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장 24km, 15시간의 설악산
설악산을 무섭게만 생각하는 현숙이 혹시 안 간다고 할까봐 행선지 통보를 아꼈다. 2008년 6월 6일 8시 40분, 일단 한계령을 목표로 출발한다. 한계령에서 서북능선을 타고, 예약을 못했지만 중청대피소에서 어떻게든 끼어서라도 숙박한 후 소공원으로 하산, 동명항에서 생선회를 먹고 귀가하는 계획이다. 예상 총 소요시간은 등산에 6시간, 하산에 7시간이다.
강변북로가 잘 뚫려 좋다했더니 구리에서 막히기 시작한다. 양수리의 그림같은 풍경은 좋은데 구리에서 양평까지 정체. 금요일인 6월 6일부터 시작된 3일 연휴를 너무 우습게 보는 내가 이상하다는 현숙. 양평의 교차로에 문제가 많다. 양평을 지나니 길은 휑하니 뚫렸다. 용대리 3거리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때운다. 휴게소 라면이 맛있기는 하지만 우리 식사가 왜 이러냐는 현숙의 지적은 타당하다. 우리보다 1시간 20분이나 먼저 반포에서 출발한 모씨를 참으로 우연히 만난다.
한계령을 포기한다. 여전히 설악산이 무서운 현숙이 주차장 사정도 마땅찮을 한계령휴게소에서 6시간이나 걸어 올라갔다가 잘 데가 없으면 어떡하느냐는 걱정에 동의한다. 백담사 입구에 가니 주차장은 작년 그대로인데 동네가 한산해 보여 오늘은 좀 낫다 했더니 버스대기줄이 길기만 하다. 대기줄은 작년보다 조금 짧은 정도인데도 타는 데까지 1시간이 걸리는구나. 올라가는 데는 15분 걸린다. 작년 가을에 걸어서는 1시간 30분 걸렸으니까 작년처럼 대기줄이 길었을 때는 걷는 게 오히려 나았다. 1,800원이면 매우 비싼 운임이라 이 버스회사는 대박난다 싶은데 실상은 어떨지. . .
3시 40분에 출발한 백담사에서 안내도 상으로 봉정암까지는 5시간 반이다. 그래서 갈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하며 일단 영시암까지 평지 같은 등산로를 성큼성큼 걸어서 안내도보다 35분을 단축했다. 어두워질 초행길을 갈 수 있을까 여전히 걱정했는데 사람들이 많으니 걱정 말라는 등산객들의 격려로 일단 무모한(?) 도전을 해보기로 한다. 수렴동대피소까지도 5분 가량 단축하고 결국 봉정암까지는 중간에 적당히 쉬면서도 4시간만 걸려 안내도보다 1시간 반을 단축했으니 우리가 빠른 것인지 안내도가 개판인지 모를 일이다. 오르면서 보는 설악의 봉우리와 폭포는 가보지 않은 금강산보다 훨씬 좋아 보인다. 깊이 들어갈수록 봉우리와 폭포가 만들어내는 경치는 정말 절경이다. 작년에 겨우 초입에서 북한산보다 훨씬 좋은 설악의 봉우리와 계곡에 감탄했는데 속으로 들어가서 보는 경치는 이제까지 북한산이 가장 좋은 산이라고 큰소리쳤던 나를 좀 부끄럽게 만든다. 그야말로 정저지와. 백담계곡은 더 위로 올라가면서 수렴동, 백운동, 구곡담계곡 등으로 이어지는데 어쩌면 이런 봉우리와 폭포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참으로 점점점이다.
지금까지 약간의 경사를 빼고는 거의 평탄한 산책로 수준이던 등산로가 봉정암 500m를 앞두고 바짝 올라가야 하는 300m의 깔딱고개를 만든다. 백운대 뒷길과 거의 비슷한데 힘은 배나 드는 것 같다. 오랜 시간 힘을 빼서인가? 그러나 등산객 행색이 아닌, 불공드리러 봉정암에 가는 아줌마부대도 잘도 오른다. 설악산의 등산로는 길을 잘 정비해두어 굳이 등산화가 필요없을 정도이긴 하다. 그러니 옛날부터 아줌마들이 별다른 준비 없이 대청봉을 오르내렸지. 7시 44분에 도착한 봉정암의 인파는 필설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 좁은 절터를 가득 메운 등산객과 불교신자들이라니. 취사금지라는 말에 실망하며 일단 미역국밥 한 그릇 얻어먹고 더 올라가 소청산장이나 중청산장에 가봐야 여기보다 덜 할 게 없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숙박료를 2만원이나 낸다. 여기에는 내일 아침 6시에 주는, 역시 미역국일 아침밥값도 포함되어 있다.
