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45 일리예르비 - 키루나 -아비스코 국립공원 178km

나쁜카카오 2018. 11. 10. 22:43

새벽 기온이 영하 2도인데 얼음이 얼지는 않지만 춥고 하늘엔 여전히 구름이 가득하다. 노르웨이의 날씨가 썩 좋지 않다는 예보가 있어 걱정이다.

왜그런지 모르지만 잠이 잘 오지 않아 새벽 3시에 눈을 뜬다. 다시 잘 수 있을까 싶은데 결국 5시 반에 잠을 완전히 깬다. 다행히 오늘 이동거리는 짧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담배를 많이 피우게 되어서 좀 그런데, 어쩔 수 없겠지? 밥을 데우고 김칫국을 끓이고 달걀후라이를 해서 한끼를 해결한다. 점심으로 샌드위치도 준비해서 캠핑장을 떠난 시간이 10시.


여전히 변함없이 숲속 도로를 열심히 달리다가 모자란 잠을 보충하려고 핸들을 넘긴다.

키루나 못 미쳐서 얼음호텔이 있다는 안내판을 보고 혹시나 하고 들어가보니 정말로 얼음호텔이 있네. 그저께 이곳 숙소들을 예약하면서 Jukkasjaervi의 이 Ice hotel이 예약을 받길래 이 여름에 얼음호텔이 어떻게 예약을 받느냐고, 무슨 장난이냐고 코웃음을 쳤는데 진짜로 있네.

호텔 바로 옆에 차를 세우고 혹시 하고 문을 열어보니 열린다. 얼음호텔 홍보를 위해 이번 겨울(?)에 손님받을 준비가 한창인 호텔 방들을 공개하는 것이라 방한복까지 준비를 해두었다. 이방저방을 둘러보면서 거듭되는 감탄을 금할 수는 없지만 너무 춥기도 하겠거니와 가격 또한 만만찮을 테니, 비싼 돈을 내고 고생이나 할 이런 시설에서 한번 자보고 싶다는 생각이 아직은 들지 않는다. 수십 개의 방을 각각 다른 테마로 꾸미고 이름을 붙이는 상상력이 참 부럽다.


옆에는 여름용 숙박시설이 잘 되어 있어 여러 기념품들을 팔고 있다. 이런 걸 보면 스웨덴 관광산업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느낌은 드는데, 왜 북극선으로는 장사를 하지 않을까 매우 궁금하다.


키루나에 들러 노르웨이 홍보책자를 주워온다. 소설에서 봤던 그 키루나에 이렇데 오게 될 줄은 정말 몰랐지. 소설 내용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으니, 집에 돌아가서 그 소설들을 다시 읽어볼까? 소설에서는 순깡촌 키루나 출신이라고 스톡홀름 사람들에게서 주인공이 천대받는데, 와보니 좀 멀긴 하지만 아주 깡촌은 아니네. 스웨덴에서도 수도에서 멀다고 무시하나? 


스웨덴 북부의 중심 도시인 키루나를 우리는 그냥 관광안내서만 챙기고 통과하는데, 여기에도 투어가 많고 관광객도 많다.

아비스코로 향하는 길 중간에서 잠시 쉬면서 오랜만에 눈산도 보고 아침에 만든 오겹살햄 샌드위치로 점심도 맛있게 먹는다. 햄이 맛있다. 내일은 고기를 더 두껍게 썰어달라고 했다.


아비스코 국립공원 입구 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우려고 했는데 너무 비싸다. 17.7이면 노르웨이보다 훨씬 비싼 것이니 기름은 노르웨이에 가서 넣기로 하고 옆 마트에서 저녁거리만 산다. 이 마트에 삼양라면이 있어 신통하다. 앞으로 두고두고 먹게 될 오겹살 햄 넓적한 놈은 내일 저녁에 와서 사기로 했다.

예약확정 메일이 오질 않아서 예약이 되긴 한 건가 긴가민가했는데 리셉션에는  마눌님 이름으로 예약이 잘 되어 있다. 도미토리 침대3개 이틀에 2,175SEK씩이나 받는 이 국립공원의 숙소는 시설이 매우 좋고 인터넷도 참을 만한 수준으로 뜬다. 돈값을 해야지. 도미토리 건물에는 넓직한 취사장 겸 식당과 사우나도 있다. 그외에도 다른 숙박시설이 당연히 많은데 이 정도 시설이라면 굳이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 다른 방을 구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다.

STF회원이 되면 할인되는 시설이나 투어 등이 있는데, 우리가 나중에 다시 스웨덴으로 돌아온다 해도 그 회원권을 쓸 일은 없을 터.

6인용 방인데 당장은 우리밖에 없어서 제발 다른 놈들이 오지 말라고 빈 덕분인지 다른 놈들이 오지는 않았다. 리셉션에서는 예약만 확인하고 몇 명인지는 확인하지 않아 나쁜 마음을 먹거나 부득이한 경우에 인원수를 속일 수도 있겠다 싶다. 오울루의 캠핑장에서도 그랬는데, 모스케네스 캠핑장에서는 텐트 숫자를 꼬박꼬박 세어 돈을 받았다.

외스트레트순드 그 시골집 아낙은 밖에서는 맨발로 다니고 집에서는 슬리퍼를 신는다던데, 여기 숙소에서는 방이 있는 복도에 신발을 신지 못 하게 한다. 그래서 식당에는 맨발이거나 양말만 신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노르웨이와 마찬가지로 스웨덴도 방에 신발을 신고 들어가지는 않는 모양이다.

이 동네는 겨울이 성수기인 동네라 여름에는 손님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데 리셉션 로비에는 트레킹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이동거리가 짧아 짐을 풀고나도 4시도 되지 않으니 시간이 많이 남아 좋다. 여행은 이렇게 여유있게 하는 것이지? 시설 주위 트레일을 한 바퀴 들러보기로 하고 길을 가다보니 당초 계획했던 7번 루트 대신에 시설 주변을 도는 2번 루트를 돌게 된다. 나름 협곡이 멋지고 물줄기가 바위 밑으로 거대한 물길을 만들어 거대한 소리와 함께 쏟아져 내리니, 저 멀리 눈산에서 녹아내린 물들의 힘찬 흐름을 감탄할 밖에 없다.



남녀노소 구분없이 상당수의 관광객 또는 등산객들이 제법 넓은 식당 구석구석에 앉아 저녁을 먹거나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식당. 마트에서 사온 닭으로 닭볶음탕. 마눌님의 닭요리는 참 맛있지. 독한 러시아 맥주를 반 병 넘게 마셨는데 그리 취한 느낌도, 또 피곤한 느낌도 없이 눈만 말똥말똥 해진다.

그래서 백야트레킹을 나서기로 한다. 오늘이야말로 백야트레킹에 가장 적당한 날이다.

한국에서는 친일매국노 자유당이 몰락해 간다는 정말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 하지만 아직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좃선이라는 괴물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으니 절대로 틈을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