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라시아 횡단

D+8 로즈아예바-울란우데 1087km

나쁜카카오 2018. 5. 23. 17:59

모처럼 해가 떴다. 아마 러시아에서 처음 아침해를 보는 것일게다. 밥과 김치 등으로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기름넣고 하다보니 출발은 어제와 똑같은 8시 27분. 카페에서는 더운 물을 공짜로 주네. 고맙다.

오늘 목표는 일단 천km를 달려 울란우데. 치타를 지나면 마땅한 숙소가 있는 도시가 없을 것 같기도 했다. 고도는 800부근에서 내려가지를 않아 계속 산속을 달리게 하네. 여전히 자작나무와 벌판과 한적한 도로. 하늘이 맑으니 경치가 좀 다른 것 같기는 하지만 보이는 건 똑같다.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졸음이 시작되려 한다. 마눌님에게 핸들을 맡기고 잠시 눈을 붙인다. 점심은 차안에서 간단하게 해결.



한참을 가다가 카메라가 보여서 속도를 잘 낮췄는데 경찰이 부른다. 잘못한 게 없으니 겁날 건 없지만 그래도 경찰이 부르면 좀 께름직하긴 하겠지? 여권을 보더니 웃으면서 꼬레? 그러고는 그냥 가란다. 번호판을 바꾸지 않았다고 뭐라 말하지도 않는다. 신통하다.

2천km동안 이정표로만 보이던 치타는 매우 큰 도시다. 그런데 구글 네비가 그냥 외곽으로 빼버리네. 조금 아쉽지만 러시아, 또는 전 세계의 도시들이 대개 고만고만한 모습을 보이니 그냥 아쉬워하기만 하자. 처음에 길을 찾으니 보여주는 2가지 길 중에서 아랫길을 선택했더니 그렇게 바로 외곽으로 보내는구나. 

치타 들어가기 전에 부분적으로 도로공사가 진행되고 있어서 귀찮게 하더니 치타를 벗어나서는 수시로 도로공사 현장이 나타나서 매우 귀찮다. 공사현장을 벗어나면 잘 정비된 도로는 130-40을 그냥 밟게 하는데 공사 중이거나 공사 예정인 도로들은 정말 힘들다.

고도도 수시로 1,000을 넘나들어서 싱안링 산맥이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알았던 내 무지가 몹시 부끄러워진다. 그런데 이 고도는 울란우데가 가까워질 때까지 약 500km를 유지하네. 참으로 엄청난 고원지대다. 이 고원지대가 때로는 울창한 자작나무 숲으로, 때로는 광활한 벌판으로 다양하게 변하기는 하지만 너무 먼 거리를 거의 같은 풍광으로만 버티려니 많이 지겹다. 언제쯤 하산하려나 하는 기대는 충족되지를 않는다.



치타를 중심으로 길(차들이 시속 120이상으로 달리는 고속도로) 양 옆의 드넓은 초원에는 가끔 소 방목장이 나타나는데 이 소들이 차를 겁내지 않고 도로를 유유히 건너다니는 통에 가끔 사고가  난단다. 그렇게도 생겼다. 그래서 야생동물을 주의하라는 경고판 대신 이곳에는 소를 주의하라는 경고판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재밌다.

울란우데가 속한 공화국에 들어서니 시간이 또 1시간 늘어나지만 시간변경탑 같은 건 없다. 그래서 울란우데를 포기하지 못 하게 하네. 울란우데 호텔을 검색해서 어렵사리 예약한다. 대체로 2,500루블 선이니 지난 밤 그 골짜기 가스티니챠는 정말 바가지다.

마을만 벗어나면 바로 G로 떨어지는 데이터 속도는 그래도 주유소 부근에서는 3G로 올라가기도 해서 주유소 덕을 이렇게도 본다.

울란우데 부근으로 오니 이제서야 제대로 된 경치를 보는 것 같다. 고도는 거의 그대로지만 부드러운 능선, 날카로운 바위, 그리고 유유한 강과 마침 때맞춘 낙조들이 만드는 경치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먼길을 달려오는 동안 앞 유리에 부딪혀 죽은 벌레들의 체액 때문에 차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 매우 억울하다. 주유소 마켓에서 산 유리세정제가 효과가 있어서 좋다.



날이 많이 어두워진 울란우데 시내는 매우 촌스러운 루미나리에(라 할 수 있다면)가 시내 도로를 장식하고 있다. 러시아 도시라기보다는 마치 중국의 어느 도시에 온 듯한 느낌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38만 인구의 대부분이 몽골족이라네.

호텔 예약에 좀 착오가 있어서 바로 잡느라 아까운 시간을 1시간이나 허비한다. 숙박비는 조식 포함 3,050인데 현금이라고 깎아서 2,800. 프런트 직원이 영어를 잘 하지 못 한다고 매우 수줍어해서 참 고맙다. 저녁은 호텔의 식당에서 샤슬릭과 맥주. 고수가 잔뜩 뿌려져 있어 나는 털어내고 먹느라 고생했다.

너무 먼 거리를 욕심내서 무리하게 달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4일 동안 3,480km(호텔 찾느라 헤매고 다녔으니 실제 주행거리는 아마  더 많을 것)를 달렸는데 굳이 이렇게 달려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선 마눌님의 권유대로 알혼섬은 올 때 보기로 하고 뺀다. 블라디에서 늦춰진 일정을 보충하려고 하루에 천km 가까이 달리면서 또 알혼섬까지 넣은 건 내 욕심이 지나친 거다. 무리하지 말자.

게다가 뭣이 그리도 급했는지 주유구 뚜껑도 닫지 않고 출발하는 멍청한 짓을 두 번이나 반복한다. 제발 정신 좀 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