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114 우파 - 쿠르간 678km

나쁜카카오 2018. 12. 1. 12:08

일어나 시계를 보니 4시다. 날이 훤해서 시간대 설정이 잘못되었다고 러시아를 나무라다가 보니 내 폰 시간이 바뀌지 않았네. 시간을 6시로 고친다. 그렇지만 해는 늦게 뜨는 것 같으니 아무래도 러시아를 좀 나무라긴 해야겠다.

어제 저녁 남은 된장찌개에 라면 스프를 넣어 국을 만들고, 달걀후라이와 감자양파볶음으로 아침을 때운다. 

오늘은 숙소를 미리 예약하지 않고 가면서 적당한 거리의 도로변 가스티니차를 이용해볼 생각이다. 여러 모로 불편하겠지.

우랄산맥을 넘는다. 고도는 419를 찍으면서 앞에는 제법 산같은 모습을 풍경이 나오는데 조금 내려가더니 산속 마을 Sim도 나타난다. 고개에서는 사모바르 파는 가게가 줄지어 있는데 사모바르 높이가 최소 50cm 정도로 너무 커서 가져가기는 어렵겠다. 적당한 크기 한 놈의 가격을 물어보니 27,000루블을 달라네. 말도 안 되는 가격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비싸다. 물론 흥정을 기대하고 좀 많이 부른 것이겠지? 가게 안에는 사모바르 외에도 잡다한 물건을 파는데 부탄가스도 있다. 이런 가게들이 연이어 있는 걸 보면 물건이 팔리기는 하나보다.

 

길은 다시 고도를 높이며 400 전후 정도를 한참 동안 오르내리네. 이제는 내려가나 했는데 잠시 눈감은 사이에 500을 넘어 673까지 찍는다.  그런데 저 멀리 더 높아보이는 산이 버티고 있고 그 뒤로도 산들이 연이어 보인다. 우랄 산맥은 폭이 매우 넓어서 300km는 되지 않을까 싶다. 재밌다. 당연히 경사는 매우 완만해서 트럭들도 그리 힘부쳐 하지는 않는다. 726을 찍고는 전후 평평한 고원지대를 지난다. 앞에는 천m는 됨직한 산 하나가 옆구리에 눈을 좀 붙인 채 버티고 있고 그 뒤로도 그 높이 정도의 산들이 연이어 보인다. 다시 고도를 높여 817을 찍어서 이게 아마도 최정점이겠지 했는데 저멀리에는 1500은 넘어 보이는 산이 하나 버티고 있어 앞길을 짐작치 못 하게 한다. 

산들이 쌓인 모양새는 멀리서 보면 첩첩산중인데 경사가 워낙 완만해서 산이라 부르기 좀 민망할 정도다. 물길도 많이 보이고 가끔 호수가 있어, 벌판의 젖줄 노릇을 하나보다. 도대체 이 산맥에서는 언제 하산하는 거냐? 그런데 곳곳에 공사장이네. 산맥이라는 이름값을 하기는 한다. 첼랴빈스크 50km 앞두고 전방에 더 이상 산은 보이지 않는다. 고도는 여전히 300 정도이지만 이제 산맥을 벗어났나 보다.


1697km라는 제목을 단 가스티니차도 있다. 이 숫자는 지금 달리는 M5(AH-6, E-20)도로의 거리를 나타내는 것일 텐데, 그 시작이 어딘지 궁금하다 했는데 모스크바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면 M7과 M5를 합한 거리렷다. 첼랴빈스크를 20km 앞두고 나타난 이정표는 1830인가를 알리는데 첼랴빈스크를 우회하니 새 거리표가 나온다.

경찰이 괜히 잡아서는 면허증만 보고는 그냥 가라네. 왜 잡았는지 이유를 모른다. 오늘 구간에는 경찰이 쫙 깔렸다. 오늘처럼 경찰이 많은 건 처음 본다.

쿠르간 입구의 허름한 가스티니차에서 1박. 천 루블인데 주차료 70을 더 받는다. 온 천지 널린 공터인데 호텔 앞이라고 돈을 더 받다니... 가게에서 물과 통조림을 하나 사고 카페에서 닭다리 하나와 감자샐러드를 저녁 삼아 사왔는데 양이 모자라서 컵라면을 보탠다. 카페 직원 처자들이 한두 마디 떠듬거리며 영어로 말해보는 게 재밌는지 계속 웃으면서 이야기해서 좋다. 방은 참으로 허름하고 이상한 냄새도 난다. 어쩌면 우리처럼 방에서 뭔가를 끓여먹고 남은 냄새가 합쳐져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우리 라면 냄새도 이 사람들이 맡으면 지독하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