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성인봉을 완전히 덮은 눈 위에서
울릉도를 간다. 쾌속여객선을 운영하는 대아고속의 대아여행사. 독도관광까지 포함해서 1박 4식에 205,000원. 다른 여행사에 비해 독도관광비 40,000원정도가 싼 패키지라 선뜻 예약하고 덕수궁에서 새벽 4시 40분에 출발하는 묵호 왕복버스비 35,000원까지 흔쾌히 포함시켰는데 제공되는 식사가 너무 형편없어서 만일 다음에 울릉도를 또 간다면 -그럴 일은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 따로 예약해서 갈 일이다. 숙소인 대아리조트는 여관보다 낫지만 리조트 숙박이 일반여관보다 반드시 나은 것만은 아니다. 묵호-울릉도 45,000원(단체할인가는 31,500원). 독도관광 40,000원.
이렇게 이른 시각에 집을 나서는 건 처음이고 택시조차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라 일찍 깨어 열심히 준비해서 새벽 4시 14분에 집을 나서니 예상외로 택시가 많다. 덕수궁까지 약 7분에 5천원. 일찍 도착했다 했는데 일산에서 출발한 버스는 이미 대기중이고 우리가 그다지 빨리 도착한 편이 아니더군. 손님이 다 탔는지 시간이 되기도 전인 4시 35분 출발, 신사역과 잠실에서 45인승 버스를 가득 채우네. 버스 두 대가 거의 찬 것 같다. 울릉도 관광이 나름대로 꽤 인기있는 상품인 듯하다. 횡성휴게소 거쳐 8시 15분 묵호휴게소에서 잠시 쉰 다음, 8시 48분 묵호항에 도착한다. 10시에 출발하는 배는 9시 반부터 승선수속이 시작된다하니 좀 늦게 출발해도 되긴 하겠지만 서울에서 묵호까지 길이 머니 어쩔 수 없긴 하겠다. 묵호항 울릉도여객터미널 2층의 식당에서 제공하는 동태찌개는 첫맛은 그럭저럭 괜찮았으나 먹을수록 두번 다시 먹고싶지 않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실망스런 부분은 식사인데 첫 식사가 그 수준을 말해준다고 보면 대체로 틀림 없을 것임.
여객터미널은 울릉도 가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3월초도 겨울이라 성인봉 등산객은 별로없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450인승 한겨레호를 가득 채운 승객 거의 모두가 등산배낭을 매고 있다. 전부 등산객은 아니겠지만 산에 가는 사람이 많긴 하다. 산에서 본 사람은 약 100명 정도?
날씨는 좋고 묵호항의 물은 매우 깨끗해서 기분이 좋다. 멸치떼처럼 보이는 조그만 고기떼가 방파제 바로 옆에서 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돌로 물에 충격을 주니 기절해서 떠오르기도 한다.
10시 3분 출발한 배는 중간에 섬 하나 없는 망망대해를 빠르게 가는데 난바다에서는 보통 정도의 파도라 보이는 2m정도의 파도가 제법 멀미를 일으키나 보다. 현숙은 다행히 키미테를 준비해 멀미를 하지 않는데 출발 후 30분 정도 지나니 몇몇 사람은 토하기 시작하는군. 앞으로 2시간 정도를 더 가야 하는데... 현숙은 감기기운까지 있는데도 꿋꿋이 잠을 잘 자서 멀미를 견뎌내기도 하는 것 같다. 동호인회인 듯한 한 팀이 왁자지껄 술을 마신다. 좋아보이기는 하지만 어울리면 귀찮아하지, 우리는. 12시 50분에 도동항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20분 정도는 더 걸렸지? 도동항을 옴팍하게 둘러싼 봉우리들이 매우 인상적이라 멀리 왔다는 느낌이 확실히 든다. 여행사 팻말을 든 가이드들이 줄지어 서있는 선착장에는 해외의 공항에서나 봄 직한 풍경들인데 따지고 보면 울릉도 여행은 경비나 시간이 해외여행만큼이다.
독도를 가는 배는 우리가 타고 왔던 한겨레호인데 2시 출발이라 시간이 예상외로 빠듯하다. 푸근한 듯 하면서도 약간은 까칠하게 생긴 현지가이드가 안내하는 식당은 선착장 바로 옆의 허름한 곳. 수족관에는 한치 몇 마리와 손바닥만한 광어 정도만 놀고 있네. 원래 이런 식당의 음식이 제맛을 내는 법인데, 단체여행객 식사는 기대하면 할수록 가슴만 아프다. 달랑 꽁치조림에 콩나물국이 전부인 식단. 하다못해 동태찌개라도 나올 줄 알았는데, 참 너무하는구나. 울릉도에서만 나는 전호라는 - 이파리는 당근 비슷하고 뿌리는 약간 보라색이 도는 - 나물맛은 그저 그렇다. 내가 나물을 썩 좋아하지 않기도 하는데 나물박사인 현숙은 잘 먹는군.
