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138 우수리스크 - 블라디보스톡 105km

나쁜카카오 2018. 12. 4. 12:04

어제 저녁에 남은 돼지고기에 마지막 남은 김치로 찌개를 만들고 달걀후라이도 곁들여 아침을 먹는다. 정리가 예상보다 빨리 끝나 메이드를 빨리 보내라 했더니 선물로 알룡카 초컬릿을 하나 가져오네. 그래도 이 집에 대한 평가가 좋아질 수는 없다. 우수리스크를 떠나기 전에 어제 조금이나마 고려인 회관에 도움을 주지 못해 아쉬워하던 마눌님이 천 루블을 기부한다. 큰 돈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도 기부를 많이 하면 좋겠다고 방명록에 썼다네. 그리 되면 정말 좋겠지?

A370도로의 노면이 그리 좋지는 않다. 이쪽으로 올 때도 이 길을 거쳤을 텐데, 길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이유를 모르겠다. 오토바이 여행자들과 만나기도 했는데, 거기가 어딘지 찾을 수가 없네. 주유소 사진도 찍고 하며 열심히 달리니 시속 110까지 허용되는 4차선 고속도로로 다시 연결된다. 우수리스크 정도의 시골마을을 이런 고속도로로 연결하는 이 러시아의 웃기는 도로정책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냥 그러려니 하자. 어쩌면 전 구간 고속화의 시작일 수도 있겠지.이 도로도 오래 되었는지 부분부분 누더기다.

드디어 블라디보스톡에 다시 온다. 5월 3일에 떠나 9월 14일에 돌아왔으니 4개월 하고도 11일만이네. 이렇게 오랜 기간 여행을 하고도 멀쩡하니 내 스스로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에는 길어야 보름 정도이던 여행이 단번에 4개월을 훌쩍 넘는 장기 여행이 되었다고 마늘님도 대단해 한다.


시내로 들어오니 차가 많아서 정신이 없다. 우선 마눌님 친구의 부탁을 해결하는 숙제를 위해 쇼핑몰 부근에 적당히 주차한다. 여기도 다른 차들이 주차된 곳에 적당히 세우면 되니 좋네. 주차료도 내지 않는다. 임페리얼 도자기 매장에 들어가니 여기는 물건이 많지 않아 원하는 모델을 사기가 쉽지 않다. 한국 아줌마들이 많이 와서 물건을 싹 쓸어갔다는 것 같다. 중국인들이 한국 면세점에서 싹쓸이한다고 나무랄 일이 아니다. 일단 물건을 찍어 와이파이되는 호텔에서 연락을 취하기로 하고 호텔로 간다.

처음에는 잘 찾았다 했는데 아지무트 호텔이네. 구글 지도를 보고는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새 뭔가 새로 생기거나 했겠지 했는데 그 주소로는 꽉 막힌 좁은 도로로 동네를 두 바퀴나 돌아도 호텔을 찾을 수가 없다. 세상에 아파트도 아닌, 호텔을 찾느라고 이렇게 길을 헤매게 될 줄은 몰랐네. 어찌어찌 돌다보니 바닷가 전망좋은 위치에 사진에서 본 그 건물이 나오네. 사진으로는 근사해 보이는데 건물은 낡아서 이게 호텔인가 싶게 엉망이다. 1층 입구 중국식당의 냄새가 징그럽네. 7층에 있는 리셉션에서 2시에나 체크인된다는 직원 녀석에게 구글 위치가 엉망이라고 이야기하니 잘 모르겠다는 말인지, 관계없다는 말인지 통 관심이 없다. 이러고도 장사를 하는 게 신통은 하지만 괘씸한 건 없어지지 않는다. 


마땅히 갈 곳도 애매해서 와이파이가 되는 로비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북한 사람들 몇 명이 보인다. 궁금하고 반가워서 말을 붙여봤는데 반응이 별로라 괜히 혼자 머쓱하다. 처음 만난 북한 사람들인데 좀 실망이다. 마눌님은 나나 북한 사람들이나 새까매서 똑같단다. 2시가 되어 방에 들어가니 방도 외관과 거의 마찬가지로 낡았다. 특히 화장실은 개판이다. 이런 호텔 숙박비가 4,500루블이나 한다니 기가 막힌다. 블라디보스톡에 인간들이 많이 오긴 하나보다. 우리가 앞으로 돈을 좀더 써야겠다는 마눌님의 말이 지당한데, 싸고 좋은 걸 찾으려는 내 헛수고가 언제쯤 끝날지 몰라서 약간 한심하기도 하다.