수용인원이 1,000명이라는 봉정암에 오늘 모인 인파는 대충 2,100명. 이 인원이 어디서 다 잘 수 있을까 했더니 법회가 끝난 9시 경, 1차로 남자 2-3백명을 종무소 아래 문수전에 수용시킨 뒤에도 ‘지금 하늘을 보고 계신 처사들’에게 어렵사리 구해준 숙소는 50명 정도가 앉아서 새우잠을 자야 하는 작은 방이네. 어쩔 수 없지. 남녀가 따로 새우잠을 자야 하니 현숙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어떤 이들은 아예 방을 포기하고 처마 밑에서 모포 등을 덮고, 또 어떤 이들은 아예 노천에서 침낭을 사용하는군. 피난민 대피소가 있다면 이런 곳일 텐데 그래도 살기가 좀 나아졌다고 도구들은 고급이다. 우리도 6월에 한겨울용 거위털 파카를 입는다.
사람에 질려 그 경치가 좋다는 봉정암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는 현숙. 전적으로 동감이다. 해발 1,100m의 봉정암은 나라 안의 5대 적멸보궁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법당이다. 사리탑을 확인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이 암자를 먹여살리는 대중은 경상도 신자들이라네. 그래서 경상도 출신이 아닌 스님도 경상도 말로 설법을 한다. 이 지독한 문둥이들이 왜 예수사기꾼 명박이는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배낭을 안고 앉았다가, 기둥을 기대고 앉았다가 칼잠을 잤다가 하며 눈을 뜨니 새벽 2시 40분, 잠을 자기는 했군. 하지만 눈이 뜨이자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일단 방을 탈출한다. 현숙이 나오기까지 약 1시간을 서성거리며 그 시간에 법회에 참여한 사람들도 구경하고 피난민 수용소 풍경도 사진에 담는데 이 고급카메라는 지가 초점을 잡지 못하면 셔터를 눌러주지 않는다. 밤새워 기도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비는지 몹시 궁금하다.
예약을 했는데도 이따위 새우잠을 자게 만든다며 봉정암 주지를 원망하는 문둥이 여자신도들 틈에서 역시 새우잠을 자고 초췌한 모습으로 나온 현숙을 보니 좀 미안하다. 이런 경험도 해보면 약이 된다고 현숙이 오히려 위로하는데 사실 이제는 하지 않아도 될 끔찍한 경험을 하는 건 싫다. 소청산장으로 오르는데 랜턴도 없이 어두운 밤길을 가는 등산객 아줌마들도 있네. 날이 희부여해지자 높은 곳이라 이제서야 피기 시작하는 철쭉이 눈에 띈다.
약 40분 후인 4시 44분, 예상과 달리 한산한 산장에 도착한다. 산에서 라면끓이고 밥을 해먹으니 너무 좋다. 물이 산장 안에 없어서 가만히 있기에는 추운 현숙이 150m 아래에 있는 샘터에 가서 물을 떠왔다. 높은 곳에서는 밥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게 정설인데 1,420m의 소청산장에서도 밥만 잘 되고 라면도 잘 끓어 기분이 너무 좋다. 레토르트 제육김치볶음과 라면으로 식사를 거나하게 끝내고는 6시에 출발하여 20분만에 소청봉에 오르니 그 시간에 벌써 하산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단하다.
6시 45분 중청대피소 도착해서 못잔 잠을 조금이라도 보충할 겸, 구름도 걷히기를 기다릴 겸해서 대피소 안에서 잠시 쉬다가 배낭은 대피소 마당에 둔 채 7시 35분에 빤히 보이는 대청봉을 오르는데 현숙의 무릎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해서 몹시 걱정된다. 50분, 해발 1,708m의 대청봉에 올라 구름이 오락가락해서 기막힌 전망을 허락하지 않는 하늘을 탓하며 기념사진 후, 바로 하산한다. 여러 번 다닌 사람들도 기막힌 전망을 보기 쉽지 않다는데 이제 처음 와본 대청봉에서 그런 행운을 기대하는 건 좀 과하다는 생각도 한다. 이제 대청봉에 올랐으니 남은 지리산 천왕봉과 한라산은 언제 가보나?
8시20분 중청대피소를 출발해서 소청봉에 이르니 그때부터 끝이 없이 가파른 하산길은 희운각, 양폭, 비선대까지 이어지는데 이 길을 오른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다. 어떤 녀석이 봉정암 피난민수용소를 피해 중청대피소에 갔더니 예약하고도 오지 않은 등산객이 있어서 나이많은 자기가 좀 편하게 잤노라고 산 아래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친지에게 큰소리를 치며 경치자랑을 함께 하는데 속이 좀 쓰리다.
그 끔찍한 하산길에서 경치는 이제야 제 본모습을 드러내는데 다소 뿌옇기는 하지만 공룡능선, 용아장성릉, 천불동계곡을 만든 신선대 등과 그 봉우리가 만든 깊은 계곡과 폭포 등 설악의 속살은 감탄을 금할 수 없게 한다. 여기서는 굳이 아는 만큼 본다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이런 경치가 있고 그 속을 우리가 등산의 이름으로 파묻힐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다. 그러나 중간 중간에서 쉬며 경치감상을 하긴 했지만 하산길 2km를 내려오는 데 1시간 15분이나 걸렸다는 건 이 길의 경사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가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오르는 데는 얼마나 힘이 들 것인가.
