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홍콩 세 번째, 드래곤스백 트레킹
2017년 10월 23일. 월
5시에 일어나 준비를 마치니 9호선 김포공항행 5시 56분 급행을 탈 수가 있다. 김포공항에서는 6시 28분 공항행을 타는데 이 시간에 좌석이 없어서 38분간을 서서 가야 한다. 젠장이다. 공항에 도착하니 사람이 별로 없어 한산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검색대기줄이 또 엄청나다. 편리한 자동발권기에서 보딩패스를 받아 현숙이 미리 서있는 대기줄에 합류했는데 의외로 검색은 빨리 끝나 30분만에 통과할 수 있었다.
면세점(담배 4포, 잎담배 4봉지. 143천원)을 들렀다가 라운지에서 아침을 먹기로 하는데, 마티나 라운지는 좌석이 없어서 할수없이 들어간 허브 라운지는 참 먹잘 게 없네. 나중에 나온 소고기무국이 맛있어서 그걸로 배를 채웠다. 어쨌거나 공항에만 오면 왜 이리 마음이 바빠지는지 모르겠다.
10시 3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대만 상공을 살짝 걸쳤다가 12시 40분에 홍콩에 도착한다. 하늘에서 본 홍콩의 대기가 너무 뿌얘서 놀랍다. 홍콩의 공기가 매우 맑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더러운 공기가 홍콩을 뒤덮고 있는지 알 수가 없네. 12년 세월이 이렇게 만드는 건가?
수하물이 없으니 입국수속 후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세관검사를 지나 옥토퍼스 카드도 사고, 유심도 끼우고, 인천에서 급히 산 공항철도 카드도 받고 하느라 시간이 많이 흘렀다. 배가 고파져서 공항 안 식당에서 샤오룽빠오와 완탕면 등으로 가볍게 요기. 공항의 식당은 워낙 비싼 곳들이라 왠만해서는 이용하지 않는 곳들인데 배가 고파서 들어갔더니 역시 비싸다. 나중에 시내의 식당과 비교해보니 거의 배가 비싸다.
그래서 1시 반 정도에 탑승예정이던 AEL을 3시에나 탄다. 새로 지어진 공항은 오가는 교통편이나 도로 등 전반적으로 인천공항 냄새가 많이 난다. 24분 걸려 도착한 홍콩역에서 무료 셔틀을 타고 North Point의 호텔 근처까지 잘 왔는데 호텔을 찾느라 좀 헤맸다. 시장통 한가운데 있는 Grandview호텔. 다행히 24층을 배정받아 방에서 보는 전망이 괜찮은데 아래층들은 뷰는커녕, 시장 냄새나 안 나면 다행이게 생겼다.
잠시 시간을 내어 옥상에 올라가보니 전망은 방과 별로 다를 게 없는데 수영장은 계속 공사 중이라네. 현숙은 수영복을 가져오지도 않았다. 어쨌거나 악평이 많은 호텔이라 내심 불만이던 현숙이 어느 정도 만족하는 것 같긴 하다.
방에서 좀 쉬다가 5시에 관광을 나선다. 예정보다는 훨씬 늦은 시간인데 앞으로 우리 여행이 아마도 이런 식의 늦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다.
호텔을 나서 바로 앞 시장통 정육점, 생선과 채소가게들을 구경한다. 본토박이들이 사는 동네라 그런지 홍콩의 속내를 보는 것 같다. 조금더 가니 트램역이 바로 나온다. 센트럴 동네까지 트램을 타고가니 재밌다. 길도 복잡하고 차도 많고 사람은 더욱 많은데 사고도 나지 않고 다들 잘도 다닌다.
피크트램 역까지 걸어가보니 6시 정도가 완전히 피크 타임이라 탑승줄이 끝이 보이질 않는데 1시간 반은 기다려야 한다네. 시간이 좀 흐른 후에 타기로 하고 유명하다는 빵집을 찾아 새로 지은 IFC 빌딩을 찾아가는데 막 시작된 빌딩들의 조명잔치가 화려하다.
겨우겨우 팀호안이라는 식당을 찾아가니 다행히 대기줄이 길지 않아 금방 자리를 차지한다. 소보루빵 안에 돼지고기요리를 넣은 특이한 맛의 빵에 샤오마이와 채소볶음으로 배를 채운다. 맛이 괜찮은데 현숙은 소보루빵이 많이 먹을 음식은 아니라네.
식당을 나와 도보 20분 거리의 트램역을 15C버스를 타려고 한참을 돌고 헤매며 30분도 더 기다려 겨우 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가니 이제는 기다리는 줄이 없어 바로 탈 수 있다. 피크에 올라가 루가드 로드의 피크 트레일을 따라 한참을 오르니 나무가 없어 전망이 확 트인 곳이 나온다.
무겁게 가져간 삼각대를 펴서 사진을 찍는다. 홍콩의 볼거리는 역시 야경밖에 없다. 전보다 더 늘어난 고층건물들의 요란한 조명잔치는 재밌다.
