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106 멜리토폴 - 국경 -월경 포기 - 드네프르 582km

나쁜카카오 2018. 11. 30. 20:17

7시에 아침을 먹고도 출발은 8시다. 뭣이 이리 오래 걸리는지... 오늘은 출발 이후에 바로 핸들을 넘기고 좀 비몽사몽한다.


우크라이나, 남한 땅의 6배 정도되는 영토의 대부분이 비옥한 흑토 평원인데 작물은 해바라기와 옥수수가 거의 전부인 것 같다. 어딜 가나 풍경은 똑 같다. 마리우폴로 가는데 경찰이 세워 검문을 한다. 뭘 그리도 보고 싶은지 별짓를 다한다고 생각하며 검문에 응한다. 경찰들은 검문이 끝나면 잘 가라고 인사는 잘 하네. 바닷가에 가서 해수욕하는 사람들도 찍고 흑해에 발을 담근 내 모습도 다시 찍는다. 


공장 매연이 하늘을 가리는 마리우폴을 지나 국경 쪽으로 가는데 이번에는 총을 들고 무장한 군인들이 검문한다. 뭔가 좀 심상찮기는 하다. 검문이 끝나고 보내면서 군인 한 놈이 good luck이란다. 그런 말을 왜 하나 하며 길을 가는데 또 검문이다. 이번에는 짐을 다 내리라 하고 꼼꼼하게 보네. 그러더니 우리가 가려는 노보아 머시기 쪽은 러시아와 전쟁 때문에 길이 막혀서 갈 수가 없단다. 보니 바리케이드로 길을 막기는 했네. 도네츠크로 가면 혹시 열린 국경이 있을지도 모른다 해서 일단 마리우폴로 돌아와 도네츠크로 가는 길을 찾기로 한다. 

도네츠크로 올라가는데 또 검문이다. 젊은 경찰 하나가 친절하게 Xapkib(구글에는 카리프라 적혔는데 하리오프라고 발음한다)에 가면 열린 국경이 있으니 거기로 가라며 와이파이를 열어 경로도 잡게 해준다. 러시아와 크림반도 때문에 이런 정도까지 왔냐고 물어보니, 그것말고도 쌓인 게 많단다. 소련 시절부터 당하고 살았을 테니 쌓인 게 한둘은 아닐 것이다.

도네츠크 가는 길은 고속도로 비슷해서 속도도 난다. 물론 곳곳의 도로 위 구멍은 빠지지 않지. 열심히 가니 또 검문이다. 도네츠크로 가는 길은 전체가 막혀서 갈 수가 없단다. 이런 젠장. 도대체 어떻게 가야 한다는 말인가. 

며칠 전에 키예프(키이브라 발음하는 것 같다)에서 모스크바로 갔다는 블로거가 있어 일단 키예프로 가보기로 한다. 차를 돌려 키예프로 가는 도중에 고픈 배도 채우고 인터넷도 연결할 겸 조그만 마을의 식당에 들어간다. 정말 맛없는 햄버거와 콜라로 먹으면서 앞으로 갈길을 의논하다가 러시아가는 걸 포기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를 꺼낸다.

바로 옆 경찰서에 가서 혹시 열린 국경이 어디 있는지, 서로 잘 통하지 않는 영어로 열심히 찾다가, 조금 전의 친절한 젊은 경찰이 알려준 하리오프가 유일하게 열린 길이라고 알려준다. 그래서 드네프르를 거쳐 하리오프에 가기로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정말 싫고 러시아로 어떻게 넘어간다 해도 이렇게 되면 29일 배는 탈 수도 없어 1주일을 연장해야 하는데 빨리 집에 가고 싶어진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니 독일로 돌아가서 차는 배로 보내고 비행기로 돌아가는 데 동의하네.

그래도 경찰서에서 알아본 것도 있고 처음에 이런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내 잘못도 있다 하고 일단 하리오프까지 가보기로 한다. 

또 검문이다. 이번에는 군인들이 좀 여유가 있어보인다. 국경에서 많이 떨어져서 그런가? 노병 하나가 아는 척 하길래 정말 전쟁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네. 어디를 찾아봐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지금 전쟁 직전이라는 뉴스는 없는데 어쩌면 우크라이나 정부가 이런 긴장감을 통치수단으로 이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대부분의 국경이 닫혔고 전쟁 운운하는 두 나라 사이 거의 유일하게 열린 국경을 통과하겠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냐고 친구를 설득한다. 

하리오프 가는 길을 포기하고 드네프르로 방향을 잡는다. 기름이 달랑거리는데 현금만 받는 주유소가 많아 속을 좀 졸인다. 기름 때문에 속썩지 말자고 하면서도 주유소가 많이 보여서 방심했는데 이건 현금이 하나도 없는 탓이기도 하다. 점심 때 카드로 계산할 걸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드네프르 시내로 들어서니 맥도날드가 보인다. 인터넷이 전혀 안되는 현 상황에서는 맥도날드가 최고다. 호텔을 찾아보니 가까운 곳에 호텔이 많다. 23,000원에 아침주는 곳을 찾아 짐을 푼다. 드네프르 시내 구석에 자리잡은 호텔인데 매우 허름하고 프런트도 없이 창구 하나만 달랑 있는 이 호텔이 별3개라네. 부킹닷컴의 별 표시를 별로 믿을 게 못 되네. 더럽게 생긴 만큼 불친절한 할매 하나가 앉아 접수를 받고 방을 배정한다. 6층을 통째로 임대해 호텔을 하는 것 같은데 엘리베이터 하나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블라디보스톡 생각이 난다.

식당을 찾아 밖에 나가니 가까운 곳에 마트가 있다. 여기 길에도 과일 장수가 멜론, 수박 등을 파는데 이 채소장수는 밤에 장사를 주로 하나보다. 마트에 가서 조리된 샐러드, 닭다리, 빵과 맥주 등을 사와 호텔 방에서 러시아 포기 기념파티 겸 저녁을 먹는다. 수박도 하나 샀는데 5kg정도 되는 놈이 27흐리브나, 1100원 정도다. 속이 좀 이상하기는 해도 매우 달다. 시원하게 해두면 정말 맛있겠다. 2리터 맥주는 44. 이 물가싼 천국을 떠나 술값만 싼 독일로 가려니 가슴이 좀 아프긴 하다.

드네프르가 왜 익숙한가 했더니 2차대전 때 독소 간의 치열한 전쟁터였다는구나. 아마 영화를 통해 익숙해진 동네일 터다. 블라디보스톡 호스텔도 취소하고, 페리 등등도 모두 취소메일을 보낸다. 빨리 집에 가게 되니 좋다. 코스를 보니 폴란드를 통하는 게 가장 편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