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124 알혼섬 후지르 동네 산책

나쁜카카오 2018. 12. 2. 22:02

오늘은 부르한 곶에 가서 샤먼 바위를 보고나서 이 한적한 후지르 동네를 다니며 마트도 가보고 내일 숙소도 알아보기로 한다. 북부 투어는 내일.

누룽지 국을 만들어 젓갈로 아침을 때우고 나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다 11시 20분이나 되어서야 숙소를 나선다. 소떼가 출근해서 아무 곳에서나 풀을 뜯는 마을 길을 슬슬 걸어 부르한 곶이 보이는 언덕으로 방향을 잡는데 성수기가 지나서인지 동네가 매우 한적하고 인적이 별로 없다. 비포장 마을 길은 넓어서 더욱 황량하다. 가는 길에 투어예약을 할 예정인데 투어사무실 같은 것도 보이지 않네. 언덕에 오르니 1200여명이 산다는 후지르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옴팍한 지형에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는데 왜 우리는 가장자리에서 그리 헤맸을까 싶다. 


부르한 곶과 샤먼 바위가 보인다. 전세계에서 가장 기가 세다는 7곳 중의 하나라는 샤먼 바위. 그런 기를 받으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한데, 마눌님 말로는 경험해본 사람은 몸이 찌릿해지고 나중에는 공중부양까지 된다니 참 신통하기도 하지. 하지만 나는 여기나, 또 기가 세다는 미국의 세도나 등지에서 아무 것도 느낄 수가 없으니... 여기 오면 샤먼을 볼 수 있다고 그랬나? 근데 보이는 건 바위와 호숫물밖에 없네.

샤먼 바위는 툭 튀어나온 지형이라 그 주위로 호수가 동그란 호안을 형성해 반영이 멋진 사진을 찍게 하기도 하는데 오늘은 바람 때문에 물결이 일어서 반영은 글렀다. 알혼섬은 무당 동네라 곳곳에 색색의 끈을 묶어 여기사 신성한 장소임을 알리는 말뚝이 많다. 어제 오는 길에서 어떤 고갯마루에 마치 제사상처럼 차려진 말뚝을 보기도 했지. 샤먼 바위 부근에서 한참을 놀면서 발도 담궈볼 생각이었는데 서늘해진 날씨가 밀리네. 마눌님이 손으로 물을 튀기는 모습만 담는다. 사람들이 없으니 좀 재미가 없다.


 한참을 놀다가 언덕을 오르니 언덕 너머 호수가 바다다. 백사장도 보이고 그곳에서 캠핑하는 사람들도 있다. 호안이 물결 등등으로 올록볼록한 지형을 보이는 게 재밌다. 이 언덕에는 색색 천을 매단 말뚝이 13개 박혀 있는데 그 의미를 굳이 알아야 할까? 알게 되면 좋을까? 모처럼 영어 안내판이 설명을 하긴 하는데 그냥 사진만 찍어둔다. 각종 동물 모양을 조각한 나무말뚝으로 울타리도 만들었네. 그냥 재밌다고만 생각하자.



배도 고프고 해서 언덕 위 바이칼뷰 카페에 간다. 피자와 커피로 점심. 590루블이면 괜찮다. 피자도 맛있네. 전체적인 동네 분위기와는 달리 현대적으로 깔끔하게 지은 건물이 예쁘다. 창을 통해 보이는 호수 등등의 전망도 좋아서, 마침 잘 터지는 와이파이와 함께 잘 논다. 커다란 창 밖으로 테라스에 의자들이 나란히 놓인 풍경은 어디선가 많이 본 듯 한데 기억이 나질 않네.


언덕에서 내려와 여전히 넓어서 더욱 황량한 마을길을 지나다보니 인포가 보인다. 들어가서 투어를 예약한다. 그새 100이 올라서 1200인데 예약은 지금하고 돈은 나중에 내라네. 일단 숙소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 예정이라 그러자 했는데, 좀 귀찮은 시스템이긴 하다.

내일 밤을 지낼 숙소를 알아보기로 했으니 일단 유명하다는 니키타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가니 가격이 매우 비싸다.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모씨 후기가 맞다. 규모는 크고 단지 내도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졌지만 이렇게 가격이 비싸면 우리 취향은 아니다.

다시 옮기는 것도 귀찮고 와이파이 없이 버텨보자는 마눌님의 말도 있고 해서 그냥 이 불편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1박을 더 하기로 한다. 취사장만 좀 편하고 다른 모든 것이 불편한 숙소. 아침에 샤워하면서는 처음에 옷을 벗고는 좀 춥기까지 했지. 침대도 딱딱하고 동네가 온통 모래인데다 바람이 많이 불어 방이라고 모래가 서걱서걱한다.

잠시 쉬다가 차를 가지고 나가 이 동네에서 가장 큰 마트도 둘러본다. 생고기가 역시 없군. 수박 하나와 보드카 한 병만 일단 산다. 오늘 저녁은 남은 돼지고기로 김치찌개를 한다 하지만 내일 저녁과 모레 아침은 어떻게 하나 걱정이다.

차를 가지고 나간 김에 동네나 한 바퀴 돌아보자며 울퉁불퉁 힘든 길을 조심스레 지나 가다보니 오전에 언덕에서 보았던 호안이 바로 앞이다. 차를 세우고 모래밭 그러니까 백사장을 열심히 걸어 호숫가로 간다. 해가 나오면서 구름도 예뻐지고 물색깔도 좋아진다. 우선은 2종류만 보이는 갈매기 떼가 백사장에서 잘 놀고 있네. 갈매기가 민물에서도 사는구나. 어선이 지나가면 그 위로 갈매기 떼가 따라다니는 풍경까지 다 바다와 똑같다.

물가에 동그란 통이 하나 있어 뭔가 했더니 사우나다. 마침 처녀아이 하나가 안에서 벌겋게 익은 몸으로 나와 바로 호수에 들어가네. 내친 김에 샴푸로 머리도 감는다. 어쨌든 정말 시원하겠다. 나도 해보면 정말 좋겠는데 아무런 준비가 없으니 그냥 부러워할 수밖에 없네. 아깝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호숫가를 나와 숙소로 돌아오면서 투어 비용도 지불한다. 예약한 지 몇 시간만에 손님을 까먹은 처녀아이가 어쩌면 10명까지 될지도 모르겠다네. 하긴 제가 하는 게 아니니 어찌 알겠어? 내일 아침 9시 45분에 숙소에서 대기하면 차가 온단다. 참 멍청한 디자인이라고 흉을 본 그 차 우와직을 드디어 내일 타보는구나.

숙소로 돌아와 노을이 지기를 기다리며 울란우데 호텔 등을 알아보고 놀다가 노을이 지는 시간을 잠시 놓쳤더니 오늘따라 짙은 구름 사이의 노을이 황홀한데 시간을 맞추지 못 해 매우 아쉽다. 내일은 성공하겠지. 7시 40분 또는 그 전. 기억해둬야지.


김치찌개로 저녁을 먹는데 옆 식탁은 손님들이 저녁을 사먹는지 메뉴가 화려하다. 하지만 그게 그리 맛있지 않다는 걸 우리는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