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137 우수리스크 관광

나쁜카카오 2018. 12. 4. 11:27

5시 반쯤에 일어나 헤매다가 샤워를 한다. 화장실이 더러워서 샤워를 하기 싫었는데 어제 온수기 고장으로 샤워를 하지 못 했으니 할 수 없다. 어쩼거나 하고나니 시원하네. 

소시지김치국을 끓이고 소시지와 양파 마늘볶음으로 아침을 때운다. 오전 내내 더러운 집에서 퍼져 있다가 옥수수가 다 삶기기를 기다려 12시가 넘어서 시내 구경을 나선다.

우선 이상설 선생 비석. 가는 길이 잘 포장되어 혹시 한국 정부에서 지원했나 했는데, 그건 아니다. 길가에서 비포장도로를 조금만 들어가면 강가(비석에는 수이푼 강, 지도에는 라즈돌라야 강)에 외로이 비석 하나 서있다. 이준, 이위종과 함께 고종의 헤이그밀사로 파견되었다가 돌아온 인물로만 알던 보재 이상설. 그는 이곳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며 일생을 보내다 47세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독립을 이루지 못 한 처지임을 한탄하며 화장해서 자신의 유품을 아무 것도 남기지 말라고 유언. 2001년에 와서야 그의 유골이 뿌려진 이곳 수미푼 강가에 대한민국 정부가 아닌, 광복회와 고려문화학술재단이 러시아 정부의 협조로 유허비를 겨우 세운다. 


그동안 대한민국이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선열을 어떻게 대해왔는지 여실히 알려주는 증명이라 하겠다. 내가 그 시기에 살았더라면 어찌 했을까 잠시 자문해본다. 그렇게 내 생을 독립운동에 바쳤을까? 

지난 번에는 그냥 껍데기만 보고 지나쳤던 고려인문화회관에 가본다. 외부에는 2004년에 설치된 러시아 한인이주 140주년 기념관이라는 석비가 있다. 1860년대, 벌써 160년이나 지난 오랜 옛날에, 가난과 수탈에 못 이긴 우리 조상들이 짐이랄 것도 없는 짐을 이고지고 이곳까지 수천 km를 오게 된 그 기막힌 사연들이 보지도 듣지도 않아도 가슴아프다. 입장료 70루블. 2층에 전시관이 있는데 먼저 고려인들이 정착한 이후의 역사에 관한 간단한 동영상부터 봐야 한다. 

억척같은 뚝심으로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되었는데 왜놈들이 쳐들어와 수백 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이후 1937년, 스탈린이 17만명이 넘는 동포들을 수천 km 떨어진 중앙아시아 발판으로 내쫓아 그 과정에서 수천의 희생이 생기게 된다. 중앙아시아에서도 발판을 만들었는데 1990년 러시아 정부는 과거의 잘못을 사과하고 다시 이곳 연해주로 돌아올 수 있게 해서 현재 약 5만명의 고려인들이 살고 있다네. 그러니 여기저기서 우리말 하는 할머니들을 만난 게 그리 신통한 일은 아니었구나. 5만명이면 매우 많은 인구지.

점심을 이곳 식당에서 해결하기로 한다. 시내 한식국수집에서는 마눌님이 싫어하는 찬 국수만 판다니 어쩔 수 없다. 회관 2층에는 커피 등을 파는 가게가 있고 1층 구석에 식당이 있다. 거의 모든 한국음식을 파는 것 같고, 러시아인 손님들도 많다. 비빔밥과 갈비탕을 주문했는데 김치 등의 반찬이 따라나올 것이라는 어이없는 기대는 여지없이 박살난다. 반찬은 돈 별도로 내고 사먹어야지. 갈비탕은 짜고 비빔밥은 맵지만 맛은 난다. 그러고보니 이번 여행에서 비빔밥은 거의 해먹질 않았구나.


식당에서 나오면 밖에는 홍범도 장군과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비석도 있다. 한국인 관광객을 실은 버스가 또 한대 들어온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전라도 지역신문 기자들이 한 무리 와서 설명을 듣고 있더니, 한국인 관광객에게는 필수 코스가 되었구나. 좋은 일이다. 이렇게들 많이 와서 외국에서 고생하면 동포들에게 어떤 도움이라도 된다면 좋지. 혹시 동해에서 제대로 된 페리가 연결된다면 여기가 좀더 번창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해본다.


이제 마트 여행이다. 먼저 바로 옆에 있는 트리 코타. 연육기(180), 와인잔(6개 587.5), 현숙 화장품(364), 물 5.5리터(56.5), 빵(39), 수선화 구근 등등을 사고 지난 번에는 볼 수 없었던 삼베리에 가서 꿀 4통(2통 739.36, 2통 919.38), 오겹살(676g 135.13), 뒤지개(59.68) 등을 산다. 후추통이 욕심나기는 했는데 8천원 정도의 가격이면 한국에서도 살 수 있겠지. 삼베리는 규모는 큰데 매장 구성이 좀 어수선하다. 고려인문화센터에 온 한국인 관광팀이 이 마트에 들린다. 물론 이상설 선생 유허비는 다녀왔을 테니, 그외에 다른 곳을 볼 게 별로 없고 블라디보스톡보다 물가가 현저히 쌀 이곳에서 캐리어를 채우는 것도 괜찮겠다. 

저녁은 삼베리 오겹살, 양파 마늘볶음에 토마토를 구웠는데 밥이 없어도 잘 넘어간다. 집에 가서도 구운 토마토를 많이 먹어야겠다. 사흘 만에 750보드카를 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