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되어도 비가 그치지 않는다. 고깃국은 데우고 고기는 그냥 굽기로 한다. 고기가 맛있게 잘 구워졌다.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도 비가 그치지 않아 아무래도 알혼섬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여기서 1박을 더하고 내일 알혼섬에 가려고 주인놈에게 1박 더할 것이라 문자를 넣었는데 당최 답이 없다. 괘씸한 놈. 오는 날도 그러더니 도대체 답신을 보낼 줄 모르네. 마침 비도 그치는 것 같아서 그냥 알혼섬에 가기로 하고 짐을 정리해 숙소를 나선 시간이 11시 50분이다.
몽골에 다녀오면서 날짜도 줄이고 몽골의 풍경을 즐기는 것도 좋은데 여기서 몽골을 다녀오는 게 너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비자 받는 것도 난관이고, 울란바토르에 가는 것도 내 차는 어려우니 기차나 버스로 가야 하는데 그 시간도 만만찮고, 가서도 시간에 쫓겨 제대로 즐기기 어려울 것 같고. 그래서 몽골은 일단 포기한다. 차라리 한국에서 적당한 가격의 패키지로 다녀오는 게 훨씬 나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먼저 간 친구가 셀카봉을 잘 쓰는 걸 본 마눌님이 셀카봉을 가져온다. 기념. 엄청 편해졌다고 마눌님이 매우 좋아한다.
이르쿠츠크 시내를 벗어나니 알혼섬으로 가는 길이 좋다. 중간 여러 곳에 노면이 상한 곳도 많지만 전반적으로 길이 좋아 혹시 알혼섬에 들어가서도 길이 이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도 가져본다. 마치 우리 서낭당처럼 헝겊 쪼가리들로 장식하고 소원을 비는 장소인 양 쌀과 음식 부스러기, 그리고 동전이 널린 길가 쉼터에서 잠시 쉰다. 무당의 원조가 알혼섬이라는데 가는 길이 벌써 그 느낌이다. 개 한 마리가 배가 고픈 듯 열심히 쳐다보는데 줄 게 없다.
길은 고도를 자꾸 높이네. 고도 600을 오르내리는 길 양옆으로 부드러운 구릉에 드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고 곳곳에 몽골 게르가 보이는 게 마치 몽골 같다. 소와 말들을 많이 키우는데 여기 소들은 다른 곳보다 유난히 길 건너는 걸 무서워하지 않아 곳곳에서 소가 건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산들도 많아 경치는 지금까지의 러시아 도로들과 많이 다르다.
점심으로 먹으려고 밥을 해오기는 했지만 마땅히 먹을 곳이 없어 배는 고픈데 마침 카페와 기념품을 파는 조그만 가게가 있는 곳에서 전병(알고 보니 이게 블린이네) 4개 커피 2잔(160)을 주문했는데 밀전병이 담백하고 맛있어서 4개를 추가한다. 배도 좀 고팠지. 밀전병은 만드는 방법이 간단해 집에서 만들어 먹어도 되겠다 싶다. 전체적인 고도는 높지만 솟아오른 산이 없이 부드러운 구릉으로 이어지는 풍경 속으로 길은 계속 이어진다. 다른 차도 없고 길은 좋아서 열심히 달리다보니 속도가 120을 넘기도 한다.
마침내 섬으로 건너가는 페리 부두에 도착했는데 구글은 앞으로 남은 거리 46km에 1시간 20여 분이 남았다고 알려준다. 호수 건너 보이는 섬 도로가 누렇게 비포장임을 나타내는데 그래서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리나 보다. 페리는 금방 온다. 자동차 열 대가 채 실리지 못 할 작은 페리 3대가 쉬지 않고 왕복하며 차와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데 요금을 받지 않는구나. 신통하기는 하다만, 그 비용을 누가 대는지 몹시 궁금하기도 하다.
10여 분 정도 걸려 도착한 섬의 도로는 역시 비포장 흙길인데 비가 다녀간 덕분에 먼지는 많지 않지만 노면이 힘들어 속도를 낼 수가 없다. 하지만 이 동네 차들은 쌩쌩 달려버리네. 부럽다. 남은 거리 30여 km 비포장 도로는 매우 힘들다. 도로 옆 초원에는 길들이 제멋대로 나있는데 아마 원래 도로가 워낙 힘드니 이렇게 옆 조금 부드러운 길을 차들이 만든 게 아닌가 싶다. 역시 말로만 들은 몽골 초원의 모습이 이럴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다시 배를 타러 나올 일이 끔찍해서 여기에 왔다가 하루만에 나가는 건 정말 억울하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목적지 후지르 마을에 도착해서 숙소를 찾아본다. 우선 Inn Oasis. 캠핑장 분위기인데 와이파이가 없다. 젊은 부부가 열심히 설명을 해주고, 와이파이가 없다니 인상좋은 젊은 친구가 다른 곳까지 찾아보는 수고를 해주는데 우선은 낙제. 다음은 몇 바퀴를 돌아 겨우 찾아낸 Kampus. 다 좋은데 취사가 안 된다네. 아침(300), 저녁(400)을 사먹어야 하는데 돈도 돈이지만 도대체 입맛에 맞지 않은 이 동네 음식으로 최소한 2박 3일을 버틸 수는 없다. 늙그수레한 할배가 열심히 영어로 설명하는 게 고맙기는 하지만 포기. 다음은 보기에는 그럴 듯한 Karavanka. 아무도 없어서 문자를 보내고 한참을 기다리니 나타난 중국인 닮은 주인들. 넓은 마당에 차가 들어서자마자 모래에 빠져버린다. 사람들이 밀어서 겨우 빠져나온 모래밭. 게다가 방과 화장실, 취사장 등이 너무 멀어서 매우 불편하다.
결국 처음에 찾아간 Oasis로 다시 간다. 12시에 출발해서 314km 달리고 숙소를 찾느라 헤매서 8시간 30분만에 숙소를 정하니 시간이 매우 많이 걸린다. 갈 때는 좀 나을까? 숙소를 찾느라고 1시간을 넘게 허비한 게 참 아깝다. 세상에 없는 그 싸고 좋은 걸 죽으라고 찾아다니는 이 어리석고 한심함을 어찌할꼬... 부킹닷컴에는 2박에 3,600이 뜨는데 3,200만 받는다. 그러니 부킹닷컴에서 10% 이상의 수수료를 받는다는 건데, 부킹닷컴 같은 이 예약사이트들이 그야말로 대동강 물을 땅집고 헤엄치기 식으로 팔아먹는구나. 이런 장사를 해야 하는데...
해둔 밥과 각종 젓갈류로 저녁을 간신히 때우고 알혼섬의 첫 밤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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