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136 하바로프스크 - 우수리스크 671km

나쁜카카오 2018. 12. 4. 09:41

잡뼈국으로 아침을 때우고 남은 고기와 국물은 버린다. 고기를 따로 떼서 구웠으면 좋을 것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샤워하려니 더운 물이 나오지 않아 고양이 세수로 대신한다. 마지막에 애먹이네. 10시에 나섰는데 샴베리 마트에서 이것저것 장을 보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어제 다녀왔으면 될 걸, 우리는 늘 마지막에 바쁘다. 마눌님 선물용 당근크림, 세일하는 보드카 4병, 초콜릿 조금, 그리고 빵과 우유.


하바로프스크 시내를 다시 관통해서 A370도로에 들어서니 여전히 길은 좋다. 갈 때는 이 길에 대한 생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길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데 여기도 그냥 평평한 벌판길이 아니고 산도 있고 언덕도 있네. 강이 자주 나오는데 강둑이 없어서인지 강물이 범람한 듯, 강 주변으로 물이 많다. 근처에 인가가 없어 홍수로 피해볼 일이 없으니 강물이 범람하든 어떻든 그냥 놔두면 저절로 물이 빠지겠지. 쓸모없는 땅이 많으니 이런 건 편하네.


밥먹을 식당이 보이지 않기도 하고, 마땅히 때울 끼니거리가 없기도 해서 샴베리에서 사온 빵을 뜯어보는데 맛있다. 이때까지 먹은 빵 중에서 가장 낫다는 마눌님의 말이 맞다. 그래서 얼결에 점심은 빵과 우유로 때우는 셈이 됐다.

우수리스크 100km 정도 앞두고 길가에 채소와 과일을 파는 가게들이 줄지어 있어 잠시 들리는데 혹시 하고 우리말로 좀 크게 이야기했더니 어떤 할머니가 금방 알아듣는다. 이 지역에는 조선족이 많이 사나보다. 그래서 수박 하나를 사고 자색 양파 2개는 선물로 얻는다.


우수리스크를 50km 정도 앞두고는 시속 110까지 허용되는 4차선 고속도로가 나온다. 어쩌면 전 구간 고속화의 시작일 수도 있겠지만 상뜨 뻬떼르부르그까지 만km에 매우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이런 고속도로들이 다 연결되려면 수십 년이 걸리겠지. 하지만 주요 도시도 아니고 그냥 아무 곳에나 이런 도로를 만드는 것 같은, 이 러시아의 웃기는 도로정책을 이해하기에는 내 러시아 이해도가 너무 낮은 것이겠지? 그냥 그러려니 하자. 

8시 반쯤에 도착할 거라고 문자를 보내고, 길도 좋고 하니 가능하면 밤운전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보는데 그리 쉽지 않다.  그래도 우수리스크 근교, 사람이 사는 동네에 들어와서야 날이 거의 어두워지니 다행이다. 노을이 예쁘지 않아 애만 쓴다.


숙소 옆에 와서도 문자에 대한 답이 없다. 여기 인간들은 핸드폰 문자가 익숙하지 않은 것일까? 도대체 문자에 대한 답을 보낼 줄을 모르네. 전화를 하니 그제서야 겨우 받는다. 한참을 기다려 주인여자를 만난다. 부킹닷컴으로 메시지를 보냈다는데 내 폰에는 연락온 게 없다. 무슨 시스템이 이따위인지...

집이라고 들어와보니 이건 정말 아니다. 더러운 주방에, 크기만 크고 더러운 방에. 이런 집을 숙소라고 내놓는 인간들이 정말 밉다. 가격이 싼 편도 아니다. 1층이라 좋다 했는데 집 꼴도 더럽다. 마지막 아파트가 러시아에 정떨어지게 만드네.

음식을 만들기도 싫고 해서, 마눌님은 수박으로, 나는 샴베리의 킹크랩맛살에 보드카로 저녁을 때운다. 좀 출출한 듯 해서 끓인 라면조차 맛이 없어 국물만 좀 마시고 버린다.

마눌님의 다리가 많이 불편해서 큰일이다. 허리 디스크에 문제가 많이 생긴 탓일까? 어제 좀 불편하던 내 무릎은 자고나니 많이 나아졌다. 이런 몸으로 세계일주를 해야 하니 많이 답답하네. 그 좋은 트레일들을 어찌할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