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푹 자고 일어나니 해가 눈부시고 바람은 살랑거려서 기분이 좋다. 북극권에서 멀리 떨어져서인지 지난 밤에 마눌님이 야경을 찍었는데 하지인데도 완전한 백야는 아니네.
모처럼 혈당을 재니 169다. 그간 열심히 술을 마신 덕분이겠지? 오늘 저녁에 마지막 소주를 비우고 나면 당분간 금주다.
Lom 사람들은 산 중턱에 살고 아래는 호텔과 상점들이 모여 그야말로 downtown을 형성한 곳이다. 국립공원을 낀 5개 마을 중의 하나라는데 집과 각종 건물들이 검은 색이라 마을 분위기가 여타 마을과는 매우 다르다.
어제 삶은 고기국물로 국을 끓였는데 맛이 이상하다. 10시 숙소를 나와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로만 지었다는 이 동네 교회를 잠깐 들리고 유명하다는 빵집에서 빵도 사본다. 대단한 규모만큼 빵이 맛있다. 매트리스를 사려고 알아보니 오슬로에서 만 8천원 정도의 물건을 600크로네나 달란다. 안 산다.
여기서 플롬으로 가는 도로는 55번 경관도로다. 출발하자마자 졸려서 핸들을 넘기고 잘 자는데 그새 높이 올라와 사방에 눈산이 가득하다. Jotunheimen 국립공원인데 스키를 타는 사람들이 보인다. 지도를 보니 Summer ski center란다. 이 여름에 눈이 가득한 산에서 스키를 탄다니, 이 노르웨이를 어쩌면 좋으냐... 센터의 원목 인테리어도 훌륭하고 편히 쉬게 되어 있는 시설도 좋아보인다. 젊은 애들이 많은데 이 나라에서도 여름에 여기까지 와서 스키를 즐길 정도면 좀 사는 집안 애들이겠다.
이 높고 눈이 잔뜩 쌓인 곳에서도 염소들은 잘도 산다. 내려가는 길 중간에 차들이 모여 있어 뭐하나 가보니 공사장이다. 헬리콥터가 막 내려오는 중인데 내 차가 다가가니 물러나라는 손짓이 다급하다. 괜히 공사현장에 가서 민폐를 끼친 셈이 됐지?
내려가는 길 중간 쉼터에서 저멀리 산허리를 감아돌면서 오르는 길도 찍고, 반대편 펑퍼짐하게 내려오는 골짜기도 찍어본다. 밋밋한 산등성이도 곳곳에 남아 있는 눈이 이국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지금 이 시기가 아니면 보기 어려운 풍경일 테니 내가 날짜는 잘 잡았다. 아이슬란드에서도 이런 풍경을 기대하고 갈 예정이었는데, 로포텐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아이슬란드를 대체할 만한 풍경들을 질리게 봐왔으니 아이슬란드 포기가 전혀 아쉽지 않다. 그래도 다음에 가봐야지. 차를 가지고 배를 타자면 마눌님이 질색할 텐데, 그건 그때가서 보자.
1300여 고산에서 내려오면 바로 해발 0의 피요르드다. 송네 피요르드의 끝지점인 Skjoldal 마을 쉼터에서 잠시 놀며 이번에는 스웨덴 관광객에게 내 여행을 자랑한다. 재밌다. 한국 번호판을 달고 다니는 걸 적극적으로 권장해볼까?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있으면 그때는 태극기를 하나 준비하면 어떨까 싶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일단 니가르스 빙하에 가보기로 하고 길을 떠나 잘 가는데 터널공사라고 40분을 기다려야 한단다. 돌아가서 사진도 다시 찍고 점심도 먹고는 호텔에서 볼일도 보는 등 느긋하게 보내다 오니 5분 지났는데 또 55분을 기다려야 한단다. 젠장이다. 플롬는 포기하고 니가르스 빙하 부근의 캠핑장에서 1박하기로 한다.
평가가 좋은 요스테달 캠핑장 휘떼를 잡는다. 예쁘장한 아줌마가 샤워 토큰 3개를 공짜로 준다. 좋은 건 거기까지.
660크로네 방인데 2층침대 2개에 간략한 주방시설. 기막히게 주방에 물이 없다. 화장실은 당연히 없지.
시간이 일러 지척의 니가르스 빙하에 먼저 다녀오기로 한다. 이 빙하는 요스테달 빙하 국립공원에 있는 여러 빙하 중의 하나다. 비지터 센터 지나 도로에 들어가니 여기도 돈을 받는다. 잘 한다. 3km 올라가는데 영수증은 60크로네, 카드 청구는 50만 되었다. 몹시 신통하다. 주차장에 가니 빙하 입구까지 호수를 건너는 배가 있다. 이것도 1인당 60크로네. 당연히 걸어간다. 약 30분 정도.
넓직하고 커다란 바위들이 길을 잘 만든 빙하 앞에 가니 빙하에서 녹은 물이 무서울 정도로 우렁차게 흘러내린다. 빠지면 잘 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 속으로 파란 색이 기막힌 빙하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한참을 논다. 빙하를 보는 게 지치지도 않고 재밌네. 빙하의 이 속깊은 파란 색을 표현할 마땅한 말이 없나? 당연히 빙하 위에는 올라가지 않는다. 빙하 트레킹 투어가 있는데 오늘은 시간이 늦었고, 내일은 시간이 없으니 아깝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밧줄에 매달려 빙하를 걷다가 올라보다가 하는 재미도 쏠쏠할 텐데 이런저런, 주로 시간을 핑계로 생략하게 되어 좀 아깝기는 하다. 캐나다 록키의 빙하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줄어들어 짧아지는데 노르웨이 빙하들에는 그런 슬픈 조짐이 없어 더욱 좋다.
시간이 있으면 주차장까지도 걸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역시 시간이 좋은 핑계다.
빙하 구경을 마치고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온다.
숙소에서 어떻게 식사를 준비해볼까 하다가 불편해서 도저히 안 되겠다. 공동 취사장 겸 식당에서 하기로 하고 끓이던 고기냄비를 통째로 들고간다. 취사장도 좋고 식당도 깨끗하고 큰 유리로 트인 전망도 좋다. 밖에서 식사할 수 있도록 탁자도 많이 뒀는데, 그건 햇빛을 좋아하고 추위를 타지 않는 이 동네사람들 몫이다. 저녁을 맛있게 잘 먹고 잘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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