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또 온다. 무슨 놈의 겨울비가 나흘 동안 오냐? 하긴 5월 초를 겨울이라고 하면 안 되긴 하지? 그래도 여기 시베리아다. 아침식사는 호텔 식당의 간편식. 커피 한잔, 밥, 달걀후라이 2개, 그리고 소시지 하나 해서 2인분에 350루블. 맛이 없어서 밥을 남긴다. 싼 건 좋은데...
어젯밤에 이 동네 한인마을 등지를 마눌님이 열심히 검색해서 다 찾아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그 동네 마트에서 가스와 쌀도 사고 할 예정이다. 아마도 10시에 문을 열 테니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다(느긋하게 보낸다 해도 시간이 그리 여유있는 건 아니지) 호텔을 나선다.
당초 오늘은 하바로프스크를 통과, 비로비잔에서 1박할 예정이었는데 출발도 늦을 테고, 거리도 만만찮을 텐데 하바로프스크를 그냥 통과만 하는 건 아까울 것 같기도 해서 하바로프스크에서 1박하기로 변경하고 숙소도 예약해둔다.
어제 저녁에 찾기만 한 고려인 문화센터 부근 Tri kota(Three cat)에 가서 가스 20통, 쌀 3kg, 물 2통, 워셔액 1통 등을 사니 출발시간은 11시다.
고려인들의 애환이 남아 있는 우수리스크를 좀더 알아봐도 괜찮겠지만 시간이 없다. 우수리스크 시내는 도로상태가 그리 양호하지는 않지만 자동차가 다니는 데 큰 지장은 없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다시 길은 좋아지는데 가끔 나타나는보수되기 전의 옛길은 약간 불편할 정도다. 가다보니 비를 맞으며 달리는 오토바이팀을 길에서 본다. 날씨도 추운데 참 안됐다는 생각을 하며 기념사진을 찍어본다. 휴게소 같은 곳에서 러시아 횡단도로의 유명한 변소도 만난다. 이건 절대로 화장실이 아닌데, 앞으로 이런 변소마저도 반가울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
기름을 넣을 때 가득 채우려면 미리 돈을 많이 주고나서 나중에 돌려받게 되는데 우리처럼 천(@43.6)이나 2천(@44.05) 루블이라고 정해서 미리 돈을 주면 해당 주유구가 알아서 그만한 양에서 주유를 멈추게 하기 때문에 편한 면도 있다. 유로5라고 표시된 기름이 질이 좋은 것이라 차에도 좋다는데 잘 보이지 않으니 급한 대로 아무 기름이나 넣자.
비가 계속 내리기도 하지만 워낙 넓은 평원이라 경치랄 것도 없이 벌판만 있네. 이 동네 유명한 자작나무는 중간 쯤에서 나타나기 시작해 하바로프스크가 가까워질수록 숲의 규모가 커진다. 자작나무는 아름드리 거목이 보이지 않는다. 좀 크다 싶으면 시커멓게 죽어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왜 그런지는 알 수가 없지?
점심은 다음 주유소 부근에서 먹자 하고 주유소가 보이기만을 열심히 기다리는데 띄엄띄엄 나타나는 마을을 벗어나면 주유소는 잘 없네. 졸려서 큰길에서 잠시 벗어나 한잠 자고났더니 한결 개운하다.
휴게소 겸 버스정류장이 보여서 점심이나 먹자 했는데 노점상처럼 허름한 컨테이너 건물들이 각종 매점인 줄은 이곳을 벗어나면서야 안다. 마땅히 시켜먹을 게 눈에 띄지 않아 점심은 그간 먹다 남은 빵, 과자부스러기 등으로 때워보기로 한다. 하바로프스크 150km를 앞두고 아침에 예약한 숙소 예약을 확인하니 예약이 되지 않았네. 부랴부랴 예약을 다시 하니 전화가 와서 우리가 예약한 2룸은 없고 3베드룸이 있는데 괜찮냐는 뜻인 듯. 둘다 영어가 서툴러서 어렵사리 숙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하바로프스크 시내로 들어선다. 하바로프스크는 마치 샌프란시스코처럼 언덕 도로가 많은데 이런 비교가 타당한지 여부는 차치하자.
네비가 알려주는 대로 17km정도 잘 따라가서 숙소 앞에 멈췄는데 숙소 간판이나 입구가 보이지 않는다. 비는 부슬거리는 낯선 동네에서 숙소찾느라 헤매고 있으니 참 처량하다는 느낌도 든다. 주인 여자와 다시 떠듬거리며 열심히 통화해서 20여 분만에 찾아나온 주인 여자를 겨우 만난다. 구글이 잘 안내해서 처음 도착한 아파트 건물 뒷편에 입구가 있는데 간판이니 뭐니가 아무 것도 없으니 찾을 수가 있나. 말이 거의 통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 처음에 도착해서 내가 왜 이 아파트는 들어가는 문이 없나만 생각하고 다른 입구를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은 게 불찰이었다. 갈수록 영민해지지는 않더라도 이렇게 헤매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는데,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숙소는 아파트가 아니고 일종의 도미토리인데 주방이 딸렸다고 부킹닷컴에는 아파트로 등록했구나. 다니다 다니다 이번처럼 숙소 선택이 실패하기는 정말 처음이다. 깊이 반성해야 한다. 세상에 싸고 좋은 건 없다고 입버릇처럼 되뇌이면서도 항상 그 놈의 싸고 좋은 것만 찾아다니는 내 못된 버릇이 빚은 참상이라고 해야 할 것.
밥을 하고, 숙소 전체에 김치냄새를 풍기며 김치를 돼지고기에 볶고, 냉장고에서 반찬들을 꺼내고, 소주도 곁들여 늦은 저녁 식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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