2시 독도로 향한다. 오면서 멀미에 혼이 난 승객 몇명은 독도를 포기한다. 이 정도 파도는 보통이라 문제없이 접안하여 독도에 발을 디딜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같이 점심을 먹던 부부에게 열심히 권하기도 했는데 파도가 높아서 접안할 수 없다는 실망스런 멘트. 그래도 배 위에서만 본 독도가 독도를 느끼기에는 차라리 낫다 싶기도 하다. 독도의 보호를 위해서도 입도가 되지 않은 게 나을 수도 있다는 현숙의 말도 맞다.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독도를 보며 독도노래를 부르고 태극기를 휘두르는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그 감정이 낭비나 과잉이라는 생각을 하는 건 그런 겉치레 애국심을 내가 싫어하기 때문이다.
약 20여분간 열심히 사진을 찍고 갈 때보다 더 흔들리는 배를 타고 도동항에 귀항하니 6시 반이 지났다. 숙소로 갈 시간이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대아리조트. 우리 숙소는 방갈로 형인 별관이다. 뷔페식이라던 해서 간단히 소주 한잔 할 수 있겠다 하고 기대한 저녁은 썰렁한 갈비탕. 그래도 울릉도 기념주를 하지 않을 수 없지. 소주 한병을 기념으로 마신다.
서울-묵호 4시간, 묵호-울릉도 3시간, 울릉도-독도 왕복 4시간 반. 모두 11시간이나 버스타고 배타느라 지친 몸이 쉬 잠들게 한다. 방이 너무 뜨거웠다.
내일 아침은 뷔페라고 식당 웨이터 녀석이 자랑스레 말하던 뷔페는 밤새 다 어디에 있었나 할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로 완전히 아수라장이다. 자리를 겨우 잡아 참으로 한심한 한식뷔페로 아침을 먹는다. 기대를 말았어야지. 뷔페라길래 점심용으로 빵이나 챙기겠다던 현숙의 예정도 어긋났다.
패키지에 포함된 섬 일주관광을 포기하고 성인봉을 오르기로 한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울릉도에 온 김에 육로일주, 해상일주, 그리고 성인봉까지 모두 챙겼으면 했으나 그럴러면 3박4일의 일정이 필요하다. 성인봉에 가겠다고 다시 울릉도를 오게 될 것 같지 않았고 어제 하루종일 버스와 배에 시달린 몸을 산으로 풀어주는 것도 매우 필요하다. 그런데 지난 주초에 내린 눈이 엄청나게 쌓여 나리분지 쪽으로 넘어가는 건 불가능하단다. 실제로 산에서 만난 사람들 중 나리분지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새벽 6시반에 출발해서 코가 눈에 파묻힐 정도의 엄청난 눈길과 씨름하느라 3시간 거리를 5시간이나 걸렸단다.
귀경배는 3시 출발이다. 그것도 5시로 잘못 알고 있었으니 본의아니게 하루 더 잘 뻔했다. 8시 14분, 사람들이 주로 대원사에서 올라가니 도동으로 그냥 가자는 버스기사녀석의 말을 듣지 않은 건 정말 잘한 일이다. 고도가 100m도 더 차이가 나는 데다 나중에 내려오면서 보니 올라가는 시멘트 포장길의 경사는 그것만으로 사람을 지치게 하는 정도였다. 산에서의 어설픈 충고는 멀쩡한 사람도 악인으로 만든다. 중계소 아래에서 하차해서 조금 올라가니 지난 주의 폭설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배에서 본 울릉도의 첫느낌은 매우 가파른 산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었는데 등산로는 그 첫느낌을 배반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가파르게 치고 올라가는 등산로는 지난 주 내 감기로 쉰 한주가 아쉽게 느껴지게 한다. 9시 9분, 대원사에서 오르는 삼거리에 도착해서 아이젠을 찬다. 능경봉을 올 겨울 마지막 심설산행이라 치고 스패츠 산행을 더 하지 않겠다고 치워버린 내 단견이 몹시 아쉽다. 울릉도에 눈이 많이 왔다는 뉴스를 보고서도 눈이 이렇게 많을 줄 예상하지 않은 점, 그래서 스패츠는 아예 생각하지도 않은, 전혀 학습효과가 없는 이 새대가리를 어찌 할꼬...
지금부터 등산로는 깎아지른 듯한 경사를 지나간다. 눈이 쌓여 좀 덜 무섭기는 했으나 한 걸음만 삐끗해도 바로 70도도 넘어보이는 낭떠러지로 미끄러져 떨어질 것 같은 외길 등산로를 무서무서하며 지나간다. 올 때도 이 길을 가야 한다니 정말 끔찍하다. 별로 필요 없어보이는 다리 신설공사장을 지나니 길이 갈라지는데 계곡으로 난 길이 너무 가팔라 보인다. 마침 산허리를 돌아드는 길을 거제산악회 일행이 앞서 가길래 따라 간 것이 성인봉을 제대로 겪게한 시작. 자기네가 없는 길을 만들어 간다네. 우선 1시간을 넘게 걸었으니 우리의 정석대로 쉬자. 현숙은 이 설경 자체가 바로 그림이란다. 현숙은 늘 맞는 말만 한다. 눈이 거의 덮어버린 정자에 도착했을 땐 거의 기진맥진. 하지만 그때부터는 다져지지 않은 눈길로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가느라 무릎에 힘이 다 빠지면서 능선이 바로 저기 보이는 곳에서는 정말 도로 내려갔으면 싶기도 했다. 능선에 올라서니 성인봉 정상은 금방이다. 눈이 정상석의 성자만 남겼는데 그나마 사람들이 좀 다져서 그만큼이나마 나와을 터다. 조금 아래에 있는 전망대도 사정은 마찬가지. 난간이 눈에 파묻혀 끄트머리만 겨우 남아 있어 자칫 발을 헛디디면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생겼다.
