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10(5월 9일) 바이칼의 아침. 리스트뱡카 - 니즈네우딘스크 600km

나쁜카카오 2018. 8. 18. 17:45

아침에 일어나니 마침 해가 뜨는 시간이라 호수 건너 편의 눈덮인 산이 떠오르는 햇빛을 받아 발갛게 물들기 시작하는 기막힌 순간을 맞는다. 아주 발개지지는 않으나 바이칼에 와서 이런 순간을 맞다니 정말 운이 좋은 일정이다. 어제 내린 눈도 타이밍이 딱 맞았다. 열심히 사진을 찍어보는데 얼마나 건질지...


호텔 건물은 시원찮은데 아침식사는 매우 좋다. 뷔페식인데 제법 다양하게 구비되어서 이것저것으로 배를 충분히 채운다. 단지 맛있는 빵이 없구나.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숙박인원의 대부분을 차지해 아침 식탁이 좀 시끄럽네. 9시에 아침을 줘서 좀 불편하기는 하다. 그래도 그 가격에 이만한 전망과 식사는 매우 훌륭하다. 가성비 최고라고 마눌님도 매우 만족해 한다.

9시 43분 호텔을 나와 바이칼의 물에 손이나 발을 담궈보기로 하고 물가로 내려간다. 엉성한 자세로 손을 담궈보니 물이 매우 차서 바이칼을 오래 즐길 수가 없네. 나중에 보니 사진도 별로다. 아깝다.


시베리아의 빠리(유럽에서는 웬만큼 멋지면 동유럽의 빠리라니, 시베리아의 빠리라니 하는 식으로 빠리를 갖다붙인다. 그만큼 프랑스가 유럽에 끼친 영향이 막대하다는 것이겠지)라는 이르쿠츠크를 그냥  통과하기는 아쉬우니 유명하다는 카잔 성당만 보기로 한다. 길이 외곽으로 빠지는 것 같아서 아닌가 했는데 제대로 왔다. 보통 유명한 성당은 시내 중심에 있기 마련인데... 러시아정교회 성당인데 양파 지붕이 아닌, 그냥 조그만 돔 형식. 색깔이 파래서 매우 인상적이다. 나중에 보니 이 동네 성당들은 다 지붕이 파란 색으로 칠해져 있어 황금색 양파 지붕인 다른 지역과는 차이가 난다. 왜 그런지는 알 이유도 방법도 없지?


이르쿠츠크는 야경이 멋지다는데 그걸 볼 시간이 없어 좀더 아쉽기는 하다. 돌아올 때 야경도 보고, 알혼섬도 보기로 하지만 마눌님과 같이 보는 게 아니니... 시내 통과는 어차피 전승절 행사(라고 해봐야 풍선들고 시가 행진하는 것이라 좀 웃기는 것이지만)로 길이 막혀서 어렵다. 바로 외곽으로 빠져 기름을 채우고 다시 지겨운 길을 떠난다.

치타까지는 산길이 지겨워 언제 하산하나 했는데, 이르쿠츠크를 벗어나 다시 횡단도로에 합류하니 이제는 그냥 사방이 벌판이다. 고도 4-500을 오르내리는 지역인데 산이라고는 잠깐, 그것도 저~~~ 멀리 아스라하게 보이는 것 빼고는 없다. 그냥 벌판이다. 

오늘 숙소는 일단 가는 데까지 가서 정하기로 한다. 툴룬은 너무 가깝고, 740km 타이셰트는 너무 멀다는 느낌이고, 중간의 니즈네우딘스크는 거리만 적당하다는 느낌이고...

이르쿠츠크 부근에서는 자주 나타나던 마을들이 도시가 조금씩 멀어지면서 다시 드물어지기 시작하고 주유소와 식당들도 찾기 어려워진다. 1시가 지나서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식당이 없네. 겨우 찾은 허름한 카페는 겨우 빵밖에 없다. 맛없는 빵 2개를 먹다 남기는 것으로 점심을 때운다. 돈이 안 들어 좋긴 하다.

첫 번째 숙박예정지인 툴룬에서는 숙소 찾기도 힘들고 마땅한 마트도 없어 니즈네우딘스크까지 120km을 더 가보기로 한다. 1시간 조금 더 가면 되니 가깝다. 도착해서 마트에 들러 저녁거리 등을 구입한 후 툴룬에서 부킹닷컴으로 예약한 숙소에 도착하니 공사 중인 듯 한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이런 황당한 경우가... 급히 동네의 다른 숙소를 찾아 예약하고 들어가니 창고 건물 3층에 숙소를 꾸민 곳인데 늙은 지배인 하나가 알아듣지 못 하는 러시아 말만 하네. 부킹닷컴의 예약 같은 건 아예 신경도 안 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무실이라고 있는 곳에는 컴퓨터니 뭐니가 아무 것도 없고 그냥 가격만 적힌 종이만 있으니... 이러고 어떻게 부킹닷컴 등의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숙소를 등록하는 재주가 몹시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긴 한데 말도 통하지 않으니 방법이 없네.

어찌어찌 숙박을 확정하고 방에 들어오니 새로 지은 시설이라 그런지 겉보기와는 달리 깔끔하고 넓다.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들어 9시 반에야 저녁식사를 한다. 마트에서 산 보드카 한잔에 빨리 뻗는다.

숙소 정하기가 매우 힘들다. 큰 도시에서 숙박하는 게 일정과 잘 맞지 않으니 도착 시간에 맞춰 숙소를 정해야 하는데, 작은 마을에서는 적당한 숙소가 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