내려올 때는 정상에서 바닥으로 내려오는 15번 버스. 산중턱을 가로지른 꼬불길을 큰 버스가 잘도 간다. 당초는 2시 경에 호텔 체크인을 하고 피크로 올라가 트레일을 한 바퀴 돈 다음 Central까지 걸어내려올 계획이었는데 늦어서 무산됐다. 금종Admiral역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호텔로 들어오면서 온천지에 널린 7-11에서 맥주와 라면을 사서 한잔한다. 많이 걷지는 않은 것 같은데 기다리고 헤매느라 진이 빠진다.
2017년 10월 24일. 화
호텔의 아침뷔페는 60달러. 맛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서 내일은 나가면서 아침을 해결하기로 한다.
느긋하게 10시쯤 호텔을 나서면서 시장통 꾀제제한 빵집에서 간식용 빵을 샀는데 나중에 지하철역서 보니 괜찮은 빵집이 많이 있어서 현숙이 매우 가슴아파했다.
지하철로 Chau kei wan에서 내려야 하는데 아무 생각없이 종점인 Chai wan에 내려서 9번 버스를 찾으니 있을 리가 있나. 다시 8X버스를 타고 Chau kei wan으로 간다는 게 멍청한 구글 때문에 Chai wan역만 한 바퀴 돈 셈이 됐다. 결국 지하철을 다시 타고 Chau kei wan역으로 가서 9번 버스를 탄다. 꼬박 1시간을 길바닥에 버렸다.
2층 버스 맨 앞좌석에 앉아 꼬불 홍콩길을 감상하다보니 드래곤스백 들머리인 To tei wan에 금방 도착한다. 트레킹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인데 등산화를 신은 사람은 별로 없네. 트레일 들머리의 분위기가 좋다. 이런 곳에서 홍콩 트레킹을 한다고 생각하니 좀 뿌듯한 느낌이다. 들머리 기념사진을 찍고 12시 20분 트레킹을 시작한다.
대기는 여전히 뿌옇지만 올라갈수록 트이는 전망에 기분이 더욱 좋아진다. 한참을 오르니 길이 갈라져 드래곤스백으로 오르는 트랙으로 접어든다. 정상은 금방인데 눈 아래 바다와 섬과 마을이 그림이다.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 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2번째 봉우리에서 의자에 앉아 삥 하나씩으로 간단요기를 하면서 경치를 즐기니 참 좋다. 내리막을 한참 내려가니 매우 평탄한 숲길이 나와서 이렇게 편안한 길도 있구나 싶어서 매우 좋다. 그런데 좋은 건 딱 여기까지.
이렇게 평탄한 길이 트레일 끝까지 이어지는데 산허리를 둘러가다보니 전망도 바람도 없는, 정말 지루한 길만 있다. 이런 정도 길은 온 세상에 쌧고쌧다. 전체 8.4km의 트레일에서 전망을 즐기며 시원하게 걸을 수 있는 구간은 겨우 2.3km 정도. 이런 트레일을 세계에서 가장 좋은 길이니 어쩌니 하고 너스레를 푼 인간들이 정말 밉고 이런 트레킹을 하려고 홍콩까지 온 내가 정말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초입에서는 카페 사람들과 이 길을 같이 걸을까 싶기도 했는데 같이왔다간 욕만 듣게 생길 정도다.
더욱이 그나마 산길이 끝나고 마을로 가는 2.5km는 시멘트 포장길이고 대랑만Big wave bay 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울퉁불퉁 매우 불편하다. 트레일은 파도가 매우 크고 시원한 마을에서 끝났다. 홍콩 앞바다 뜨뜨한 바닷물에 발을 담그니 아픈 발바닥이 좀 풀리는 것 같아 그나마 위로가 된다. 파도가 커서 이 마을은 홍콩의 서핑명소란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서핑도 하고 조그만 모래사당에서 잘 놀고 있다. 서양인 모녀가 공놀이를 하다가 바닷물에 발을 담근 우리 사진을 찍어줬는데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지 못한 게 이제서야 좀 아쉽다.
홍콩관광청 안내서에는 이 마을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Shau kei wan으로 가라고 되어 있는데 9번 버스도 올 정도로 트레일의 관리가 부실하다. 언제 올지 모르는 9번버스를 포기하고 10달러나 받는 비싼 미니버스를 타고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9번 버스가 연이어 들어온다. 아깝다. 마을사람들이 이렇게라도 벌어먹고 살 게 도와줬다고 생각한다. 불과 3달러 가지고 이따위 생각을 하면 안 되겠지?