차에서 수박을 가져와 해치우며 고픈 배를 달래면서 핸드폰 충전시간을 때운다. 3시 좀 지난 시간, 가까운 아르바뜨 거리로 나간다. 호텔이 시내에서 멀다고 느꼈는데 실제로는 그리 멀지 않아 아르바뜨 거리가 금방이다. 바닷가 길로 가니 아르바뜨 거리가 바로 연결된다. 바닷가 길은 지난 번 을씨년스러운 초봄과는 달리 사람들이 많고, 아직도 수영을 즐기는 동네 할매할배들도 많다. 가게들도 모두 번창하는 느낌이다.

아르바뜨 거리의 블린 식당 우흐티는 열 두어 개 탁자 거의 전부를 한국 젊은 아이들이 차지했다. 둘셋 정도 짝을 지은 여자 아이들이 많고 그 다음은 커플, 간혹 혼자 온 여자 아이도 보인다. 

블린이 맛있어서 마눌님은 다음에 생각날 맛이라는데 나는 처음 먹었던, 알혼섬 가는 길의 그 시골 블린보다 못 하네. 집에 가서 이 블린을 만들어 봐야겠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진다. 토핑이나 찍어먹는 소스 등이 다양해야 하는데, 그 문제 해결이 쉽진 않겠지.


밖에 나오니 한국인들이 너무 많다. 한두 명 정도 보이면 반가운데 이렇게 많으니 징그럽네. 머잖아 이 블라디보스톡 거리에 우리 말 간판이나 안내판이 가득 차겠다 싶다. 이러다가 정식 페리나 운항하게 되는 날도 곧 오겠다 싶어서 약간 기대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내가 차를 끌고 다시 올까? 그렇지는 않겠지.

도자기를 해결하고 다시 아르바뜨 거리를 거쳐 호텔로 돌아와 저녁시간까지 잠시 쉰 다음, 저녁은 마눌님이 찾아낸 동네 사람들 식당 사치비. 조지아식인데 수프라는 너무 유명해져서 사람들이 바글거리지만 여기는 동네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 좀 낫다네. 노을을 보고 가려는데 노을이 너무 션찮다. 호텔이 건물이나 시설은 개판이라도 전망만은 기막혀서 리스트뱡카 생각이 나게 만들어서 오늘 노을을 많이 기대했는데 아깝다.


식당가는 길이 좀 애매해도 잘 찾아가는 중에 동네 골목길을 지나는데 꼬맹이들이 아는 척을 하며 악수도 청한다. 이 동네 아이들이 노인들을 어려워하지 않는 건 참 좋은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우리의 경우 이렇게 쉽게 대하기는 참 어렵지. 식당은 시설이나 인테리어가 매우 고급스럽고 많이 붐비지도 않아 좋다. 벽에는 마늘이나 기타 채소들로 장식했네.

하차푸리와 송아지고기 샤슬릭에 하이네켄 2잔. 하차푸리를 먹고 싶어하던 마눌님이 니글거린다며 별로라네. 상뜨 뻬데르부르그에서 먹었던 하차푸리는 맛있었다는데. 나는 이 정도의 치즈는 괜찮다. 샤슬릭은 돼지고기가 가장 낫다. 팁을 얼마나 줄 거냐고 계산서에 적게 되어 있어 괜히 10% 120루블을 쓴다.

돌아오는 길은 다시 아르바뜨 거리를 통과한다. 남은 며칠 동안에 이 길을 얼마나 더 통과하게 될지... 저녁이라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버스킹도 없고 조명도 어두워서 매우 삭막하다. 분수들만 열일 중이네. 해변에는 낮보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분위기가 산다. 낮에는 할매할배들이 수영을 하고 밤에는 젊은이들이 술을 마시며 밤을 즐기는구나. 일찍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