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101 류블랴나 - 자그레브 - 베오그라드 549km

나쁜카카오 2018. 11. 30. 10:51

모처럼 아침 7시에 일어났다. 잘 잤는데 목은 여전히 불편하네. 오겹살 햄은 끓여봐도 여전히 딱딱하고 맛이 없어 결국 버렸다. 반이나 남았는데 어떻게 처리하나 싶다.

류블랴나 시내에 들어가 드래곤 브릿지 앞에 차를 세우니 4년 전에 1박했던 그 호텔 바로 앞이다. 감개가 무량한가? 아직 반은 열려 있는 시장 노점에서 채소를 사고 그 옆 기념품 가게에서 마그넷도 하나 산다. 나중에 보니 채소들 상태가 별로 좋지는 않네. 3유로씩.

구경을 잘 하고 자그레브 가는 고속도로를 탄다. 길이 좋다. 휴게소가 자주 나오는데 화장실은 사람이 떡 버티고 서서 돈을 받는다. 슬로베니아 휴게소의 기름값은 오스트리아 싼 곳과 비슷한 수준. 그러면 이 동네에서는 비싼 거지. 고속도로에서 보이는 시골 풍경은 어디나 거의 비슷하다. 

국경 부근에 가니 구글이 차가 막히지 않는 길로 안내해서 따라간 세관에서는 EU차량만 통과할 수 있다네. 구글이 너무 똑똑해서 탈이다. 한참을 돌아나와 차들이 줄을 선 세관으로 간다. 크로아티아 세관에서는 차량서류(auto document)를 달라고 하며 보험을 본다. 말을 알아듣기 힘들었다.

허름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휴게소 옆 벌판에서 볼일도 본다. 재밌는 휴게소다. 독일 녀석 하나가 아는 척 한다. 대부분 그렇듯이 이 녀석도 crazy라네. 부럽다는 말이다.

세관을 통과해서 열심히 가다보니 자그레브를 지나쳤다. 휴게소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사서 어제 사둔 우유 등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때운 후에 자그레브 관광을 잠시 하기로 하고 자그레브에 들어간다. 4년 전 그 길로 다시 가는구나. 자그레브에 들어서 멀리 대성당 꼭대기가 보이는 곳에 넓은 중앙분리 공간이 있고 거기에 분수와 꽃밭들 만들어서 보기 좋다. 지난 번에도 봤을 텐데 기억에 없네.


시내에 들어가니 역시 주차공간이 없다. 한참을 빙빙 돌다가 중앙광장 뒷골목 어딘가에 주차하고 나오니 시내 조망이 가능한 탑이 하나 보인다. 교회의 첨탑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거기에 올라가 시내를 조망하는 것으로 자그레브 관광을 마치기로 하고 20쿠나씩 지불하고 올라간다. 갈레이아 클로비체비 드보리 탑. 바닥 기온은 34도라 뜨거운데 계단 120개 정도를 올라가니 바람이 시원하다.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건 교회와 빨간 지붕등. 크로아티아는 유난히 빨간 지붕이 눈에 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쁘다고 난리인가?


관광을 마무리하고 이제는 세르비아로 가야지.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다시 통행료를 받는다. 비싸진 않다. 고속도로 양 옆으로는 이 많은 옥수수를 어떻게 수확할까 싶을 정도로 넓게 깔린 옥수수밭이 끝없다.

고속도로에 기온을 표시하는 전광판이 신통하다. 자그레브 나올 때는 34도를 보여주더니 세르비아가 가까워지면서 33.5도인데 시간이 오후 4시 반이라 그 덕분일 거다.

세르비아 국경을 통과하는 차량은 그리 많지 않아 빨리 통과한다. 여권을 보고 어디 가느냐고만 묻고는 보험에 관해 일언반구도 없이 보낸다. 좋다.

고속도로 노면은 개판인데 제한속도는 120, 130이다. 이런 길에 이 속도를 주다니 세르비아가 미쳤나 보다. 공사를 한 곳은 좀 낫긴 하다. 고속도로 양 옆으로 또다시 끝없이 펼쳐진 엄청난 옥수수밭. 도대체 이 많은 옥수수로 무얼 하지? 해바라기 밭도 많은데 여기 해바라기들은 이미 다 끝났다.

휴게소에 들어가 기름을 좀 채우고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사먹는다. 하나에 150쿠나 정도이니 한국과 비슷한데 맛은 별로다.

오늘은 두 번이나 내 차를 물어보는 사람을 만난다. 신기해 죽겠나 보다. 대부분 처음에는 일본이냐고 물어본다.

데이타가 잘 들어오지 않아 구글에 의지해서 숙소 동네에 들어오니 중국식당이 몇 개 보이고 매우 지저분한 느낌이다. 중국음식점이 다른 곳보다 많은 건 아마 눈에 자주 띄는 동양인들 덕분일 거다. 베오그라드는 옛 유고슬라비아의 수도라 키릴어가 보인다. 두 달만에 보는 키릴어가 반갑다.


숙소는 잘 찾았는데 개 서너 마리가 차를 쫓아다니며 난리다. 이 동네에서는 개 목줄을 하지 않고 전부 그냥 놓아두는 것 같다. 고양이도 많이 키운다. 그런데 집이 너무 개판이다. 외관은 공사 중이라 엉망이고 방은 달랑 방 하나. 거기에 붙은 조그만 주방과 커튼도 없이 변기, 세면대에 붙은 샤워실. 1층이라 좋다 했더니 그나마도 차에서부터 지저분한 길을 걸어야 한다. 싼 걸 찾은 우리 잘못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방을 숙소라고 부킹닷컴에 올리는 재주는 참 보통이 아니네. 

카드도 안 된다고 해서 유로 현금으로 준다. 카드가 안 된다고 할 때 현금이 없다고 하고 다른 집에 갈 걸, 그때는 왜 그 생각이 나지 않았나 모르겠다. 여기서 2박 할 생각을 하니 참 끔찍하다. 내가 하도 한심한 표정을 하니 눈치를 챘는지 주인 여자가 빵을 좀 준다. 먹어보니 뭔가 채소 같은 게 들어 축축해서 먹기가 어렵다. 나중에 길가에 버리기로 한다.

1구 짜리 인덕션 렌지가 있는데 작동이 되지 않아 버너를 가져와서 밥을 하고 소고기를 볶아 와인을 비운다. 샤워를 하려는데 더운 물이 도통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아 주인을 불러 오니 화장실 입구 스위치를 누르면 되는 것이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