 부근 아우구스투프 동네를 지나가는데 길가에 이상한 돌무더기가 있다. 차를 세우고 보니 2차대전이 끝나고 스탈린이 약 2천 명의 폴란드 독립군을 학살한 기념무덤이다. 소련이 폴란드 등의 동유럽을 강점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참사인데 학살 당한 시신을 일부 찾아내서 이곳에 무덤을 만들었다. 거창하지 않고 소박한 십자가 돌무덤이 더욱 가슴에 아프게 와닿는다.


국경은 금방인데 솅겐조약국이라 세관 검사는 당연히 없다. 그러고 보니 라트비아도 솅겐이라 검사가 없을 것. 러시아 등지에서 오는 차들에게만 소지품 제한이 있는 것이네. 그러니 어제 폴란드 입국할 때 그 세관원이 그리도 꼼꼼하게 물어본 것이렷다.

기념사진을 찍은 후 바로 옆 i에 가서 지도를 얻고, 리투아니아 도로 통행료를 물어보니 소형차는 무료란다. 쌩큐다. 기념으로 마그넷을 하나 산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발트3국을 다 거치게 되네.


풍경은 똑같다. 똑같은 벌판에 똑같은 집에 똑같은 목초지 등. 지형이 같고 기후가 같으니 다를 이유가 없지. 길가에 널린 게 능금나무(알고 보니 사과나무)인데 빨갛게 익어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차를 세우고 보니 이건 마트에서 파는 사과와 똑같은데 아무도 관리하는 사람이 없는지 잘 익어 빨간 놈들이 바닥에 떨어져 썩고 있거나, 나무에 달려 새모이가 되고 있네. 신통한 사람들이다.


빌니우스로 가는 길에 호수 가운데 예쁜 성이 있는 트라카이에 들러 점심이나 먹자 했는데 주차할 곳이 없다. 이 동네가 꽤 이름있는 관광지인가 보다. 한국인 관광객도 눈에 띈다. 호수 안에 있는 성 하나로 온 세상 관광객을 잘도 불러 모은다. 호수를 벗어나 또 다른 한적한 호수 옆 식당에서 점심. 돼지고기 요리인데 고기 자체가 맛없는 등심이라 겨우 먹었다. 같이 나온 구운 감자는 마눌님이 좋아할 맛. 배를 겨우 채운다. 송어같은 생선 요리와 함께 2인분 16유로. 폴란드보다 비싼 나라지만 다른 유럽보다는 그래도 싼 편이지.


빌니우스는 그냥 통과한다. 시간이 넉넉하면 관광도 괜찮지만 여러 이유로 통과해 버리기로 한다. 졸려서 고속도로에서 깜빡깜빡 한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짓이다. 핸들을 넘기고 한잠 잘 자고 나니 라트비아 국경이 금방이다. 역시 사진찍고 그냥 통과. 

독일에서 자작 트럭 캠퍼를 몰고온 젊은 친구가 아는 척을 한다. 캠핑카 회사를 운영한다면서 자기는 이란을 거쳐 스탄들로 가는 중이라네. 이란 까르네는 당연히 준비했단다. 중국에서 오는 팀과 어디선가 만나기로 했다며 나중에 다시 독일에 오면 연락하라고 명함을 준다. 나도 스탄들에 가고 싶었는데... 근데 이 친구가 키가 너무 크네.


남북이 열리면 그 길을 이용한 사업도 구상 중이라니 참 놀랍다. 유럽 애들이 벌써 이런 생각을 하다니, 우리 발이 너무 느린 건 아닐까 우려되기도 한다. 내친 김에 내가 한번 해볼까도 싶은데 내국인에게는 특히 매정한 우리 공무원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네.

나라만 바뀌었지 달라진 건 없는 풍경. 사과나무는 더 많아지는 것 같다.


목적지 레제크네에는 8시 5분 전 도착, 호텔 조금 못 미친 마트에서 조리된 오겹살, 생선전, 버섯요리 등 저녁거리를 사들고 체크인. 호텔이 예상보다 훨씬 크고 방도 많다. 방에는 냉장고도 없고 가장 기본적인 시설만 있다. 이런 호텔도 주말에는 가격이 100유로나 된다.


저녁거리와 함께 와인을 비운다. 오겹살이 식으니 껍질이 딱딱해져서 정말 먹기 힘들고 버섯은 짜다. 어떻게 하면 맛있는 음식을 사먹을 수 있을까? 1리터나 되는 레드 와인만으로도 알딸딸한데 그동안 조금 남겨서 가지고 다니던 보드카를 한잔씩 더 보태고 완전히 뻗는다.

짧게 지나친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인데 라트비아나가 훨씬 좋아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