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한밤중에 일어나 밖에 나가보니 훤하다. 노르드캅 놓친 것을 너무 억울해 하지 말자.
호텔 식당의 아침은 훌륭하다. 일반적인 호텔의 보통 아침인데 핀란드 사람이 즐겨먹는 청어(? 또는 정어리? sardina) 절임이 있어서 빵과 함께 먹어보니 그리 많이 짜지 않고 맛있다. 러시아에서도 거의 비슷한 걸 먹어보기는 했지. 마눌님은 맛있다며 나중에 통조림을 한 통 산다.
이제 핀란드를 떠난다. 단순한 통과지로만 생각했던 핀란드에 예상 외로 매력이 있어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다시 와볼 수도 있겠다 싶다.
비싼 노르웨이에 대비해 무오니오에서 저녁거리를 미리 준비한 다음,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니 그냥 보통 마을이네. 이 동네 국립공원에 와서 스키타거나 트레킹하는 사람들의 베이스 캠프 역할을 하는 곳 정도이겠지? 눈에 보이는 범위 내에서는 높은 산이 없고 간혹 스키장이 보이기는 하나 산이 매우 낮아보여 스키가 뭔 재미가 있을까 싶네.
국경까지 가는 길은 고도를 조금씩 높이면서 지금까지의 평원에서 벗어나 약간 산지로 들어서는 것 같다. 순록이 두 마리 보였는데 속도가 빨라 그냥 지나쳐서 아깝다.
스웨덴과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쭉 이어지는 길이 국경에 가까워지니 강과 더불어 눈덮인 높은 산도 보이면서 경치가 더욱 좋아진다. 국경 부근에는 거의 낚시를 위한 휴양지 마을이 조성되어 있는 것 같다. 마트도 있고 식당도 있어서 핀란드를 떠나기 전 마지막 식사를 순록고기로 채워본다.
별다른 맛은 없고 그리 거부감이 있는 맛도 아니어서 먹을 수는 있는데 굳이 자주 찾을 맛도 아니네. 옛날 소고기 등을 쉽게 구할 수 없던 산골 사람들이 먹던 고기인데 이제는 지역 특식이 된 셈이지. 찾고찾던 라이터 기름도 하나 산다. 2.99유로. 100ml 정도인데 비싼 거지?
이제 드디어 핀란드를 떠나 노르웨이에 진입한다. 노르웨이가 EU국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는데, 그러면 국경통과 때 세관검사가 당연히 있을 테고, 현숙이 탈린 페리에서 바가지 쓴 화장품의 세금도 환급받을 수 있고, 여권에 노르웨이 입국도장도 찍을 수 있겠다 싶어서 기대에 부풀었다.
그런데 왠걸, 그냥 통과네. 이런 국경 같으니라고. 하도 신통방통하고 허무해서 국경을 다시 돌아와 인증샷을 남긴다. 준비를 많이 했는데 아깝다. 노르웨이가 EU국은 아니지만 쉥겐협약국이라 이렇게 국경없는 나라가 되어버렸네.
국경을 통과하자마자 경치가 확 달라진다. 마눌님의 표현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편안하고 느긋한 여성적인 핀란드에서 갑자기 매우 거칠고 힘찬 남성적인 풍경으로 바뀐 거라네. 기온이 더욱 떨어지고 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잠시 밖에서 사진 두어 장 찍는데도 춥다. 길도 지금까지의 순탄한 거의 직선길에서 구비가 많아져서 운전하는 재미도 느끼게 해준다. 별거 아니다 싶은 이 정도의 경치에도 사람들이 왜 노르웨이 노르웨이 하는 줄 알겠다며 마눌님은 감탄의 연속이다.
트롬쇠까지 약 110km 남았는데 아직 시간도 이르고 더욱이 시간이 1시간 늘어나면서 경치를 즐길 여유가 충분히 생겼다. 그런데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경치가 나온다. 눈덮인 산과 호수가 만들어 내는 절경에 탄성을 거듭하면서 수시로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지 않을 수가 없네. 앞으로도 이런 경치는 계속 보게 되겠지만 처음으로 만나는 노르웨이의 경치는 그동안 어느 정도 아쉬워했던 핀란드를 순식간에 잊게 만든다.
국경 부근에서 600 가깝던 고도가 확 낮아져 2-30 정도 해수면에 가까운 정도인데, 산들은 불쑥불쑥 솟아나 그야말로 평지돌출인데다 고도 덕분인지 그리 높지도 않으면서 아직도 눈에 덮여서 정신을 잃게 할 정도의 경치를 만든다. 게다가 비와 진눈깨비를 오락가락하게 하는 구름이 그리 높지도 않은 산꼭대기에 걸렸다가 사라졌다가 하는 등, 거의 선경이네. 집들마저 너무 예쁘게 주변 경치와 어울려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아마도 Lyngen 피요르드 지역일 이 동네의 경치에 빠져서 나중에는 지친다. 이제는 사진 그만 찍게 하고 트롬쇠에 가서 쉬게 해달라고 경치에 간청할 정도까지 됐다. 나중에 보니 이런 경치는 그저 그런 흔한 노르웨이 풍경인데, 여기까지 오면서 산은 구경도 못 하다가, 노르웨이에 넘어오자마자이런 눈산과 호수가 만드는 경치가 나오니 정신을 빼놓은 것 같다. 뭐든 처음이 좋다.
트롬쇠에 들어오니 트롬쇠이아 섬과 본토를 연결하는 다리가 참 멋지네. 하지만 오늘은 오면서 이미 경치에 지쳐 우선 숙소에서 쉬기로 한다. 숙소는 쉽게 찾는다. 그동안 airbnb 숙소를 찾아다니며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이렇게 쉽게 찾으면 기분이 매우 좋다. 숙소도 2층인데 방이 3개고 시설도 좋다. 앞집이 약간 가리기는 하지만 전망도 좋고 바로 뒷산이 케이블카로 오르는 전망대라 전망대에 오른다면 편하게도 생겼다. 벽난로 같은 것도 있어서 장작을 땔 수 있는데 마눌님이 자꾸 불을 지펴보라고 채근해서 지펴보다가 쏘시개가 없어 실패한다. 내일 저녁에는 성공할 것이다.
무오니오에서 사온 돼지목살 수육을 만들고, 밥을 하려는데 인덕션렌지가 말을 듣지 않는다. 알고보니 이 렌지가 냄비를 가리네. 참 별일이 다 있어서 사람을 열받게 만든다. 어렵사리 밥을 하고 소주 한잔.
식사를 끝내니 어느새 12시다. 바로 앞 트롬쇠의 명소인 성당에서 12시에 음악회를 한다고 해서 가보자고 나서는데 비가 좀 내린다. 맞을 만한 비라 한 10분 걸어가니 들어가기가 어렵네. 사진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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