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에 비가 좀 오더니 아침에는 그치고 해가 났다. 하늘엔 구름이 많지만 출발 전까지는 비가 오지 않겠지.
내 차를 보고 한국에서 직접 끌고 왔냐며 대단하다는 친구가 여기도 있다. 기분이 좋다. 하긴 지금 유럽 대륙에 한국번호판은 오토바이 3대를 빼곤 나 하나겠지?
김치와 돼지고기를 볶고 김을 곁들여 간단하게 아침을 해치운다.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아 텐트걷는 게 편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힘은 든다. 약 50분 정도 걸리는데 다 걷고나니 진이 빠지는 느낌이다.
로포텐을 떠난다. 한 이삼일 정도 여유가 더 있어 제대로 된 로포텐과 트레킹도 즐기면서 다니게 되면 좋겠다. 그래서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1주일 정도의 일정으로 다시 와보기로 한다. 그때는 캠핑카를 빌릴 것이다. 돈 남겨둬서 뭐하겠어? 이럴 때 쓰는 거지.
7시 배는 195분, 11시 배는 240분이 걸린다. 어디 기항을 해서 시간이 많이 걸리나 했는데 그것도 아니다. 이유? 당연히 모르지. 330명 정원인데 오늘은 오는 편도 한가하고 보되가는 이 배도 매우 한산해서 좌석이 널널하게 남는다. 탈린가는 북적거림과는 상당히 대비된다.
점심은 컵라면이나 먹을까 했더니 차고로 가는 문이 잠겨서 할수없이 배의 핫도그로 때운다. 3개를 샀는데 2개 값만 받아서 돈을 벌었다. 다시 가서 정직함을 자랑할 생각도 있었는데 내가 얼쩡거려도 판매원들은 모르는 눈치라 그냥 50크로네를 벌기로 한다.
보되에 가까이 갈수록 뚜렷하게 보이는 이 동네 산들의 위세도 만만찮다. 위도는 로포텐과 거의 같아서 산에는 눈이 가득하다. 역시 노르웨이인가? 보되 앞 바다에는 낮은 섬들이 줄줄이 있어서 뒤편으로 솟아 있는 산들과 어우러져 좋은 경치를 보여준다.
보되를 그냥 통과하고 피요르드를 따라가는 고속도로를 타는데 제한속도 주로 80에 수시로 나타나는 마을과 공사장을 통과하면서 속도가 70, 50 등으로 낮아지는데도 통행료는 꼬박꼬박 챙긴다. 징수 시스템에 등록하기는 했는데 한국 번호판을 얼마나 잘 인식할지는 모른다. 번호판을 바꿔야 하나 싶기도 한데...
파우스케란 동네 싼 주유소에서 기름을 가득 채우고 핸들을 넘긴다. 피요르드가 끝나니 고도를 높이면서 Saltfjellet 머시기 국립공원이 나타난다. 이름들이 하도 길어서 제대로 옮겨적기도 힘들다. 그런데 북극권에서 벗어난다는 휴게소가 나타나네. 6월 3일 로바니에미의 북극선으로 북극권에 들어와서 오늘 벗어나니 북극권에는 6일간 있은 셈이다.
기념품 가게가 있어서 북극권 기념 선물을 좀 산다. 노르웨이는 북극을 잘도 팔아먹는다.
국립공원을 벗어나니 길이 온통 공사 중이라 갈 길이 먼데 속도를 낼 수가 없다. 통행량이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데 확장하느라 이렇게 시간을 잡아먹는구나. 배는 고프고 식당은 나타나지 않는다. 휴게소 비슷한 곳에 들어서서 식당에 가니 먹을 게 정말 없네. 옆에 붙은 마트에서 케익을 만드는 빵을 사서 깔딱요기를 한다.
제법 큰 도시인 모이라나를 지나자 이번에는 길을 아예 통째로 막아서 모조엔까지는 우회하게 하네. 산네스쇠엔으로 가는 길인데 이럴 줄 알았으면 산네스쇠엔에서 잘 걸 그랬다 싶은,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트론헤임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숙소가 있는 토스보튼으로 가는 길은 완전히 산골짜기다. 고도는 300여m인데 그야말로 심심산골에 차는 나 혼자고 비까지 온다.
10시 30분 캠핑장에 도착하니 주인이 반가워해서 나도 많이 반가웠다. 늦은 시간이고 연락도 하지 않아 문이 잠긴 게 아닌가 걱정도 했다. 이 골짜기 오두막에도 손님들이 찾아와서 9개나 있는 오두막을 채워주는구나. 텐트는 몇 동이나 쳤는지 내일 아침에 확인해보자.
보되가는 배가 7시에만 있는 걸로 알고 산골에 박힌 캠핑장 오두막을 예약했는데 11시 배, 그것도 1시간이나 더 걸리는 배를 탈 거라고 미리 알았다면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운전하며 다니지는 않았을 거다. 왜 이리 생각이 짧은지...
노르웨이에는 캠핑장이 정말 많아서 수시로 나타난다. 앞으로는 숙소를 미리 예약하지 말고 저녁시간에 보이는 캠핑장에 들어가 캠핑이든 휘떼든 잡아서 잠을 잘까?
치즈와 하나 남은 토마토 안주로 맥주를 마시며 저녁을 때운다.
아이슬란드에서 매일 텐트를 치고 걷는 게 끔찍하다는 생각이 든다. 샤워시설이 그럭저럭 괜찮긴 하지만 옹색하기는 여전해서 이 옹색함을 벗어나고 싶기는 한데, 아이슬란드에서도 이런 옹색함이 지속될 것이란 생각도 끔찍하고, 결정적으로 혹을 달고 다니는 게 싫다.
그래서 아이슬란드는 포기한다. 보되가는 배 안에서 이 상황을 정리하고 아이슬란드의 비싼 경비로 남는 여정을 편하게 채우는 것도 낫다는 생각으로 아이슬란드 포기의 명분을 더한다.
아이슬란드는 다음에 좀더 편하게, 캠핑카를 하나 빌려서 다니다가 인랜드 들어가는 사나흘만 4륜을 빌려서 다녀오면 될 것이다. 그런데 성수기 아이슬란드 캠핑카는 하루에 4-50만원 선이다. 참으로 징그러운 아이슬란드 물가다. 내 차로 가면 왕복 7박 8일 배를 타야 하는데, 견딜 수 있을까?
만일 다음에 또 내차로 어디든 가게 되면 조그만 태극기를 하나 준비할까 싶기도 하다.
핀란드 말은 좀 딱딱거리는 느낌인데 노르웨이 말은 약간 부드럽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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