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부엌을 보니 역시 바퀴들이 득시글하다. 하룻만에 없어질 리가 없지. 김치찌개로 만든 국, 생선조림 등으로 아침를 해치우고 부지런히 정리하니 9시 반 경에 준비가 끝난다. 주인 여자보다 잘 생긴 남편이 와서 보증금을 돌려주고 잘 가라 인사를 한다.
울란우데 입구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부처상을 보고 나오려 했는데 오늘 갈길이 멀다는 생각에 그냥 울란우데를 끝낸다. 하나씩 도시들이 끝날 때마다 이제 어쩌면 다시 못볼 도시들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묘하다.
지난 번에 올 때는 남쪽 길을 빙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구글이 시내를 관통하게 하네. 그때 경치가 괜찮아서 가는 길은 어떨까 궁금했는데 그걸 보지 못 하니 좀 아깝긴 하다. 시내를 빠져나와 한참을 달리다가 졸려서 마눌님에게 핸들을 넘기고 눈을 붙였는데 노면 상태가 매우 시원찮아 잠을 깨서 다시 핸들을 잡는다. 길에 트럭들이 보이지 않고 포장도로 상태가 점점 나빠진다.
기름이 달랑거려 강아지 2마리를 키우는 어미개가 먹을 게 없나 하고 쳐다보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운다. 빵과자를 주니 잘도 먹는구나. 강아지가 너무 귀여워서 다시 키우고 싶어지기도 한다. 나중에 내 여행들을 다 끝내면 그때 강아지나 또 키워볼까?
길은 급기야 비포장으로 들어서네. 이놈의 구글이 빠른 길로 안내하다면서 또 사람을 괴롭히네. 비포장도로만 나오면 카잔 생각이 나면서 혹시 또 사고가 생길까 두려운데 또 구글에게 당하는구나. 비포장이지만 노면이 좋아서 속도가 잘 나니 빨리 달리면서도 더 괴롭다. 혹시 이 길이 이런 상태로 500km를 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겁나기도 한다. 60km 정도 달리니 마을이 겨우 하나 나온다. 제법 큰 마을인데 폐촌 느낌이다. 배가 고파서 블린이나 먹자 하고 카페를 찾는데 술집만 나오네. 아이스크림 하나로 우선 주린 배를 채우고 나니 그제서야 P254 도로가 나온다. 지도와 궤적을 확인해보면 되는데 그걸 귀찮아 하는 것도 문제다.
잦은 공사와 누더기길로 괴롭히던 지난 번과 달리 포장상태가 좋고 경찰도 눈에 띄지 않아 속도를 120까지 높여본다. 공사구간이 가끔 나오지만 그리 길지 않아서 좋다. 길 옆으로는 자작나무보다는 소나무가 많다. 숲이 끝난다 싶으면 다시 끝없는 초원지대. 하늘이 넓으니 보이는 게 많아 뭘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현숙은 불평이다. 다 쓰러져가는 시커먼 나무집들로 가득한 시골 마을이 다시 나타난다. 시베리아 이 동네 마을들이 다 이런 모양이지. 고도가 1,000 가까이로 높고 추운 지역이라 작물은 거의 없고 목초나 키우는 것 같다. 이 동네 소들도 길을 유유히 건너다니는 걸 예사로 안다. 개나 소나 말이나 다 길을 잘도 건너다닌다. 그런데 배를 채울 카페는 징그럽게도 나타나질 않는구나. 겨우 나타난 시원찮은 카페에서 블리니와 커피로 허기를 면한다. 여자 둘이서 이 한가한 동네 카페를 운영하면 밥이나 먹을 수 있게 돈을 버나? 마눌님은 보르쉬를 맛있어 하는데 내 입에는 그리 맞지 않는구나.
치타가 가까워지면서 해가 지는데 오늘 노을은 구름이 너무 짙어 별로다. 아깝다. 기름값이 자꾸 오르더니 50까지 찍네. 이 동네는 왜 이렇게 기름이 비싼 거냐?
구글이 길을 매우 한적한 곳으로 안내해서 호텔이 치타 아주 외곽에 있나 했더니 막상 호텔 동네에 도착하니 여기도 마을이 크네. 호텔 옆에는 라마교 사원이 있다. 왜 이 동네가 울란우데와 매우 멀리 떨어진 곳이라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러시아에서 600km 정도는 먼 거리가 아니다.
오늘 시간이 또 빨라져서 이제 한국과 같아졌다. 10시가 다 되어서야 호텔 식당에서 피자와 맥주로 저녁을 먹는다. 나는 맥주 대신에 보드카. 양이 부족해 결국 컵라면을 채운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 답답해 하는 식당 처녀아이가 물은 잘 준다.
호텔 가격표에는 방이 3,800인데 부킹닷컴으로는 2,394다. 도대체 가격을 알 수가 없다. 깔끔하고 방도 커서 좋은데 뭔가 불편하다. 왜 모든 게 만족스러운 숙박시설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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