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기상. 하늘에 구름이 좀 많더니 동쪽에서 비구름이 몰려와서 보슬비만 뿌리고 지나간다. 바람이 매우 차지만 흩날리는 빗방울 가운데로 햇빛이 들어오는 식당 안은 따뜻하다.
어제 빙하 앞에서 돌을 줍다가 흘렸을 안경이 없으니 메모하기가 참말로 힘들고 눈이 아프네. 취사가 불편하기도 해서 아침은 라면으로 때운다. 노르웨이에서 라면으로 자리를 잡은 리라면. 맛이 괜찮다.
10시 20분 캠핑장을 떠나 아줌마가 적극 추천하는 또 다른 빙하를 보러 깊숙한 산속으로 올라간다. 사람이 자주 다니지 않는 길이라 그런지 꼬불탕 길에 조명시설조차 없는 터널도 지난다. 한 30분 도대체 뭐가 있을까 궁금해하며 가다보니 댐이 보이고 고도가 1,250이다. 댐으로 올라가는 비포장길 양쪽에 눈이 차보다 높은 키로 아직 녹지 않고 있어서 눈벽 사이로 차가 지나가는 장면도 남긴다. 그런데 이 높은 곳에 댐은 왜 만들었을까? 유일한 추측은 풍경을 만들기 위한 것인데, 정말 그럴까? 몹시 궁금하다. 여기말고도 전혀 필요없어 보이는 댐이 참 많다.
댐에 올라서니 Stygge 호수 건너편 저멀리 Austdals 빙하가 보인다. 호수를 건너려면 배를 타야 하지만 투어 예약도 하지 않았고 해서 멀리서 보기만 한다. 바람이 세차고 날이 몹시 추워 오래 있을 수가 없네. 빙하와 호수가 보이는 눈밭에서 좀 놀다가 내려온다. 재밌기는 하지만 빙하 앞까지 갈 수 없으니 일부러 찾아올 만한 거리는 아니다 싶기도 하다.
되돌아와 플롬가는 55번 도로 못 미처 핸들을 넘기고 아침잠을 마저 채운다.
눈을 뜨니,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머시기 교회를 보러간다고 본 도로에서 벗어난 소로로 가고 있네. 도착한 곳은 Solbone이라는 페리선착장 동네. 유네스코 교회는 페리를 타고 건너가야 하는 곳에 있어 포기하고 나온다. 동네는 참 예쁘네. 어디나 다 그렇듯이 동네들은 다 예쁘다.
안경사러 맵스미를 따라 Sogndal에 들어간다. 매우 큰 도시다. 노르웨이 각지에서 보이는 AMFI라는 게 쇼핑몰 체인이구나.
안경점에 가서 돋보기를 달래니 reading glasses란다. 어려운 말을 생각해낼 일이 아니네. 디자인이 멋지고 선글래서까지 붙일 수 있는 놈을 400달래서 그냥 싼 거 75짜리만 산다. 돋보기에 무슨 선글라스가 필요하냐 싶었는데, 내가 햇빛 아래서 책을 읽을 일이 있을까?
플롬가는 페리를 타러 카우팡에르로 간다. 당초 계획은 여기서 구드방에르까지 페리를 타고 송네 피요르드를 감상하는 것이었는데 243번 경관도로를 타려면 짧은 페리를 타야 한다. 부두 도착 직전의 3km터널을 빠져나오니 바로 페리 부두고 마침 배가 들어와서 바로 차를 싣는다. 점심 때가 되어 차안에서 준비해온 샌드위치를 먹다보니 그새 10분만에 건너편에 도착해서는 이어진 터널을 통과, 바로 래르달에 도착해버리네. 페리를 타고 선실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런 경우도 있다.
플롬까지 48km의 243번 경관도로. 초입은 그저 그런 노르웨이의 흔한 풍경이고 억지로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만든 듯한 시설도 있어 그간 높을 대로 높아진 현숙의 눈을 채우지 못 했는데, 잠시 후에 나타난 눈산, 눈밭, 호수 등의 경치가 다시 마눌님의 마음을 돌릴 만큼 환상적이다.