9시 50분, 희운각대피소에 도착해서 이름붙이기 애매한 식사를 한다. 새벽 5시에 아침을 먹었으니 지금은 점심인가? 버너에 어제 먹지 못한 소시지를 굽고 안주하여 역시 마시지 못한 소주를 한 병 마신다. 좋다. 희운각은 1969년 2월 죽음의 계곡에서 눈사태에 희생 당한 젊은이들을 기려 다시는 이런 사고가 나지 않게 하라고 喜雲이라는 호를 가진 이가 사재로 건립했단다. 희운각의 똥왕파리들은 기온이 15도에서 30도 사이에 나타나는데 깨끗한 동네라 아랫동네의 病파리들과는 다르다고 희운각 젊은 관리인이 유머스럽게 설명했지만 파리는 싫다. 주변 계곡에는 계곡 물놀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기서 놀자고 그 힘든 길을 올랐다니 존경스럽다. 설마.
10시 35분, 다시 하산을 시작한다. 양폭대피소까지 2km를 내려오니 11시 40분, 다시 비선대까지 3.5km에 1시 30분. 천당폭포, 양폭, 오련폭포 등 이름은 알면 더 좋지만 몰라도 좋은 절경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그래도 양폭에서부터는 경사가 좀 완만해졌는데 이미 지칠대로 지친 발들은 살려달라고 아우성이고 너무 힘이 들어 눈만 들면 나타나는 절경도 귀찮다. 비선대에서 금강굴을 가려면 600m를 올라야 하는데 밑에서 보기에도 까마득해보이는 600m를 오를 생각은 애초 없었거니와 힘이 다빠진 상태라 다시 오르는 건 생각조차 하기 싫었고 소공원매표소까지 3km 걷는 건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발가락들은 진작부터 아우성이었고 스포츠팬티라고 산 팬티에 쓸린 엉덩이는 쓰라리고. 내가 사준 스포츠 팬티를 입지 않았다고 현숙을 나무랐더니 아프기는 내가 더 하다. 어이없다. 복대 차고 발가락에서 비명을 질러대는 현숙은 그래도 꿋꿋하게 걷는다. 걷지 않으면 어쩔 것이냐, 달리 방법이 없는데. 비선대 선녀봉에는 바위타는 산꾼이 제법 붙어 있네.
새벽 4시에 산행을 시작해서 소공원에 도착하니 오후 2시 25분, 10시간 30분간 걸었으니 우리 산행역사상 이건 대대적으로 경하해야 할 일이지만 어제는 10.6km, 오늘은 13.4km 모두 24km를 15시간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걸었으니 경하고 나발이고 엄두가 나지 않는 게 당연하다.
소공원 매표소에서는 여전히 입장료를 2,500원씩이나 받는구나. 보지도 않을 신흥사 문화재관람료를 입구에서 받는 이 억지가 언제까지 인정되어야 하는가 참 답답하다. 그렇게 걷은 돈으로 이 중들은 쓸데없이 크기만 하고 멋이라곤 전혀 없는 불상을 만든다.
설악산 소공원으로 가려면 바로 앞의 자가용주차장이 매우 협소하여 저 아래 B나 C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버스를 타야 하는데 주차료를 받으면 무료셔틀버스를 운영해야 마땅한 것 아닌가? 주차장까지 버스비가 천원이다. 소공원 쪽에는 뭔가 비린 돈냄새가 난다.
변경된 계획은 목욕하고 동명항에서 생선회 한 접시 한 다음 집에 가는 것이었는데 백담사가는 버스 시간 알아보러 간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백담사 버스는 끊어졌다는 말을 듣고 그냥 원통행 4시 5분 차표를 사서 목욕과 원한 바 없는 생선회는 포기하고 집에 가기로 한다. 승차장에 갔더니 마침 3시 50분 출발하는 미시령 경유 수원행 버스를 태워주길래 통사정으로 백담사에 세웠더니 원래 정차하는 버스네. 나쁜 속초시외버스터미널.
용대리 인제온천에서 목욕하고 7시 출발해서 양평까지 막히지 않고 잘 왔는데 전통적으로 1년 내내 막히는 서울-양평 간 경강국도는 오늘도 그 전통을 꿋꿋이 이어간다. 곤지암 배연정소머리국밥집 옆에 있다는 원조소머리국밥집은 너무 돌아가는 길이라 포기했는데 이렇게 막히는 줄 알았다면 차라리 우회하더라도 원조소머리국밥을 먹는 게 훨씬 나았을 것이다. 이 길이 막힌다는 건 알면서도 여전히 고집하는 이 우둔함. 배도 고프고해서 양평에서 6,000원 짜리 간판을 보고 들어간 전라도밥상집의 12,000원 짜리 짜디짠 전라도 정식으로 저녁. 소주를 마시지 않은 게 좀 신통하네. 손님이 너무 많아 종업원들의 얼굴에는 피곤에 지친 짜증이 가득해서 불쌍하기도 하다. 주인이야 신나겠지. 집에는 11시 40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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