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82 비스뷔 - 포뢰 왕복 200km

나쁜카카오 2018. 11. 23. 14:01

이슬이 잔뜩 내려서 텐트가 많이 젖었다. 누룽지를 끓이고 김치 한 봉을 꺼내 아침. 점심 먹을 햄버거도 준비해서 10시에 텐트를 나선다. 리셉션에 가서 샤워카드를 물어보니 몇 명이든, 몇 박이든 관계없이 무조건 예약당 5분짜리 카드 2장이고 모자라면 사야 한단다. 추가로 1박을 더해도 카드를 더 주지 않는다네. 이런 개같은 캠핑장에 있나. 이것들이 돈에 환장을 해도 정도껏해야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항의를 해봐도 직원 놈 하는 말이 자기가 만든 제도가 아니라네. 정말 스웨덴 넘들은 나쁜 놈들이다. 어제 캠핑장이 다소 비싸긴 해도 지내기는 편했는데, 차라리 처음부터 돈을 더 받고 편의를 제공할 일이지, 이러는 건 아니다.

불쾌하고 황당한 마음을 가득 안고  포뢰섬을 향해 가는 도중에 성 안을 차로 반 바퀴 정도 돌아본다. 길은 옛길 자갈길이라 불편한데 집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골목을 누비며 돌아나와 포뢰가는 길은 편하다. 차들이 많이 간다. 한참 달리다 졸려서 핸들을 넘기고 쉬다가 눈을 뜨니 페리 선착장이다. 섬까지 건너가는 페리가 무료라 돈 좋아하는 이 스웨덴 놈들이 웬일이야 싶지만 좋긴 하네.


포뢰섬은 고틀란드 본섬과는 분위기가 판이하다. 돌담과 나무 울타리, 낮은 나무 등으로 마치 제주도 같다는 마눌님의 표현이 딱 맞다. 다른 차들은 직진을 하는데 우리가 가려는 길은 좌회전이라 좀 의아해 하면서 길을 따라가니 저멀리 차들이 많이 주차한 곳이 나온다. 대형버스도 있어서 우리 목적지가 맞나 한다. 

raukar라고 불리는 기묘한 바위 덩어리가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 Langhammars가 동네 이름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기묘한 바위 동네로는 가장 규모가 커서 유명한 곳이다.

내리니 사방이 온통 흰색이라 햇빛이 더욱 눈부시고 뜨겁다. 언덕 위에 올라서니 세상에 또 별천지가 펼쳐지네.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바닷가에 우뚝우뚝 서서 절경을 이룬다. 카파도키아 느낌인데 바위들의 모양새는 당연히 전혀 다르지. 열심히 사진을 찍고, 지금까지 봐온 발트해 중에서 가장 깨끗해 보이는 바닷물에 발도 담근다. 물이 깨끗하니 발이 절로 물속에 들어간다. 1시간 여 시간을 보내다가 이곳을 떠난다. 여기만 보고 섬을 떠나기는 섭섭하지.


돌아나오는 길에 명승 표시가 있고 길도 잘 닦여서 들어가본다. 한참을 들어가니 옛 어촌이 나오는데 길은 더 이어져서 계속 따라가니 규모는 좀 작지만 비슷한 바위가 있는 해변이 나온다.  Digertuvud. 좌우지간 이름들은 정말 발음하기 어렵다.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준비해간 햄버거를 먹으며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며 쉬니 좋다. 파도에 일렁이는 해초 덕분에 바다 색깔이 정말 환상적인데 슬프게도 내 카메라들은 그 색깔을 잡아내지 못 하네. 징그럽다.

나오는 길에 아까 본 어촌 마을에 들어가 본다. 10채 정도의 집이 나란히 서 있고 바닷가에는 배도 몇 척 놓였는데 전시용인 듯. 집들은 전부 자물쇠가 잠기고 창마다 커튼이 가려져 내부를 볼 수가 없다. 기왕 보라고 안내를 했으면 한 채 정도는 개방하는 게 관광객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가 아닌가? 그냥 껍데기만 보고 나오려니 매우 섭섭하고 야속하다.


비스뷔 소개 책자에 하얀 모래밭이 있어서 찾아가기로 한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어딘지 모르고 가긴 하는데, 또 명승표시가 나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길을 따라 가는데 도저히 바닷가 모래밭이 나올 지형이 아니다. 지도를 봐도 바다는 반대 쪽이라 돌아나오니 아까 본 적이 있는 바다라 그냥 주차장에 가서 차를 뺀다. 

길을 따라 가다 차들이 많이 주차된 곳에 가보니 그냥 해수욕장이다. 동네 사람들이 넓은 백사장에서 아이들과 즐겁게 해수욕을 하며 노는 모습이 보기 좋다. 물이 얕아서 까마득히 보이는 곳도 허리까지만 물이 찬다. 재밌다.

한참을 보다 돌아나와 길 끝이 어딘가 가보자 했는데 그냥 돌아나오는 길이다. 할수없이 비스뷔로 돌아가기로 하고, 그래도 섭섭하니 이 동네에서 여생을 마친 잉그마르 베르히만(Bergman) 센터에 가본다. 

베르히만 감독이라고 말만 들었지 사실은 그의 작품은 어쩌면 하나도 보지 못 한 게 아닌가 싶다. 역시 그렇다. 단지 한국 감독과 결혼한 탕웨이인가 하는  중국 여배우의 결혼장소라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는, 무식한 우리. 잠깐 둘러보고 그냥 나온다. 입장료도 받지 않는 이런 곳을 찾아오는 사람이 많나 보다. 식당도 있고 와이파이도 공짜다.


캠핑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성 내부로 들어가 구시가를 구경해본다. 길이 미로같아서 나오는 길을 찾지 못 해 한참을 빙빙 돌다가 겨우 항구로 나가는 길을 찾았는데, 거기서 캠핑장으로 오는 길을 다시 찾지 못 한다. 항구로 간 김에 어제 그 클럽 부근에 가니 오늘은 화이트 데이라고 입장하는 모든 사람이 흰 옷을 입어야 하는 모양이다. 거리가 온통 흰 옷 일색이라 참 신통하다. 클럽 하나가 청춘들의 옷을 한 색깔로 통일시키다니 참 대단하네. 토요일인가에는 분홍색이라니 내일은 참 볼 만 하겠는데 우리가 떠나는 날이라 볼 수는 없겠다.

오는 길에 들린 마트에서 대구 필레를 사서 모처럼 생선조림으로 저녁을 잘 먹는다. 얼마 남지 않은 데킬라를 비우자 했는데 한 잔도 많은 것 같아 술은 적당한 수준에서 끝낸다.

오늘 노을도 어제 수준인데, 바다에 비치는 해가 막대기 모양이라 이채롭다. 이런 막대기를 전에는 본 적이 없었던가?

비닐봉지를 가져가서 돌을 좀 주워본다. 집에서 이 돌들을 잘 진열할 수 있을까? 일찍 10시에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