성인봉 정상은 사방 수평선의 시원함으로 이름을 알린 곳인데 구름이 수평선을 보지 못하게 하는군. 날씨만 맑으면 80여 km 떨어진 독도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육안으론 80km가 멀다. 그러니 성인봉에서 독도가 보인다는 설명은 어디에도 없지.
카스타드와 떡으로 간단하게 배를 채우고 하산은 능선길로 간다. 마침 올라올 때의 그 거제산악회가 능선길로 앞서 가주는군. 가파른 고개를 내려오다 현숙이 미끄러지는 사고를 만났는데 다행히 부상은 없었다. 순식간에 10여m를 미끄러져 내려가는데 다행히 눈이 많이 쌓인 곳이라 미끄러지는 것을 보면서도 약간 안심은 했었지. 그래도 다른 사람들 눈도 있으니 실제보다 훨씬 많이 당황하는 척을 해야 한다. 나무를 잡고 미끄러지기를 멈추었을 때 날쌔게 달려가 구출한 건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가 아닌 것은 확실하지. 마누라가 사고가 났는데도 별일 아닌 것처럼 태연해보이는 남편은 나쁜 놈이다. '날랜 낼 쉬망정 에혈질 뻔 하궤라'고 현숙은 큰소리쳤다.
마침 엉덩이 썰매를 탈 수 있는 곳에서 신나게 미끄럼을 타고 내려와 시간을 단축했는데 팔이 부러진 아줌마가 119의 도움으로 받으며 겨우겨우 하산하고 있네. 오른 팔이 아마 부러진 것 같은데 눈이 많아 부러지는 골절사고까지는 나지 않을 것 같아도 미끄러지면 저렇게 부러지기도 하니, 조심조심 무조건 조심. 대원사 갈림길에서 대원사 방면으로 하산한다.
12시 58분, 도동항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길가에 앉아 잠시 쉰다. 대원사 가는 가파른 시멘트 포장길을 내려가는데 어떤 아줌마가 전호나물을 캐고 있네. 지금이 한창 나는 때인가 보다. 지천으로 널려 있어 괜히 욕심나게 하는군.
도동으로 내려오는 찻길은 매우 위험하다. 길은 좁은데 4천대가 넘게 있다는 차들은 좁은 길을 쌩쌩 달려 몹시 불편하기도 하다. 늘 하던 대로 무엇을 먹을까 헤매다가 약수식당에서 맛이 썩 괜찮은 홍합밥과 산채비빔밥, 그리고 하산주로 5시간의 성인봉을 마감한다. 눈이 깊지만 않으면 4시간이면 충분한 산행일 터다.
식당에서 본, 마누라의 설레발이 수준급인 용인 일가족은 아이들이 같이 산을 다녀서 좋겠다 싶었는데 어려보이는 딸의 나이가 28살이라네. 산에서 몇 번 봤는데 아들의 복장이 전혀 등산용이 아니어서 눈에 다 젖은 바지가 날 걱정하게 만들기도 한 사람들이다. 내 등산경력이 얼마나 된다고 이런 걱정을 할까?
배를 타기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도동한 주변의 해안 절벽 아래에 조성된 산책로를 감상한다. 도동항을 기점으로 좌우에 조성된 이 산책로는 전부 다 돌아본다면 서너 시간이 걸린다는데 약간 맛만 봤어도 울릉도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되어있어 이런 방식으로 관광지가 개발되는 건 무척 바람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3시 출발한 배안에서 신나게 자고 버스 타고 횡성휴게소까지 멀뚱멀뚱 오다가 라면 한 그릇 급히 먹고 다시 잠. 집에는 11시 5분께 도착. 이틀 동안 버스 8시간, 배 10시간. 이런 여행은 매우 피곤하다. 그래서 울릉도를 다시 가지는 않을 것 같지만 독도나 해상일주관광이 빠져 좀 아쉬운 건 아쉬운 거라 장담은 못한다. 게다가 궤적기록도 중간에 끊어져 중간에서 성인봉까지 약 2시간이 기록되지 못한 건 정말 억울하다. 그래서 고도표가 나오지 못한다.
도동항 소공원에서 중계소까지는 택시로 약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데 차비는 10,000원 받는다. 걸어가면 40분쯤 걸릴 것 같다. 대원사 쪽이 좀 가깝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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