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129 울란우데 관광

나쁜카카오 2018. 12. 3. 15:48

새벽에 일어나 부엌에 가니 바퀴벌레가 보인다. 러시아에서 두 번째네. 날이 밝는 대로 주인 여자를 불러 해결해야 한다. 바퀴벌레와 또 하루를 보낼 수는 없지. 10시까지 오라고 문자를 보내니 11시에 오겠다면서 10시 조금 지나 청하지도 않은 타월 한 장과 바퀴약, 화장지 등을 들고 온다. 자기네 집에 바퀴 같은 건 없고 1층 식당에서 올라온 거라는데 그 말을 믿을 수는 없다. 약을 구석구석 바르지만 약 한번 바른다고 없어지면 바퀴가 아니지. 내일 새벽에 또 나올 거다. 일부이지만 창밖으로 강도 보이는 괜찮은 전망의 집인데...


돼지뼈로 끓인 국이 소위 돼지국밥일 텐데 고소한 맛이 나긴 하지만 식욕을 돋구지는 못 해 밥 한 그릇을 겨우 비운다. 큰일이다.

11시 20분 숙소를 나서는데 기온이 차다. 벌써 초가을에 접어든 시베리아. 첫 행선지인 라마교 사원 '다찬 린포체 바그샤'를 찾아가는데 유심이 맛이 가서 구글이 저장된 길 외에는 모른다. 사원은 야트막한 언덕 위에 올라앉아 울란우데 시내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칠레팔레 흐르는 셀렝가 강 건너 저멀리 산 아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단층집들이라 마치 하얀 벌레같다. 사원 밖에는 아무나 종을 치며 소원을 빌 수 있게 한 종루가 있고 색색의 천을 매단 신목들이 많다. 바람이 너무 세서 더욱 춥다.


사원 안에 들어가니 라마교 사원은 처음이라 국내에서 익히 봐온 절과 비슷하면서도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엄숙하지만 약간은 자유로운 느낌. 신발도 벗지 않으니 편하기도 하네. 거대한 부처가 중앙에 자리잡은 공간 앞에, 마치 학교처럼 스님들이 양쪽으로 앉아서 공부를 하는지 의자와 책이 여러 권 놓인 탁자가 배열되어 있다. 의자 위에 만두처럼 말아둔 붉은 가사가 재밌다. 사원 앞 성물을 파는 상점은 성물 외에 각종 잡화를 같이 팔아서 마치 동네 마트같다. 울란우데를 기념하는 마그넷을 하나 산다.







본관? 앞 좌우에 탑처럼 생긴 건물 지붕에는 사방으로 조각상이 있는데 한쪽에는 남자만, 다른 쪽에는 여자만 있어 이채롭다.

라마교는 달라이 라마를 숭배하는 불교 종파로서 티베트 불교라고도 불린다.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한 이후 전 세계를 떠돌며 반중 메시지를 전하는 달라이 라마.

언덕을 내려가 레닌 두상을 보러 소비에트 광장을 찾아간다. 동네가 단순해 지도만으로도 찾아갈 수 있으니 좋다. 머리 크기만 7.7m. 소련 붕괴 이후 거의 모든 도시에서 레닌의 조각상들이 사라졌는데, 이르쿠츠크나 여기 울란우데에서는 아직 레닌이 건재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냥 관광상품이 되어 버린 듯. 넓은 광장에서 또 무슨 행사를 하는지 조명타워 설치공사가 한창이다. 관광마인드는 애당초 없는 러시아. 그래서 붉은 광장도 막아서 볼거리 없애는 걸 예사로 아니, 여기 이 시골 울란우데라고 다를 게 없겠지.

사진을 남기고 지질박물관 찾아가는 길에 우선 유심을 살린다. 계정이 마이너스 9.9루블이니 10루블만 내면 살린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아 일단 100루블을 주고 잔액을 남겨둔다. 이 유심은 전화나 문자를 따로 계산하는 방식인 것 같다. 그래서 전화를 많이 쓰면 당초 약정에 관계없이 돈이 막 빠져나가는 시스템. 익숙해지려니 끝난다. 이곳저곳 물어물어도 잘 모르는 지질박물관을 찾아 다니는 중에 나름 건물도 예쁘고 주변도 분수 등과 함께 잘 어울리는 오페라 하우스도 본다. 


배가 고파서 우선 서브웨이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고 나오니 바로 옆에 지질박물관 입구가 보인다. 너무 반가웠는데 안에 들어가니 조그만 방에 암석 표본들이 조그맣게 전시된 시설인데 모르는 러시아말로만 설명되어 있으니 참 허무하다. 하긴 영어로 설명한다 해서 아는 건 아니지. 암석학 공부를 좀 해보려고 애만 쓴 적이 있어 더욱 아깝다. 돌 종류는 엄청나게 많다.

지질박물관을 나와 이번에는 아르바뜨 거리. 러시아 도시마다 있는 아르바뜨 거리가 여기라고 빠질 수는 없나 보다. 오페라 하우스에서 강 쪽으로 한참 내려가니 그럴싸한 동네가 나오는데 여긴 제대로 된 아르바뜨 같다. 한물 간 블라디보스톡이나 아예 끝장난 이르쿠츠크의 아르바뜨들보다 훨씬 낫네. 가운데를 분수와 꽃밭으로 장식한 거리 양쪽의 예쁜 건물이 보기 좋고, 저녁이 되면 제법 많은 젊은이들이 나와 놀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춥다.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아침을 먹었던, 비싼 트레블러스 커피에 들어가 화장실도 쓰고 커피도 한잔만 마시며 좀 쉰다.


시내구경을 끝내고 중앙시장에 가본다. 이르쿠츠크와 비슷한 분위기인데 도시의 규모와 비례되는 크기. 같이 바이칼을 팔아먹고 사는 도시들인데 여기 시장에는 오물이 거의 없네. 조그만 수박 하나와 언제 먹을지 모를 호박을 하나 사서 시장을 빠져나온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지난 번에 하루 머물면서 저녁과 아침을 맛있게 먹었던 호텔도 지난다. 숙소 앞 제법 큰 마트 티탄에 들어가 쌀, 생선 2마리 등을 사면서 약 5시간의 짧은 시내구경을 끝낸다. 아주 볼거리가 없는 곳은 아닌데 그리 재밌는 곳도 아니다. 몽골민족이 많이 사는 곳이라 분위기는 거의 몽골인 듯 하고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아서 같이 섞여 있으면 구분이 안 될 정도다. 그 외에 내가 여기 울란우데에서 무엇을 기대했나?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찾을 수가 없다. 

염장되어 짠 생선으로 만든 조림이 마눌님의 솜씨 덕분에 맛있다. 내일 치타 호텔을 예약해두고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