원래 이 도로는 길 양쪽의 차보다 높은 눈이 쌓여 그 사이를 통과하는 것과, 송네 피요르드를 내려다보는 Stegstein 전망대로 유명한 곳인데 눈길은 이미 다 녹아버려서 없다. 아침에 그 빙하에 가지 않았다면 그런 장면을 남길 수 없었을 테니, 그 빙하에 잘 갔다오긴 한 거다.
어쨌든 눈산을 즐기다보니 어느새 길이 다 끝나고 전망대가 불쑥 나타난다. 좋은 장소에 멋진 디자인으로 만들어 송네 피요르드를 거의 볼 수 있게 한 발상이 좋다.
위에서 보니 당초 예정했던 Aurland의 Lunde 캠핑장은 플롬에서 너무 멀다. 다시 맵스미의 도움을 받아 플롬 기차역 바로 옆의 Flam camping을 찾아낸다. 구글은 이런 게 약하네.
시간이 일러서인지 자리는 많다. 전원선 길이가 얼마나 되냐고 물어보고 그 거리에 맞는 자리를 주는 캠핑장은 처음이다. 캠핑장의 위치가 워낙 좋은 탓인지 좀 비싸다. 1박은 435인데 2박은 800으로 깎아주네. 샤워도 20이나 받는다. 나중에 샤워할 때 보니 6분을 주는데 짧지는 않지만 마음이 급하다. 노르웨이는 경치말고는 그다지 비호감인데, 그 놈의 경치 때문에 참 억울하다. 나중에 캠핑카를 가지고 다시 와서 원수를 갚게 될까?
시간이 이르니 오늘 산악열차든 유람선이든 하나를 해결하자 해서 기차를 타기로 한다. 6시 40분 출발까지 1시간 정도 남아 마침 플롬 부두에 바싹 붙어 정박한 초대형 크루즈 유람선도 구경한다. 이 배는 약 10층 정도. 내가 본 것중에 가장 큰 놈이네. 이렇게 큰 배가 이 깊숙한 피요르드 동네 부두에 바로 정박해 사다리로 사람들을 오르내릴 수 있으니, 도대체 이 피요르드는 수심이 얼마나 깊은 거냐? 어제 게이랑에르에서는 그래도 작은 배로 승객을 실어날랐다.
부두와 역은 붙어 있고 매표소 한 곳에서 거의 모든 표를 팔아 편리하기는 하다. 자전거를 타고 내려 오려면 여기서 빌릴 수도 있고 미르달에서 빌릴 수도 있겠다.
온 동네에 중국인 천지다. 중국의 소득 수준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반증이지. 하긴 1%만 관광을 다닌다 해도 1500만명이 다니는 거니, 곳곳에 중국 깃발이 나부끼는 건 어쩔 수 없다.
역시 산악열차는 돈이 아까운 수준이다. 3명이 1,680크로네인데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그 놈을 타지 않을 수도 또 없는 일. 20km 산길을 해발 0에서 고도 886까지 올리며 가는 길이 재밌기는 하지만 터널이 많고 기차 안에서는 기차를 제대로 볼 수 없으니 그냥 그렇다. 가는 길에 보이는 폭포나 산의 경치도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봐버린 우리 눈에는 그냥 흔한 풍경일 뿐이다. 내일 중간 정도 적당한 역까지 타고 올라와서 내려가는 트레킹을 해볼까 싶기도 하지만 어떨지 모르겠다. 이래저래 노르웨이는 밉다.
취사장은 식탁이 없어 불편하다. 우리가 텐트를 치는 동안 마눌님이 송달에서 산 고등어와 오겹살 등을 맛있게 구워둬서 저녁을 해치운다. 한국에서 여자아이들 3명이 캠핑을 와서 나중에 우리 차를 구경하러 오겠다고 그런다. 어디어디서 대중교통으로 왔다네. 이 동네가 인기가 많은 지역이긴 하지.
오늘부터 당분간 금주하기로 했는데 인간이 나 준다고 맥주를 샀네. 할수없이 1잔 정도 마신다. 이래저래 보탬이 안 되는 인간이다.
식사를 마치니 11시. 쉽게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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