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에 시작하는 호텔의 아침식사는 매우 훌륭하다. 350루블의 가격에 이만한 양과 질이라니 놀라울 정도다. 단지 그놈의 고수가 또 문제인 듯. 이르쿠츠크에는 눈보라가 치는 3도의 날씨라더니 10시 17분 호텔을 나오는데 하늘이 벌써 흐리다.
울란우데 시내를 한 바퀴 돌아버려 했는데 그다지 특징도 없고 네비도 시끄러워서 조금만 돌고 바로 벗어난다.
약간 외곽의 마을들은 그동안 보러왔던 우중충한 색깔과 무너질 듯한 집들의 분위기와 달리 제법 집꼴이 나고 색깔도 밝아서 보기 좋은데 금방 다시 원래의 스산한 분위기로 바뀌어 버리네. 1,500루블 어치로 탱크가 가득 찬다. 여기는 기름값이 좀 싼 편이네(41루블).
치타에서 시작되는 258번 도로에 합류하니 초입은 길이 좋아 속도가 막 오르는데, 역시 그 놈의 공사가 애를 먹인다. 긴 구간은 아니지만 공사현장을 지날 때면 늘 힘들다. 바이칼이 처음으로 보이는 곳에서 사진을 남겨보려고 애를 많이 썼는데 마땅히 차를 세울 곳이 없어서 속을 태우다가 어찌어찌 차를 세우고 내 첫 바이칼 사진을 남겨서 매우 뿌듯하다.
기차를 타면 철로가 호수를 죽 따라가면서 거칠 것 없이 호수를 보게 하는데 우리는 기차를 타지 않으니 어쩌다가 트이는 전망만 고대할 수밖에.
얼음이 아직 얼어 있고 눈도 내려서, 겨울에 오지 못한 바이칼이 내게 이런 겨울을 선사하는구나 싶어 기분이 매우 좋다.
점심은 바부시킨이란 동네에서 만두 2개. 만두피가 너무 두꺼워서 좀 별로였지만 속은 고기가 꽉 차서 2개만으로 당장은 배가 부르다. 그런데 3시간쯤 지나니 배가 고파지네. 빨리 소화되는 음식인가? 그동안 잘 피했는데 할수없이 처음으로 돈내고(15루블) 화장실을 쓴다.
바이칼을 따라 계속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며 사진이 나올만한 곳을 열심히 찾아 샛길로 들어가 보기도 한다. 마침 물가로 갈 수 있는 샛길을 찾아 바이칼의 파도와 얼음도 사진을 찍는다. 눈이 퍼부어서 물에 손이나 발을 담그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기회가 있겠지?
슬류단카라는 제법 큰 동네에서 경찰이 오라더니 여권을 보고 뒷문을 열라 하고는 보는 척 한다. 담배가 보이니 달라네? 2갑을 선사한다. 그정도는 기념이지? 거주자등록증이나 한국 번호판 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이제는 그친 눈이 눈꽃이 만발한 풍경을 선사하는 멋진 산속으로 길은 이어진다. 때맞춰 바이칼에 온 것 같아서 매우 즐겁다.
일정이 맞지 않아 알혼섬에 들어가지 못 하는 대신, 마눌님이 찾아낸 리스트뱡카라는 휴양지의 호텔을 싸게 예약해서 이제 숙소를 향해 열심히 달린다.
이르쿠츠크 시내 중심을 지나지는 못 하지만 변두리만으로도 러시아 냄새가 물씬 나는 이르쿠츠크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는데, 이 동네도 차가 매우 많고 차선이 분명하지 않아 운전이 그리 쉽지는 않다. 트롤리 버스가 시내를 누비네.
리스트뱡카까지 맵스미는 1시간이 걸린단다. 고속도로 비슷한 길을 벗어나니 산길인데 거의 직선으로 길을 뚫어서 저멀리 고개가 빤히 보이는, 매우 재밌는 도로다. 그래도 길이 멀어서 빨리 도착했으면 하는 마음이 재미있는 길을 즐기기 어렵게 하네. 오늘은 거리가 짧아서 호텔에 일찍 도착하면 뭐하고 보내나 하는 생각을 출발하면서 했는데 오면서 바이칼 사진도 열심히 찍고, 눈꽃 구경도 하고 하다보니 8시 10분에야 호텔에 도착한다. 길을 떠나면서 나중에 뭐하나 시간을 보내나 하고 생각하는 건 매우 웃기는 짓이다.
약간 높은 곳이라 위치는 좋은데 오래 되어서 많이 낡았다. 그런데 호수가 한눈에 다 들어오는 전망은 기가 막힌다. 이쪽은 호수 폭이 좁은 곳이라 바다같은 바이칼을 기대하기 어렵고, 건너 편 눈으로 덮인 산이 멋지다. 산이 매우 높아 보이는데 높이는 알 수가 없다. 옐로스톤 호수를 보는 듯 하다.
짐을 풀고 식당으로 내려가 드디어 오물 요리도 주문해본다. 구이와 찜 등인데 그냥 생선 맛이다.
방에서 아낀 돈으로 저녁을 푸짐하게 먹자 했는데 먹잘 게 없어서 배가 출출하다. 마눌님은 아침의 마트에서 산 맛없는 과일로 나머지 배를 채우고, 나는 식당에서 보드카와 맥주로 배를 채운다. 오늘은 하루종일 배가 계속 고픈 날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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