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139 블라디보스톡 잘라또이 다리, 유리해변, 공항

나쁜카카오 2018. 12. 4. 12:18

5시가 못 되어 잠이 깬다. 공항에 잘 다녀와야 하는데 걱정이네. 이 동네에서는 갈매기가 잘 보이지 않는다 했는데, 비둘기처럼 갈색인 갈매기들이 날아다니는 것 같다. 이런 갈매기는 처음보는 것이라 갈매기인지 아닌지 잘 모른다. 하늘이 흐려서 유리해변의 경치가 잘 살아날지 모르겠다.

호텔 조식은 허름한 내외관만큼이나 허접스럽다. 먹을 게 없네. 겨우 두꺼운 핫케익이라는 게 먹을 만 하다. 왠만하면 맛있는 러시아 소시지조차 맛없다. 호텔 아침을 먹어도 10시가 다 되어서야 출발하게 되네. 이제 145일에 이르는 여행의 거의 마지막 운전이다. 조심해야지.


블라디보스톡의 잘라또이 모스트(금각교)를 건너보고 싶었는데 유리 해변 가는 길이 이 다리를 지나서 좋다. 다리를 건너는 건 사실 별 거 아닌데, 왜 다리만 보면 건너가보고 싶어질까? 루스키 다리와 갈라지는 갈림길을 지나서도 유리 해변으로 가는 길이 포장이 잘 되어 이 해변이 이제 유명관광지가 되어 그런가보다 하고 혼자 짐작해보는데 딱히 그런 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유리 해변에도 입장료를 받네. 주차료를 내기 싫어서 길가에 주차하고 내려가는데 사람 입장료도 받으러 온다. 1인당 50루블. 이 해변에만 깨진 병 쓰레기가 몰려온 건 아닐 테니 아마 여기가 병들을 버리는 곳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깨진 병들이 파도에 닳아 이제 자갈처럼 되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구나. 해가 나지 않아 반짝이는 유리를 볼 수 없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그리 많이 아쉬운 풍경은 아니다 싶다. 약간 허무시리즈? 이런 곳도 관광지가 될 만큼 블라디보스톡에는 볼만한 명승이 없다는 말이지. 인증샷 몇 장 남기고 미련없이 해변을 떠나 공항으로 간다.

공항 주변에 도착하니 길가에 주차한 차들이 많다. 유료주차장말고도 무료주차장이 따로 있는데 왜 길에 저렇게 주차를 하나 싶다. 공항은 최근에 지어진 것처럼 보이는데 블라디보스톡 관광의 역사만큼 작다. 구내에는 우리말로 안내가 잘 되어 있어서 머잖아 더욱 많은 한국인들로 북적이는 곳이 될 것이다.

보딩패스 받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 러시아에서 빠른 일처리를 기대하면 안 된다. 11시 25분에 공항 도착해서 12시 5분에 마눌님이 출국장으로 들어갔으니 그만하면 빠른 편이라 치자. 140일 정도만에 처음으로 혼자 차에 오른다. 마눌님이 떠나고나니 헛헛하다.


시내로 들어오면서 어제 찍지 못한 도로를 셀카로 찍어보는데 혼자서 하려니 많이 불편하네. 세차를 먼저 하고 호스텔에 들러가려 했는데 저녁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세차가 아깝다. 세차는 내일로 미루고 호스텔을 먼저 찾기로 한다. 타이거 호스텔 부근에 왔는데 도무지 집을 찾을 수가 없다. 주소는 31A인데 구글은 31에서 스톱하고는 만다. 묻고 돌아 겨우 집을 찾으니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하는 곳이네. 젊은 주인녀석이 주차장을 알려주려고 같이 차를 타고가니 처음에 차를 세운 곳이다. 여기서 내려가는 길을 찾지 못한 내 탓이 크지만 이런 곳이라고 자세히 알려주는 후기가 없다.


여기서는 음식은 부엌에서만 먹어야 하고 술은 금지, 담배는 밖에 나가 한참 떨어진 곳에서만 가능하니 나흘 동안 내 고생이 막심하겠다. 덕분에 술을 마시지 않게 될까? 작심은 해보는데 장담은 못 한다. 2층 침대 위쪽이라 몹시 불편한데 방에는 앉을 곳이 없다. 1층으로 바꿔달래니 침대가 다 찼다네. 나흘 동안 정말 힘들게 생겼다. 좀 편하게 지내면서 사진정리, 경비정산, 블로그 포스팅 등을 할 예정이었는데 얼마나 잘 될지 매우 의문이다. 그렇다고 호스텔을 바꿀 수도 없다. 머리아프다.

짐을 좀 정리하고 4시가 다 되어서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운다. 앞으로 나흘간 대체로 이런 점심을 먹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내일 세차는 2시 경에 하도록 예약을 부탁한다. 아무르베이 호텔 옆 세차장을 추천해서 거기로 갈 예정인데 세차하는 동안에는 아르바뜨 쯤에서 점심 등을 해결하게 되겠지? 뭘 먹나?

저녁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딱 맞아서 7시 경에 소나기가 시원하게 쏟아지더니 금방 그친다. 8시 한참 지나서 배가 고파 양파 마늘 볶음에 달걀을 풀어 저녁을 때우는데 배가 부르다는 느낌이 전혀 없어 골치아프다. 내일 아침은 어떻게 먹나?

술을 못 마시는 게 불만이라 하니 만일 그렇게 마시고 싶다면 혼자 몰래 마시는 걸 모르는 척 할 수도 있다네. 원한다면 밖에 탁자를 마련해주기도 하겠다는데, 같이 마실 놈이 없지. 

배낭여행으로 모스크바와 몽골을 다녀왔다고 자랑하는 늙은이도 술 생각은 별로 없나 보다. 말이 많아서 같이 어울리기가 썩 내키지 않는다. 나는 누구와 어울려 놀 수 있을까? 보드카 보관도 어렵고 해서 4일간 술을 끊어보기로 마음은 먹어본다. 보드카 영수증을 찾지 못해 동해세관 통과가 좀 어렵지 않을까 싶다. 일부러 별도로 계산하고 영수증을 잘 뒀는데 어디 뒀는지 기억이 나질 않으니 참 큰일이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