배가 고프니 뭘 먹어야 하는데 Chai wan역과는 달리 Shau kei wan역에는 마땅한 식당이 없어 North point로 돌아와서야 식당에 들어간다. 관광객 상대 식당이 아니라서 우리가 알 수 없는 메뉴설명 때문에 완탕면만 겨우 주문해서 끼니를 때운다. 식당에서 나와 호텔로 오다보니 우리가 좋아하는 마트가 있네. 밤에 먹을 술 45도 죽엽청주 125ml 작은 병을 하나 사고 안주로 해물김밥도 산다. 마트라 반찬거리도 많고 이런저런 요리를 얹은 밥도 많이 판다. 한국 물건도 많이 파는데 소주도 보인다. 참이슬 등의 가격이 겨우 2배 정도로 그리 비싸지 않네. 관세가 많이 내렸나 보다.
그리 많이 걸은 것도 아닌데 너무 힘들어서 다시 나갈 엄두는 내지 못 하고 일단 쉬기로 한다.
매우 피곤한데 좀 쉬고 샤워를 하고나니 다시 힘이 난다. 그래서 침사추이 야경을 보러 나간다. 예전에는 페리가 센트럴과 침사추이를 연결하는 스타페리만 있었는데 이제는 Northpoint와 훔홍을 연결하는 페리도 생겨 가까운 이 놈을 타기로 한다. 가격은 좀 비싼 듯. 건너편 바다에 도착, 바다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로 홍콩섬의 야경과 레이저쇼를 본다. 홍콩은 역시 야경밖에는 볼 게 없네. 홍콩의 트레일이라는 것들은 아무래도 과대광고가 된 것이다.
침사추이 동네가 30년 전과는 몰라보게 개발되어서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는데, 해변을 벗어나 시내로 들어가니 좀 낯이 익은 곳이 나오기는 한다. 소위 명품가게들이 휘황찬란하게 번쩍이고 있어서 저 놈의 명품들은 도대체 돈을 얼마나 많이 벌까 싶어 배가 아프다.
현숙의 화장품을 좀 사고 돌아오는 길에 혹시 먹을만한 식당이 있나 찾아봐도 없어서, 할수없이 지하철로 돌아온 북각 동네, 점심 때 간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는다. 늦은 시간이라 왠만한 메뉴는 다 팔리고 없네. 이 동네는 관광객보다는 현지인이 많은 동네라 메뉴에 전부 중국글만 있어서 음식 고르기가 정말 힘들다. 호텔로 돌아와 낮에 사둔 죽엽청과 초밥으로 마무리.
2017년 10월 25일. 수
느긋하게 9시 40분쯤 호텔 체크아웃. 활기가 넘치는 시장구경을 하면서 공항열차 셔틀버스가 오는 Ibis호텔로 간다.
버스는 16분 도착, 복잡한 도심도로를 피해 해변고속도로로 달리니 홍콩역까지는 금방 온다. AEL은 공항까지 24분 소요, 터미널2의 제주항공 카운터에서 짐무게를 재보니 13kg가 나와 짐을 배낭으로 옮기고 나서 옥토퍼스 카드도 환불받아야 하니 다시 철도터미널까지 올라가야 한다. 라운지에서 아침을 먹고 13시 35분 비행기를 타려면 또 시간이 빠듯하다.
공항당국이 비행기를 타는 데 복잡한 이동경로를 보태서 매우 불편하다. 공항이 복잡해서 추가공사가 끝날 때까지는 이런 복잡한 절차를 계속 거쳐야 할 모양이니 이런 불편함이 당분간 홍콩에 다시 올 일도 없으려니와 다시 오고 싶지도 않게 만들기도 한다. 보딩패스를 받고 보안검색과 출국수속 이후 비행기는 터미널1에서 타야 하니 터미널 간 셔틀열차를 두 번이나 타고 터미널1에 가야 한다. 제주항공 게이트는 208인데 라운지는 40 부근에 있다. 그런데 이건 또 셔틀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바쁘다. 그런데 게이트가 210으로 바뀌었는데 그마저 바로 뜨지 않아 또 기다려야 했다. 홍콩은 정말 여러 모로 싫어져서 다시 오고싶지 않다.
그렇게 헤매고 다니다가 플라자 라운지에 들어간 시간이 12시. 아무리 늦어도 1시 15분까지는 게이트 앞에서 대기해야 하니 시간이 40분 남짓 남았다. 급하게 식사를 한다. 음식이 맛있어서 더 먹고 싶기는 했지만 시간도 없고 배도 터질 듯 해서 아쉽지만 라운지를 떠나 게이트로 가니 20분 지연된다는 안내판이 붙어 있네. 안내방송을 듣지 못한 건 우리 탓이겠지만, 이래저래 몹시 불쾌한 홍콩공항이다.
비행기에 앉자마자 잠이 든다. 이번 여행에서는 비행기에서 매우 잘 잔다. 하긴 매번 2시간 정도는 잘 자며 다니긴 했지.
수하물이 없으니 입국시간이 단축되어 좋기는 하다. 7시 정도에 도착해서 거칠 것 없이 입국수속과 세관통과, 7시 30분에 공항열차를 타고 집에는 9시 전에 도착했다. 현숙이 끓여준 고등어김치찌개에 기어이 소주를 보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