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100 그라펜노르트 -리히텐슈타인 - 류블랴나 722km

나쁜카카오 2018. 11. 30. 10:07

잘 자고 일어나니 6시다. 목 뒷부분이 여전히 편치 않아 약을 좀 발라본다. 호스텔 밖에 나가 풍경을 보니 그야말로 완전한 산골 마을이다. 이런 곳에도 와보네. 소똥냄새가 온 천지에 진동을 한다.

밥을 하고 카레를 데워서 간단하게 아침을 처리한다. 출발 전에 동네 풍경을 찍으려고 나가니 이 산골짜기에도 중국애들이 들어와 사진을 방해해서 짜증이 좀 난다.

 출발은 9시 30분. 루쩨른을 지나면서 동네 경치를 구경할 예정이었으나 고속도로로 달리는 통에 구경할 수가 없다. 아깝다.

루쩨른을 지나 핸들을 넘긴다. 리히텐슈타인 들어가면 잠을 깨서 차 안에서나마 동네 구경을 할 참이었는데 잠자는 사이에 리히텐슈타인을 지나버렸다. 잠에서 깨어 보니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 국경인가 했는데 리히텐슈타인과 오스트리아 국경이네. 아깝다.


고속도로에 들어서서 조금 가니 15.58km 터널이 나온다. 제한속도가 80이라 참 지겨운 터널이네. 더 긴 터널이 있을라나? 이후로도 인스브룩까지는 터널이 많다. 티롤 산악지대를 지나는 길이라 그런가 보다. 예전에 와서 딱지 때문에 하룻밤 보냈던 Telfs도 지난다. 그 호텔이 보이나 열심히 살폈는데 잘 보이지 않아 아깝다. 이 동네를 다시 지나게 될 줄은 참 생각도 못 했는데 다시 지나게 되는구나. 사람 일을 어찌 알겠어? 배는 고픈데 자주 나타나지도 않는 휴게소를 계속 통과한다. 

인스브룩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고속도로에 들어가니 통행료를 받는다. 지난 번에 여기서 낸 기억이 통행료 내면서 난다. 그동안 지독히 인색하게 나타나던 휴게소가 여기서는 떼를 지어 나타나네. 배는 고프지만 점심은 일단 이탈리아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수많은 휴게소들을 그냥 통과한다. 지난 번에 쉬었던 그 이탈리아 국경 휴게소도 그냥 통과하고 돌로미티 외곽 도로에 들어서서 동네 식당에서 피자나 먹을까 했는데 식당이 보이질 않는다. 허름한 길가 술집인지 식당인지에서 빵과 우유로 점심을 때운다. 이런 음식도 이탈리아에서 11유로다. 점심을 먹고 핸들을 넘겨받았는데 또 졸린다. 이래서야 러시아를 어떻게 통과하나 싶어 걱정이 되네. 핸들을 넘기고 또 잔다. 그러다보니 돌로미티를 다시 보자는 욕심은 잠결에 다 날아가버린다. 이 놈의 잠이 웬수다.

잠에서 깨니 어느새 다시 오스트리아다. 돌로미티는 잠결에 날아갔지만 그래도 여전히 알프스라 경치는 좋다. 오스트리아 마을이 스위스보다는 훨씬 예쁘고 윤택해 보이는 건 스위스 집들의 색깔이 우중충한 탓일 게다.


기름값이 매우 싼 주유소가 있다고 기름을 채우잔다. 1.27이면 정말 싼 거다. 지금까지는 1.7 정도였다. 길을 계속 가다보니 그 주유소만 싼 게 아니고 더 싼 주유소도 많이 보이네. 오스트리아 Lienz. 기름값이 매우 싼 동네로 기억될 터. 이 린츠도 나름 유서깊은 동네인지 구시가도 있는데 규모는 매우 작은 것 같다. 통과.

이제는 끝없는 옥수수밭이 펼쳐진다. 이 옥수수로 뭘 할까? 그리고 남은 옥수숫대는 어떻게 처리할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슬로베니아로 들어오기 전 오스트리아 마지막 휴게소에 들리니 슬로베니아 비넷을 판다. 일단 무시하고 가기로 한다.

슬로베니아 국경에서는 고속도로 통행료, 어쩌면 터널 통과료만 받는다. 긴 터널을 통과하고 고속도로를 계속 달린다. 슬로베니아 고속도로는 초록색은 130, 청색은 110인데 뭐가 뭔지는 모르겠다. 두 번째 휴게소에서 비넷 7일치를 사서 불안감을 해소한다. 슬로베니아가 고속도로 통행료를 받지 않는 것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다.

류블랴나 시내로 들아와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싼 물가가 황홀하다. 드디어 비싼 동네를 벗어났다 싶어 기분도 좋다. 

일단 와인과 보드카, 그리고 맥주를 사고 오늘 저녁과 내일 먹을 식재료 등을 채운 다음 숙소로 간다. 구글 덕분에 위치는 잘 찾았는데 뭔가 복잡하다.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물어 리셉션에 가니, 여기는 대학 기숙사 같은 곳이네. 세상에 대학 기숙사를 일반 숙소로 팔아먹다니 참 신통한  동네다. 방은 괜찮은데 주차장과 멀어서 짐을 옮기느라 좀 힘들다. 젠장이다.

밥먹기 전에 하루 굶었다고 반가운 맥주 한 캔을 비우고 밥 안주로 보드카 한잔. 마트에서 생오겹살은 보이지 않는 대신에 오겹살 햄이 보여 반가운 마음으로 사서 양파와 구웠는데 너무 딱딱해서 먹을 수가 없다. 결국 남겨서 내일 아침에 끓여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