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52 트롤베겐 - 트롤스티겐 - 게이랑에르 - 롬 203km

나쁜카카오 2018. 11. 13. 13:01

4시 반에 잠이 깨서 더이상 잇지를 못 하니 오늘 하루 다닐 일이 좀 걱정이 된다. 비는 오지 않는데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트롤의 벽 꼭대기들을 비추는 그림이 멋있다.


맛없는 미역국으로 겨우 아침을 때우고 10시 출발. 이 멋진 경치에 취한 마눌님은 떠나기가 몹시 아쉽단다. 여유가 있으면 하루쯤 더 묵으면서 멍때리고 있어도 좋겠다네. 어제 봐둔 비지터 센터에 들렀더니 이건 안내소가 아니라 식당이고 기념품 가게에 불과하다. 마침 몰아닥친 대형버스 관광객만 구경한 셈이다.



트롤베겐이 너무 좋아서 기념될 만한 마그넷을 하나 샀는데 마그넷의 그림이 제대로 나오질 않네. 산이 너무 커서 제대로 담을 수가 없는 모양이다.

트롤스티겐 캠핑장을 지나 절벽길을 올라간다. 사람이 많이 없어 보인 건 잠시의 착각. 여기는 절벽길을 올라가기 전에도 두어 곳, 폭포 앞에도 하나, 올라가서는 산책로와 등산로까지 주차할 곳을 많이 만들어두어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뒀다. 왠일로 노르웨이가 이렇게 친절하나 싶다. 물론 등산로는 아래부터 시작되기도 하고, 실제 그 길을 개와 같이 오르는 사람도 있다.

절벽길은 좀 무서워서 차를 절벽 안쪽으로 붙이고 올라야 할 정도였고, 꼭대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에는 할말을 잊는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와 전망대, 마당, 가게, 식당이 북적거린다. 이런 경치가 있고, 그 경치를 보라고 깍아지른 절벽에 길을 만들고, 사람들은 경치에 취해 넋을 놓고... 바람이 많이 불어 추워서 패딩을 겹쳤다.












반대편 내려가는 길은 편하다. 넓은 U자 계곡을 편하게 내려가다가 일찍 고픈 배를 시냇물이 콸콸 흐르는 전망좋은 주차장에서 샌드위치로 채운다. 나흘째 샌드위치 점심인데 날마다 조금씩 달라져서 점점 먹을 만 해지기는 하지만 좀 지겹다.

중간에 잠을 좀 채우고 발달렌 동네를 지나 페리 항구에 오니 배가 막 떠난다. 다음 배를 기다리며 동네 사람들이 낚시하는 모습을 재밌게 본다. 여기 사람들은 낚시를 그리 많이 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 낚시 가게가 여기저기 많은 걸 보면 우리 눈에만 띄지 않을 뿐이겠지? 고기를 잡고는 어쩔 줄 몰라하는 아줌마가 재밌네. 잡은 고기는 바로 방생. 생선을 먹기는 하는데 자기가 잡은 생선은 먹지 않나 보다. 쉼터에서 좀 쉬면서 잠을 자고 6월 23일에나 문을 여는 비지터 센터에 들리지 않았다면 1시간은 줄일 수 있었겠다 싶다.


여기서 Eidsdal까지 20분마다 왕복하는 배는 건너는 데 10분 조금더 걸린다. 마을을 벗어나니 바로 산으로 올라간다. 산 위에는 또 호수를 낀 멋진 전망대가 나타난다. 경치만은 정말 부러운 나라다. 

지금까지 날씨는 괜찮았는데 게이랑에르 절벽길 내려가기 전의 쉼터에서 보니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의 하늘에 시커먼 구름이 가득해 좀 우려된다. 높은 산에 오르는데 구름이 끼어 아무 것도 볼 수 없으면 얼마나 허망할까?

게이랑에르 절벽길을 내려가는 길에 위치한 전망대에서 게이랑에르 마을과 피요르드 맛을 본다. 초대형 크루선유람선이 항구 바로 앞에 정박할 만큼 수심이 깊다. 꼬불절벽길을 내려가 마을에 들어서니 3척이나 있는 대형 크루즈 유람선에서 내린 관광객들이 바글바글한다.

마침 영국에서 이곳까지 유람선을 타고온 한국인 부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내 여행 자랑을 할 기회가 있어서 좋았다. 우리는 피요르드 대신 전망대를 택했으니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영국 등에서 크루즈로 올 수도 있겠다. 게이랑에르 기념으로 우리도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관광객 모드로 변신한다. 3개 111크로네.







마눌님이 열심히 찾아낸 1,540m의 달사니바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도 역시 꼬불길. 크루즈에서 이 높은 전망대까지 패키지로 포함시켜서 대형 관광버스가 줄을 잇고 중간 전망대부터 붐비는 관광객들로 정신이 없다. 


중간 1,030m에는 눈덮인 산으로 둘러싸인 호수가 있어서 또 혼을 뺀다. 전형적인 풍경일 수도 있는데 이런 풍경이 전형적인 풍경이 되는 건 정말 배아픈 일이다. 그런데 더 배아프게도 정상 도로 입구에 매표소가 있다. 오토바이까지 일반 차량과 같이 140크로네나 받는다. 이렇게 돈을 좋아하는 노르웨이가 그저께 페리에서 돈을 받지 않은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사의다.

정상에 오르니 저 아래 까마득하게 보이는 게이랑에르가 그림이다. 사방을 빙 둘러 완전히 눈산이라 여기는 여름이 오지 않는 곳이네. 우려했던 구름들이 낮게 내려오지 않고 간혹 눈발만 한 두개 날려주는 덕분에 구경을 잘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제는 Nigards 빙하를 찾아가야지. 호수에서 갈라지는 길은 매우 평탄하다. 좀더 내려가 고도 900부근부터는 아래쪽에서도 자주 없는 시속 90의 시원한 도로가 나타난다. 이 고도에 이렇게 확 트인 벌판이 있다니...


열심히 오늘 숙소를 찾아보는데 마땅한 놈이 없다. 그래서 마눌님이 갑자기 몹시 피곤해졌나 보다. 빙하를 포기하고 아무 데나 가까운 곳에서 쉬자 해서 Lom이란 동네 호텔의 비싼 휘떼에 묵기로 한다. 방 2개에 주방과 화장실만 있고 린넨도, 와이파이도 없는 주제에 1,090크로네다. 바로 앞으로는 아마도 국립공원일 산을 낀 호수와 마을이 펼쳐져 전망은 기막히다. 캠핑을 하지 않으니 비용이 많이 든다.

마트에서 무슨 고기인지 모르고 사와서 1시간 여 푹 고은 고기는 돼지고기처럼 생겼지만 소고기 맛이 난다. 담금소주 병을 비운다. 이제는 술을 줄여야지. 비싼 노르웨이 술을 마시기는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