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에 쓸데없는 카톡이 잠을 깨운다. 어제 저녁에 비가 내리고 하늘은 다시 개어 별이 초롱초롱한데 쏟아지지는 않는다. 고살도 그 시골에서도, 여기 공기 맑은 동네에서도 별이 쏟아지지 않는 게 참 아쉽다. 아침 반찬이 없어 라면을 끓인다. 참 한심하네. 며칠 동안 저녁은 사람들과 같이 먹으면서 가지고 온 술과 반찬 등으로 잘 먹었군.
수시로 DHL 배송을 확인하는데 지난 밤 3시에 라이프찌히에서 오늘 새벽 리용으로 오고 9시 조금 지나 출발했다니 늦어도 11시 반까지는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드디어 샤모니를 떠나 집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텐트를 정리하고 캠핑장 비용을 정산한다. 5일치 87.5유로. 첫날은 20.5유로를 계산했는데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텐트를 거의 다 정리하고 쉬는데 주인녀석이 와서 김머시기를 아느냐고 묻는다. 혹시 해서 따라갔더니 내 카드가 와있네. 이름을 읽을 줄 몰라 나에게 물어보러 온 것이었다. 한참을 캠핑장 입구를 보고 기다렸는데 그새 온 것이구만. 너무 반가워서 카드에 뽀뽀도 하고, 봉투는 가보로 보관하기로 한다. 짐을 다 정리해서 11시 40분 캠핑장을 떠난다.
스위스 Martigny로 바로 넘어가는 고개, 그저께 다녀왔던 고개를 넘으러 가다가 여기까지 와서 제네바를 가보지 않는 것도 아쉬울 것 같아 차를 돌린다. 제네바까지는 약 80km. 길은 고속도로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알프스 끝자락이라 여전히 꼬불길이고 산은 아직 높다. Cluses란 동네에서 기름을 채우고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통행료를 두 번이나 받는다. 2+1.9. 번거롭다.
제네바 시내에 들어와 제네바가 스위스인지, 프랑스와 함께 하는 도시인지 잠시 헷갈린다. 공항만 같이 쓰는데 동네의 분위기도 프랑스와 거의 같아서 헷갈린 모양이다. 시내 중심을 차로 지나면서 제네바 관광을 한다. 도로 주변의 집들이 모두 고풍스럽고 높이는 똑 같다. 레만 호수는 매우 크네. 갈길이 멀고 주차할 곳이 없어 그냥 통과, Lausanne가는 고속도로를 탄다. 휴게소에 들러 고속도로 비넷을 사고 Coop에서 빵과 우유를 사서 잔디밭에 앉아 점심. 40프랑이나 하는 비넷은 고속도로 통행료가 아니고 통행허가증 같은 거다. 그러니 스위스에서는 통행료를 이중으로 받는 셈인데, 스위스를 지나는 동안 퉁행료 내는 곳을 지나지 않았으니 이중으로 받는지 아닌지 모르기는 한다. 징그러운 놈들. 스위스 해바라기들은 벌써 고개를 다 숙였다.
로잔은 시내에 들어가보지 않고 호반을 따라 달리면서 관광한다. 호수에서 노는 사람이 매우 많구나. 조금 더 가니 Vevey다. 자세히 보지 못한 로잔보다는 좀더 예쁜 느낌이지만 어떻게 알겠어? Montreux는 바로 옆이다. 도로와 호수 사이의 Chateau de Chillon. 관광객이 무지 많네. 운좋게 마침 주차자리를 하나 잡았는데 걸어다니는 게 좀 귀찮고 주차료를 어떻게 내는지 몰라, 성 입구도 가지 않고 멀리서 폰 사진만 찍는다. 이럴 때는 그냥 모르쇠 버텨야 하는데 이제는 그게 안 되네. 안내판에는 호수에서 산을 배경으로 석양에 비친 사진을 보여주는데 그림이 멋지다. 우리 관광의 컨셉은 주마간산. 변함이 없다.
몽뜨뢰를 지나 인터라켄을 통과하면서 멀리서나마 융프라우를 보여주겠다고 알프스 산속 꼬불길로 코스를 정한다. Aigle, Evian 등 낯익은 동네 이름이 많다. 에이글에서 11번 도로로 들어서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구글을 고속도로 제외로 설정해서 시간이 많이 걸리게 되었네. 그래도 스위스 산골 마을을 제대로 구경하면서 지나게 되고, 결국 숙소도 깊숙한 오지 산골에 잡게 되었으니 잘한 짓인가? 산속 마을들이 매우 크다. 이 산속에서 다들 뭘 해먹고 사는지...
길은 인터라켄을 많이 우회해서 시내로 들어가보지를 못 한다. 인터라켄과 루체른을 잇는 도로는 고속도로가 없는지 표시는 보이지 않고 산속을 뱅글뱅글 도는 길만 나오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리히텐슈타인은 포기할 수밖에 없게 생겼다. 숙소를 찾아보니 전부 비싸다. 휴게소에서 잠시 쉬면서 결국 그나마 싼 편인, 루체른 아주 외곽 시골마을 Grafenort라는 곳의 호스텔 하나를 예약한다. 방 하나에 74프랑. 시간이 8시가 넘은데다 지나는 마을들이 전부 작아서 저녁거리를 살 마트가 없다.
호스텔은 깊숙한 산속, 집들이 띄엄띄엄 있는 동네 입구에 건물 하나만 외따로 달랑. 길 건너에는 기차역이 있는데 기차가 자주 다니네. 밥을 해서 남아 있는 반찬들로 저녁을 때우고 나니 9시 반이다. 술이 없는 저녁이 며칠만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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