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103 베오그라드 - 부쿠레쉬티 606km

나쁜카카오 2018. 11. 30. 11:52

아침 바람은 선선한데 한낮은 또 뜨겁겠지. 어제 사둔 생선으로 찌개를 만들어 본다. 고추장과 다시다만으로 제법 맛이 나긴 하지만 그저 그렇다. 떡국은 다음에 해먹기로 하는데, 앞으로 가능하면 아침을 주는 숙소를 잡을 예정이라 언제 기회가 날지는 모른다. 식사를 끝내고 준비를 서두르니 출발은 기록적인 8시 40분이다. 주인 부부가 나와 잘 가라고 인사를 하네.

어제 지났던 시장길을 다시 가면서 마트에서 통조림을 사기로 했던 게 기억이 난다. 지나버렸지. 고속도로에 올라서니 길이 매우 좋다. 그저께 오는 길은 왜 그리 개판이었는지... 졸음이 일찍 와서 핸들을 넘기고 잔다. 잠에서 깨니 여전히 고속도로. 어제 앞 유리를 잘 씻어서 시야가 깨끗하네. 길이 갈라지는데 고속도로는 불가리아를 통과하는 것 같아 고속도로를 벗어난다. 구글도 벗어나라 하네. 산이 여전히 없어 온통 지평선인 평평한 땅 국도는 시골마을들을 지난다. 예전 유고슬라비아 시절에는 잘 살았을 텐데 내전을 거치며 나라가 갈라지고서는 경제가 많이 어려운 모양이다. 어쨌거나 갈 길은 먼데 길이 시원하게 뚫리지 않아 좀 답답은 하네.


한참을 가다보니 호수같은 물이 나오고 낚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호수가 참 크다 하고는 지도를 보니 도나우 강이네. 도나우강은 알프스에서 발원해 오스트리아, 체코와 항가리 국경을 이루다가 부다페스트를 지나 를 지나고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와 국경을 이룬다. 베오그라드를 지나 이제는 루마니아와 세르비아 국경을 이루다가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국경을 만든 후 루마니아로 들어와 우크라니아 국경 근처에서 거대한 삼각주를 이루며 흑해로 빠지는 도나우강. 그래서 나라마다 다른 이름을 가지기도 한다. 어제 베오그라드에서 몇 번을 건너다녔던 사바강은 도나우강의 지류네.

루마니아와 국경 부근의 도나우강은 양쪽 산이 만드는 협곡을 지나면서 멋진 경치를 만들기도 한다. 그 고개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찾다가 아침에 벽장에서 보면서 나중에 가져가야지 하고는 그냥 두고온 게 생각나네. 뭐든지 생각했을 때 미루지 말고 바로 챙기거나 눈에 보이는 곳에 나둬야 하는데 그러지 않으면 이런 일이 생긴다. 최근들어 카메라가 점점 무거워지는 데다 사진도 시원찮고, 또 최근 며칠은 카메라를 쓰지 않기도 했고 그전 사진들은 다 옮겨두기도 해서 별로 아깝지는 않다. 그래도 그냥 버릴 수는 없어서 방법을 찾아보니 부킹닷컴에 신고하면 되네. 일단 요청을 해두고 세르비아를 나간다. 협곡을 이루는 절벽길을 따라가느라 길고 짧은 터널이 무쟈게 많다.


두 나라 세관은 도나우 강을 건너는 다리를 두고 양쪽에 있다. 루마니아 세관원이 이 차는 처음 보는 거라며 신기해 한다. 보험을 확인하고는 별말없이 보낸다. 짐 검사하는 친구도 뭐라 하더니 내가 못 알아들으니까 그냥 가란다. 세관을 빠져나와 루마니아 입국 기념사진을 찍고 바로 옆, 마치 망해서 문닫은 것처럼 보이는 주유소에서 기름도 채운다. 리터에 5.79레이, 1600원 꼴이니 조금은 싼 편이지만 루마니아의 생활 수준에 비추면 비싼 것일 테다. 


점심은 이 동네의 흔한, 망한 주유소 그늘에서 준비해온 달걀후라이 샌드위치. 처녀 둘이 마주 보고 앉아 있어서 처음엔 좀 쑥스러웠다. 새끼를 낳았는지 젖이 늘어지고 먹지 못해 배는 홀쭉한 개 한 마리가 침을 흘리며 보고 있어서 어제 주인 여자가 준 빵을 줬더니 허겁지겁 먹어치운다. 부족한 듯이 떠나지 않고 계속 침을 흘리고 있어서 달걀이 약간 묻은 빵을 주니 달걀이 묻은 쪽만 먹고 나머지는 안 먹는다. 이런 녀석이 있나. 나중에 남은 우유를 부어줬더니 그제서야 다 해치운다. 사람이든 개든 배가 부르면 코가 높아지게 되어 있다.


아직 마차가 다니는 루마니아 시골. 도시에만 들어오면 주행질서가 개판이라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해발 200 정도에서 끝없는 지평선만 보이는 대평원이다. 꽃은 다 지고(자세히 보니 아직 꽃이 있다. 해바라기가 해만 따라다니는 게 아니라네) 고개숙인 해바라기 밭이 장관인데 꽃이 한창일 때는 정말 황홀하겠다. 거기에 또 옥수수. 해바라기가 옥수수보다 키가 작다. 구글이 지도를 잡지 못 하는 사이에 국도 쪽(다른 길도 고속도로가 아닐 수도 있겠다)이라 시간이 많이 걸리네.

피테쉬티 부근에서는 그간 유럽에서 잘 보이지 않던 공장지대도 본다. 피테쉬티를 벗어나면서 부쿠레쉬티까지는 130의 고속도로가 계속 이어져 그나마 시간을 좀 줄인다.


부쿠레쉬티 시내에 들어오니 나가는 차들의 정체가 엄청나다. 길은 2차선밖에 되지 않는데 차들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겠고, 사고일 수도 있겠는데 어쨌든 정체가 어마어마한 정도다. 숙소로 가는 길도 뻥 뚫린 길이 아니어서 좀 복잡하다.

맵스미의 도움으로 숙소를 잘 찾는다. 주인 마리오가 반갑게 맞지만, 숙박비는 카드도 안 되고 오직 현금. 그래도 유로는받아서 다행이다. 이제 유로는 동전 4.몇 유로만 남았다. 짐을 풀고 저녁을 해결해야 하는데 마리오가 피자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 하고 수퍼에서 냉동피자(13.6레이, 3800원)등을 산다. 마침 1리터 병맥주(3.9레이, 1080원)가 있어서 집에 가져가려고 사둔다. 술값이 싸지만 세르비아만큼은 아니네. 케밥 가게에서는 오직 현금만 받는데 그래도 수퍼에서는 카드를 받으니 좋네.

저녁은 마침 찾아온 루마니아 사람들과 함께 한다. 서로 능숙하지 못한 영어로 떠듬떠듬 의사소통이 되니 좋네. 담배 한 갑씩을 앵긴다. 마리오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걸 몰라 담배가 아깝다. 짜식이 제 마누라에게 주겠다네. 마누라와 59 동갑이라는 Pavel의 이메일을 받아서 셀카사진을 보내주기로 했다. 해바라기는 기름을 짜고, 옥수수는 사료로 쓴단다. 집에서 만든 52도 루마니아 술맛은 고량주 맛이 나고, 마리오가 만든 유기농 피자는 싱겁다. 11시나 되어서야 샤워하고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